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설교

믿는 자 중에 믿지 않는 자 (信者之中 不信者)

덕천강변 2025. 4. 16. 13:55
728x90
728x90
 이병석 목사의 요한복음 설교
                    믿는 자 중에 믿지 않는 자 (信者之中 不信者)
                Person who do not believe among believing person
                                                                                      요한복음 6:60∼65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신앙의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한 번 택하신 자들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우리들 주위에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은 현상을 볼 때가 있다...
   우 리들보다도 훨씬 더 믿음으로 살고, 헌신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하고,
       오래 믿었고 해서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일군이라고 생각을 했고,
              참 열심인 사람이다! 생각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 이 사람이 어느 때인가 믿음에서 멀어져 버리고 완전히
                    세상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 지옥 가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이 한 번 택하신 자들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하신 그 말씀이 틀린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말씀이 틀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말씀은 사실이다.
    주님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고 확실하게 말씀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해서 자기의 백성으로, 권속으로 만들었는데
       우리를 세상에, 마귀에게 다시 빼앗기겠는가?
          ○친히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의 백성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권속으로 사셨는데,⇨ 우리를 빼았기겠는가?
     ☞우리는 솔로몬의 재판을 잘 알고 있다.
         두 여인이 한 갓난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싸운다.
         그 아기를 반으로 나누어 주라 할 때 진짜 어머니는 어떻게 하는가?
         그 아기를 죽이지 못하게 한다. 그 아들의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10달동안의 인내와 산고를 통해서 그 아기를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짜 어머니는 그 아기를 죽이라고 한다.
                              ⇨ 자기의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바로 자기의 보혈로서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보혈로 산 백성인 것 같았는데
                           완전히 구원 받은 사람인줄로 알았는데....
                 ⇨ 세상으로 완전히 떨어져 가 버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버린 자가 아니라, 원래 믿지 않은 사람들이다.
                              믿는 모양만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오늘의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64)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많은 사람들, 제자들 급에 속한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하는 말이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였다.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처 아심이러라」고 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녔지만 「믿는자가 아니었다」
       ○가룟 유다는 회계 직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믿는자가 아니었다」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귀신을 좇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이 있었지만 「믿는자가 아니었다.」
                ⇨ 그는 믿는 모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제자의 모양, 믿는 자의 모양, 성도의 모양....교인의 모양...
  ※우리는 가룟 유다가 「믿다가 타락한 자」 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는 「믿다가 타락한 자」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처음부터 믿는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70절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했다.
         시몬 베드로가 68절에서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주님의 말씀이 영생의 말씀임을 고백하였지만
                  가룟 유다는 그 고백에 같이 -아멘- 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님의 말씀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탄의 말」 「마귀의 말」 「세상의 말」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요13:2에서 예수님의 그 유명한 마지막 마가 다락방 강의를 시작하려
                     하실 때에 그는 예수님을 팔아야 되겠다고 하는
                              마귀의 명령을 이미 받고 있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다락방을 뛰쳐나가고 난 뒤에
          11명의 제자들만 남았을 때 예수님은 요16:27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요16:2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라고 했다.
     ☞☞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말, 마귀의 말, 귀신의 말에 지배를 받고 있어서는 안 된다.
          ⇨ 가룟 유다는 그렇게도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그렇게도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이 그 심령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말이 그를 지배하게 했다.
       왜 그렇는가?
           「이는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음이니라」 하신 것 처럼
        듣기는 수도 없이 들었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 속에 말씀이 있을 곳이 없었는가?
    ⇨ 세상의 말이 그 심령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말, 마귀의 말을 비우지 않고서는 주님의 말을 채울 수 없다.
   가룟 유다는 그것을 비우지 못했다.
     ※ 교회를 1년을 다니고, 2년을 다니고 3년을 다녔는데도
              주님의 말씀 한 말씀이 심령에 들어와 있지 않은 자가 있다.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 성도와의 교재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이 심령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의 말이 그 심령과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 자들이 있다.
    ○단 한 번 주님을 보고, 대화를 했는데 주님을 메시야로 고백하고
              새 사람이 된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성도가 있는데도 말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와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의 손짓을 받으면서 살다가 단 한 번 주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된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 있는데.......
      ⇨ 어떤 성도는 몇 년을 다니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성도 아닌 성도가 있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아니라 따라 다니는 자였다.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있다.
        ○ 그냥 구경꾼으로 오고, 따라 다니는 자가 있다.
            동행하는 자? ⇨ 주님과 동거동락, 고생할 각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나 그냥 구경꾼으로 따라 다니는 자는?
                                그 재미가 없을 때에는 떨어져 버린다.
           잠시 짐을 들어 주기고 하고, 길을 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지만
           자기의 재미, 구경꺼리가 없으면 저절로 떨어져 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구경꾼으로 따라 다니는 자는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육신의 재미, 유익만을 누리고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지 않기 때문에 「사명」이 없다
                                사명이 없이 따라 다니는 것이다.
  오늘 유다가 그랬던 자다.
    주님께서 일차적으로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했을 때
              ⇨ 제자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고 했다.
      일차적으로 물러갈 자는 다 물러 갔다.
                           그러나 유다는 떨어지지 않았다. 물러가지 않았다.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 그가 사명감으로 따라 다녔는가?
         ○ 그가 믿음으로 따라 다녔는가? ⇨ 아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되 「도둑」으로 따라 다녔다.
                                      「그는 도적이니라」(요12:6)고 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되 「탐욕」으로 따라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자기의 육신의 유익만을 얻고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 왜 주님은 이런 유다에게 직분까지 맡겼을까?
                     뻔히 알면서? 믿음이 없이 따라 다니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적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12제자 속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믿음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것은 주님의 사랑이다.
       이것은 가룟 유다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나의 일을 하다 보면 나의 사랑을 깨닫겠지..........
            ○나의 일을 하다가 보면 사명을 깨닫겠지........
            ○나를 따라 다니다가 보면서 주님이 저것도 아는구나
                               나의 이 도적 마음도 아시겠구나....
            ○저런 사람도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데 나도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지.
                           ⇨ 하면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배려인 것이다.
 ☞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사님도 때때로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하고 직분을 맡길 때가 있다.
                   저 성도가 일군이 되어 일을 하다가 보면?
                         다른 직분자들과 함께 일을 하다가 보면?
                         참 믿음을 가지고 회복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행히도 어떤 성도는 직분을 맡아서 일을 하다가 보니까?
                                   진짜 일군이 되는 사람이 있다.
            VS 그러나 반대로 이번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맡겨도
                              그저 그렇게 있다가 결국 떨어져 버리는 자도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우리 교회에는 모두 믿는 자들로만 차 있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같이 말씀을 듣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 같이 구역 예배도 드리고,
                                   같이 식사도 하는데
               「믿는 것 같은」 「믿은 것 같은」 성도가 아니라
          한결같이 우리 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참으로 그리스도가 메시야 이심을 믿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귀중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