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누가복음 10:12~16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의 병행구절 = 마태복음 11:20~24
마태복음에서의 이 말씀의 시작은?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책망하시되」(마11:20)로 시작한다.
특히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최 중심지이다.(제2고향)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이는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마 4:13)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4~15)
이사야가 예언 할 때만 하여도 갈릴리를 이방의 갈릴리라고 할 수 없다.
단지파, 납달리지파, 스블론 지파, 아래로 아셀지파가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사야가 「이방의 갈릴리」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실 시대에 갈릴리 지방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고......
-갈릴리도 이방의 갈릴리가 되어 버릴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백성들.....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영적 흑암에서 살게 될 사람들...
주님이 오시면 영적 중심을 이루는 예루살렘에서 활동을 해야 할 것인데......
주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에서 활동을 하신다.
여기가 영적 흑암의 곳이다.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영적 갈급함이 많은 동내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가르치고 교훈을 해도 듣지를 않는데? 여기의 사람들 몇은?
-세례요한의 말 한 마디에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께로 온다...
-안드레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는 말 한 마디에 베드로가 온다.
-길 가시던 주님이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 하니 그냥 따른다..
-빌립의 전도에 거부하던 나다나엘이 그래도 예수님에게 나아온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세상의 구조에 휩쓸려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 메마른 자 들이었다.
☞ 이 처음에 따르는 제자들이?
메시야가 언제 오실까? 어떻게 오실까?를 연구,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주님이 오시길 기대하면서 도를 딲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Vs 그냥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물 깁고, 어부복으로 갈아입고 고기잡으로 나가고...
고기 잡아서 팔아 돈을 만들고.....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 이런 사람들이 한 마디의 전도에, 말씀에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른다.
이들의 심령이 얼마나 갈급했는지를 말한다...
그냥의 생활속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영혼은 말씀에, 은혜에 갈급....
예수님은 이들이 있는 갈릴리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신다.
/ 벳새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요1:44)
오병이어의 기적의 장소, 오병이어 이전에 수많은 환자 치유....
맹인을 고침(막8:22); 나무같은 것이 걸어다닌다. 다시 안수 완전..
/ 고라신? 가버나움 북쪽 3km, 가버나움이 받은 모든 은혜.....
예수님이 거라사에서 돌아왔을 때 각처로 사람을 보내 알림
/ 가버나움? 예수님이 사시는 곳이 되어서 「본동내」라고 한다.(마9:1)
벳새다가 고향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가 이곳에 살았다.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 치유/ 더러운 귀신들린 자/
침상 채 메여온 중풍병자 / 회당장 야이로의 딸/
회당에서의 설교 / 2년 혈루증 ......
그런데 오늘 이 도시들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는다.
가장 많은 은혜를 베푼 곳, 가장 많은 주님의 역사를 보, 경험한 곳...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곳.....
주님께서 아예 사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곳.....
그런데 오늘 주님은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하신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하신다.
가버나움? 예수님이 우리 마을에 살고 계셔?...
우리 마을에는 모든 질병을 다 고치는 예수라는 분이 살고 있어.
예수님께서 거라사 광인을 고치고 돌아왔을 때 가버나움의 반응?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라」(눅8:40)
그런데 정작 주님으로부터 은혜는 받으면서 말씀은 받지 않는다...
육신의 치유는 받으면 영의 치유, 말씀의 치유는 싫어한다.
이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육신적 유익만 취하고 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책망하시되」(마11:20)
최고의 은혜를 받지만 회개가 없다....
회개가 없음은 - 영접이 없음 - 영접이 없음은 구원이 없음....
우리와 주님과의 연결성에는 회개가 필연이다.......
주님에게 아무리 우호적인 사람이라도... 회개가 없으면 주님과 연결되지 않는다...
Vs 지금까지 아무리 주님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이라도
회개가 있으면 주님과 연결되어진다.
(사도 바울이 그렇다. 십자가의 강도가 그렇다.)
고라신은, 벳세다는, 가버나움은 한 번도 주님을 핍박해 본 적이 없다...
이 도시들은 주님에게 아주 호의적이다.
오히려 주님이 오시면 주님이 오셨다고 사람들에게 기별하고 모이게 한다.
주님이 고향처럼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집을 내어 주고, 방을 내어주는 영접은 있지만.....
그런데 그들은 주님을 영으로 모시는 영접은 없다...
Vs 그들의 마음을 죄악을 내어 놓는 영접은 없다.....
주님은 이들의 병을 고쳐 주시면서 회개를 원하신다...
주님은 이들의 육신의 구원을 이루면서 영의 구원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Vs 육신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회개치 않으면, 회개치 않고 은혜를 받으면?
그 구원받은 육신이, 그 은혜 받은 것들이
타락의 기구, 죄악의 기구가 되어 버린다.(구약의 왕들.....)
그래서 주님은 책망하신다.
차라리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은? 렘25장, 겔 26~28장, 욜3:4, 슥9:2
이 말씀들에서 심판에 대한 이유는 그들의 교만이다...자만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도다 」(겔27:3)
「네 마음이 하나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겔28:5)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겔28:9)
그래서 심판!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슥 9:2)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겔28:18)
“내가 그에게 전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니~ ”(겔28:23)
이렇게 심판 받은 두로, 시돈에게 너희들에게 행한 권능을 행하였더라면?
⇨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서 회개의 눈물을 보시기를 원합니다...
어제 회개했는데 또 무슨 회개? - 그래도 주님은 회개의 기도, 눈물을 원하신다.
베옷? - 사망의 옷, 죽음의 옷이다. 망자가 입는 옷이다....
베옷은 화려한 옷이 되지를 못한다...
Vs 화려한 옷은 가죽으로 만든 옷, 모로 만든 옷이다.
이 화려한 옷, 세상의 옷을 벗고 죽음의 옷을 입는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그 베옷 마저도 벗겨져 버렸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그대로 시체를 처리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을 때 입은 옷이 곳 망자의 옷이 된다...
그런데 주님은 그 베옷 마저도 병사들에게 벗겨저 버린다...
재를 뒤집어 쓴다? 태워짐. 죽음. 없어짐. 무가치, 쓸데없음, 버려짐이다..
재를 뒤집어 쓴다는 것은 내가 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할 때 무가치의 우리가 주님이 아끼시는 성도가 된다.
지금의 시대?
은혜의 단물만 빨아 먹고 있는 시대....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어야 되는데 주님이 우리의 종이 되어버린 시대..
그러나 우리교회와 성도들은 이 사순절을 통하여....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는 모습으로 회개를 이루어가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가는 교회,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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