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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 지명 강해

 

                                                         성경지명(89):그랄

                                                                                                                                     창세기 26:1~2

1.그랄 개요

  ➀그랄(גְּרָר, Gerar)의 뜻: 둥근 원(圓), 거주지

  ➁위치:가사(현 가자;Gaza) 남쪽 13km. 브엘세바 서북 24km.

    ○광범위 지역으로는 네게브 북서쪽 지역 전체.

    ○현; 텔 아부 훼이라(Tell Abu Hureyra)로 추정.

  ➂그랄은 성경에서 「그랄」과 「블레셋」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그랄」로만 불리어지다가 (창 20장)

         이삭 시대에는 「그랄」 「블레셋」으로 혼재되어 불러지고,(창 26장)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창26:10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는 「블레셋」으로 불리어진다.

    ○「그랄」은 가나안의 7족속과는 별개의 족속이다.

      - 하나님은 가나안 땅 7 족속을 몰아내고 땅을 주신다고 했다.

               블레셋: 팔레스틴(Pllestine)의 어원을 이룬 말.

                    애굽은 Prest (바다 백성)으로 불렀다.

                    (직접 이 자리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길리기아, 수리아를 거쳐서 들어왔을 것)

                     이들은 「갑돌」(=그레데)에서 온 민족이라고 했다.(창10:14, 암9:7, 렘47:4, 겔25:16)

             ※ 함의 아들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 중 「가나안」의 후손이 가나안의 7족속(창10:15~)

                       블레셋은 함의 아들 「미스라임」의 후손이다.(창 10: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임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스루힘에서 블레셋이 나왔더라)(창10:14)

  ➃「그랄」왕은 「아비멜렉」으로 지칭된다.

    ○「아비멜렉」 = 내 아버지는 왕이시다.(「그랄」 「블레셋」의 왕의 통칭적 칭호)

2.성경에서의 그랄

  ➀아브라함 시대.(창 20)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후에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마므레」에서 「그랄」로 이사를 갔다.

      -왜 이사를 갔는지는 알 수 없다.

        / 아브라함은 애굽에 갔다가 와서 지금까지 헤브론의 마므레에 살고 있다.

           ! 여기서 롯과 헤어지고 난 뒤에 약속을 받고 제단을 쌓았고(창 13:18)

                   318명의 개인 군사로 롯을 구하고(14장)/ 할례를 행하고, 이삭의 약속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을 떠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후에 다시 헤브론으로 돌아와서 살 때에도 이 지역은 아주 협조적이었다.(창23장)

           ! 사라가 죽었을 때 헤브론(헷 족속)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창 23:6)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막벨라 굴과 소속 토지」를 산다.

                                 (거저 준다고 하지만 은 400세겔로)

        / 헤브론에서 소돔과 고모라 멸망 때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다」-두려움?

    ○이 때의 아브라함의 「그랄」로의 이사는 영적 위기의 상태가 되어진다.

      -이 때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고 아들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상태였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 가서 취하려 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다) - 거짓말이 아니나 거짓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창 20:12)

        / 이렇게 까지 비겁해져야 하면서 그랄로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 아내를 빼앗길뻔 한 이사......, 하나님의 약속이 허물어져버릴 위기의 이사....,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고 하면.....)

               Vs 우리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고 하면......

        / 죄를 지을려고 생각한 것도, 간 것도 아니지만 ..... 죄와 연결되는 곳으로 간 아브라함...

    ○하나님의 개입

      -  「그 밤에」(창20:3) - 그 밤을 넘겨 버리면 사라는 아비멜렉의 아내가 되어 버린다...

                   아비멜렉의 아들을 갖게 된다.(?)

      - 아비멜렉의 아브라함 책망!

          /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창20:9)

          /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창20:10)

   ➁이삭과 그랄(창26장)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가려고 그랄로 갔었다.( 창 26:2) (네게브의 브엘라해로이 - 그랄)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도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26:1)

      - 흉년이 들면 의지가 쉬운 고향 쪽, 친척들이 있고 아내의 고향 쪽인 「아람」으로 갈 것인데...

    ○이 때?

       -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고 장사 지내고 난 뒤(=이삭 75세), 에서와 야곱이 장성한 뒤(?)...

       - 아브라함의 그랄 행 때와는 약 100년의 시간.....

    ○하나님의 말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26:2)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브라라함 때와 같은 위기:

      - 그랄 사람들에게(이번에는 사람들)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 하여 속이고 살음

      - 그랄 사람들이 이삭이 리브가를 품는 것을 보고 책망

    ○하나님의 은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 26:12)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우물

       -기존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메워 버리는 블레셋 사람들

       -다시 파는 이삭 - 에섹(다툼), 싯나(대적함), 르호봇(장소가 넓음)

    ○화친을 청하러 온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 Vs 누가 더 겁을 먹어야 되는지?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니라」

           ⇨ 약조하고 간 그날 종들이 우물을 파서 얻었는데 「세바」 - 성읍 이름을 「브엘세바」

             (그러니까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머물러 산 곳이 「브엘세바」)

  ➂「아사 임금」과 구스의 세라 장군의 전쟁터(대하 14:9~15) (=구스의 오소로콘 1세?)

     ○구스의 세라가 군사 100만 명과 병거 300대를 쳐들어 옴. (이 때 유다는 총 58만 명)

     ○「아사」 임금의 기도(대하 14:11)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 못하게 하옵소서」

    ○승리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 」

    ○이 승리와 더불어 그랄 사면 모든 성읍 사람들이 두려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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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이사야(55-2):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이사야 55:6~13

           ※ 55장은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 부를 정도의 만민 구원, 만민 초청을 말씀하고 있다.

1.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기회, 찾을 수 있는 기회

  ➀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하나님은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를 만날 만한 기회를 주셨다.(주신다.)

       - 지금까지는 이방인이라는 이유, 부정한 존재(?)들이란 이유로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세상 만민」을 초청하신다.

       - 오신 주님은 55:1의 말씀을 더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7)

       - 「누구든지」라는 말로 제한이 없다.

       - 공생애 중의 주님은 주님을 찾는 자들 중 누구를 거부해 본 적이 없다.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다윗의 자손임을 인정하는 자들,

          / 치유와 문제 해결을 필요로 해서 찾아오는 자들

              (이때 설령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하나님은 주님을 통해서 지금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 시간을 주시고 계신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 종일 편 팔을 벌리고 계시는 시간! Vs 예복을 갖추어 입고 맞이하는 성도.

      - 심판의 시간을 미루고 계시는 시간! Vs 달란트의 사명을 감당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성도.

      - 등과 기름을 예비하고 준비하게 하는 시간! Vs 등과 기름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성도

      - 노아가 방주를 짓고, 만들고 하는 것을 보게 하시는 시간!

      - 여전히 (두루다니며) 초청하는 시간.... Vs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Vs 주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고 거부하는 사람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면서, 장가가고 소를 사고, 밭을 샀다고 하면서...

                    ⇨ 이런 것에 묻혀서 초청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거부, 방관 한다....

    ○기회?

       - 주님이 우리 동내에 들어오셨다는 것, 지나가신다는 것.

          / 주님이 직접 갈릴리 바닷가의 제자들에게 오셔서 부르셨다는 것.

          /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와서 보라」고 전도를 받는 기회...

       - 누군가 나에게 주님을 소개하고 전도하는 기회.

           ☞ 주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신다.(눈물의 현장, 아픔의 현장, 삶의 현장)

           ☞ 주님은 종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다.(근엄한 모습이 아닌)

  ➁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다.

    ○하나님이 인간과 최고로 가까이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주님, 곧 임마누엘이다.

      -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

      -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뵐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존재인데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심으로

                                                       누구든지 주님(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게 하셨다...

        / 주님은 그냥 인간의 모습으로가 아닌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완전 동일)

             Ex) 어느 르포기자? -노숙자 체험을 위해 노숙자 -친근 -알게 된 노숙자들 멀어짐

    ○주님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시기 위해서 찾아 가신다.

       - 「사마리아로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마15:21)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막 7:31)

          / 사마리아로 통과하여 가까이 하는 그 시간 주님에게로 가까이 하는 사마리아 여인과 사람들

          / 두로에 가까이 하시기 위해서 오신 기회를 잡아 가까이 오는 수로보니게 여인!

          / 데가볼리 지방은(거라사) 가까이 찾아 갔으나 빨리 떠나기를 바라는 안타까움!!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막 5:17)

          / 삭개오 / 여리고의 소경들/ 나면서 소경된 자.

          / 같은 동내 바리새인의 집에 오셨을 때 죄인인 여자(창녀) -향유 붓고 머릿결로 발을 씻은..

              (이 여자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 보다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더 걸림돌이 되고 부담이 되었을 것?)

              (바리새인 집이라는 걸림돌, 창녀라는 자기 신분, 많은 사람들이 있는 환경)

                 Vs 여기 바리새인은, 거기에 같이 참석했던 사람들?

                         주님과 같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같이 했지만.... 「그를 부르라」가 되지 못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실 때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주님이 가까이 오심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기 위하심이기도 하지만 부르라고 오신다.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은 누가 부르든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59:1)

       주님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고, 주님을 부르는 자가 불쌍히 여김을 받고,

       주님을 부는 자가 눈물이 멈추어지고. 주님을 부르는 자가 승리를 얻게 된다.

2.어떻게 주님께 나와야 하는가?

  ➀악인의 길,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7절)

    ○주님에게 나아와 주님을 부를 때 분명한 우리의 모습, 자세가 있어야 한다. - 회개다.

       - 회개 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 부름은 듣지 않으신다.

    ○악인의 길, 불의한 생각은 주님과(주님의 말씀, 성도의 길) 병존, 동행 할 수 없다.

       - 이것들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들이고 주님이 이것들을 끝내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5)

       - 이것들을 끊어 버리고, 생각을 끊어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 올 때에?

                 「그리하면 「긍휼이 여기시리라 ,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➁하나님의 생각 Vs 사람의 생각 / 하나님의 길 Vs 사람의 길

    ○원죄 이전에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이 같았다.

       - 원죄 이후로 사람의 생각과 길은?

               더욱 죄악으로 연결되고, 사탄은 좋아하고 하나님은 싫어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15:19)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되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룬다.(11)

        - 주님의 초청의 말씀은 생명으로, 구원으로 돌아오고, 생명과 구원을 이룬다.

    ○주님의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 주시는 은혜와 즐거움?

        -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12)

        -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 「회복」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

             (화석류? 식물명:도금양(머틀;Myrtus communis; 1~3m 팔레스틴의 상록수,

                           향기가 강한 잎과 흰 꽃, 검푸른 열매, 회복, 평화,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

       -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고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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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예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자기 자신이 자유인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자유인이지만 그 자유를 어떻게 쓰겠다고 다짐하는 말씀!

                  1절: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12절: 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절: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1절: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7절: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다시 갈 5~6장에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 자유를 어떻게 쓰야 할지를 말한다.

                     (고전9장은 자기 자신의 각오와 다짐/ 갈5장: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갈라디아5장에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하는 자유?

                ➀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➁어지럽게 하는 것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라.

                ➂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➃소위 자유를 따라가 아닌 성령을 따라 행하라.

                ➄서로 짐을 지라

                ➅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라 ⇨ 6가지로

   오늘 첫 번째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절에서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서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인간의 제일 처음: 아담과 하와는 자유를 가졌다.

                      그러나 그 자유를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의 종이 되고 사탄의 종이 되어 버렸다.

      사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사탄이 시키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

                                      (절대로 사탄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

      죄의 종이 되어 버렸다는 것?

               죄를 짓지 않으면 안 되고 계속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

사람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불행이도...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 거절, 반항, 멸시의 기질이 생기고,

      Vs 사탄의 말에는 ⇨ 순종, 인정, 존경, 권위, 두려움의 말로 들리게 된다.

            그래서 사탄의 말에는 ⇨ 인정이 되어서 순종하고,/ 두려워서 순종하고/

                                                        그 권위에 짓눌려서 순종하고, 존경이 되어서 순종한다...

 갈라디아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 사탄의 종들이 있다.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갈 2:4)

   여기에 사탄의 교활함이 있다......

          우리가 가진 억압을 보고?, 종되어 있음, 우리가 가진 얽메임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유를 주겠다. 풀어 주겠다...고 접근하면 모르겠는데...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들어와서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종으로 삼아 버리는....)

      얼마나 교활했으면? 얼마나 달콤했으면? 얼마나 천사의 얼굴을 했으면?

              한편으로 성도의 어리석음?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자유를 ⇨ 사탄의 종이 되는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정도 하지 않고, 두려움도 없고, 존경도 없다..

                  거짓 선지자의 말에는 모든 것을 갖다 바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는 멸시하고 죽이려고 한다.

      바울은 이 가만히 들어온 자들을 대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고 말한다.

                 -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구나(고후 11:19~20)

사탄은 우리에게?

     죄를 지으면서 쾌감을 느끼고, 죄를 지으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존재로....

          Vs 의를 이루면서, 선을 행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만족을 느껴야 될 것인데...

                     ⇨ 죄를 지으면서 더 쾌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얻어 간다....

         그래서 인간은 죄의 발전을 이루어 간다....

                 (의의 발전, 선의 발전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죄의 발전을...)

                         (옛날에는 단순 죄악이라고 하면?

                                         이제는 같은 죄악이 수 천, 수 만 가지로 갈라지면서(발전)

2.주님은 사탄의 종으로 있던 우리들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유의 종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

         (이 얼마나 감격적 말씀인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믿음의 자유를 주셨다....

       사탄이 우리를 얼마나 얽어메여 놓고 있었느냐?

                 가는 방향? 몇 월 달에는 어디로만 가고, 방향으로 가지 마라!

                 만남? - 동쪽에서 오는 사람, 서쪽에서 오는 사람( or 귀인)

                 하는 일? - 손이 타는 일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사람은 지금까지 사탄의 종, 죄의 종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속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 속담: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아차하는 순간에 다시 그 사탄의 종의 버릇, 죄의 종의 버릇이 되살아 난다.

           -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죄의 종, 사탄의 종의 모습은?

                                                                        확실히, 완전히 죽어 버린 줄 알았는데...

           -죄의 종, 사탄의 종의 모습은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아 버린 줄 알았는데..

  ⇨ 야곱이 얍복강에서 기도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    「이스라엘」이란 이름 받고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라고 했지만(창 32:28)

      곧 바로 또 벧엘에서 이 똑 같은 소리를 듣는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창 35:10)

                 (얍복강가에서 이 소리를 들었으면 - 다시는 이 소리를 ....)

           이후 수시로 하나님은 야곱과 이스라엘을 번갈아 부르신다.

         나중에 이스라엘 나라 자체를 부를 때에도 이스라엘 - 야곱을 번갈아 부르신다.

          (이스라엘이라 부를 때?의 이스라엘? Vs 야곱이라 부를 때의 이스라엘?)

           (야곱에서 - 이스라엘로 왔다 갔다가 한다...)

3.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굳건하게 서서」!! - 주의 종의 자리에 굳건하게 서서....

                                       주의 부르심의 자리에 굳건하게 서서...

                                       주님이 주신 사명의 자링 굳건하게 서서....

                                       주님의 말씀에 굳건하게 서서....

                                       부산성동교회의 자리에 굳건하게 서서....

       「종의 멍에」? - 구원의 멍에가 아니라 다시 사탄의 멍에/ 죄의 멍에...

         ○홍해를 건너고 출애굽을 하였지만

                 - 다시 바로의 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들.....

         ○사사시대의 반복: 사사를 통하여 회복 시켜 주시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우리 사람들에게?

           - 죄를 통한 즐거움, 타락을 통한 즐거움에 가두어 놓으려 한다.

           - 그래서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것들은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그 멍에만 메고 살아가게 한다.

           히브리서 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자들」  (히 2:15) 이라고...

          죽기를 무서워하면 빠져 나와야 되는데

                         오히려 못 나아고 평생 그것의 종으로....

           (그래서 이들에게는 주님이 말씀하신 죄 사함, 영생! 은 들리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교회와 모든 성도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언제나 생명과 성령의 법안에서 주님을 통한 영생의 자유를 누리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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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지명 강해

 

                                                     성경지명(88):벧세메스

                                                                                                                            사무엘상 6:9~15

1.벧세메스 개요

  ➀위치:

    ○「기럇여아림」 남서 14km, 「소라」 남동 3km 로 소라와 마주 보고 있다.

      - 세메스와 소라는 소렉 골짜기를 남북에서 방비하는 쌍벽의 성읍.

            (소렉골짜기: 들릴라의 고향,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야를 연결하는 중요 통로.)

      - 예루살렘 서쪽 30km

      - 현; 벧 세메시(Beth Shemesh)

  ➁이름의 뜻: 태양의 집((שֶׁמֶש-בֵּיִתׁ, Beth-Shemesh)

    ○벧(בֵּיִת) = 집 / 세메스(שֶׁמֶשׁ) = 태양.

         벧엘 = 하나님의 집 / 베들레헴=떡 집 / 베데스다 = 자비,은혜의 집 /

         베다니= 가난(고난)한 자의 집 / 벧바게 = 무화과의 집 / 벧세다 = 어부의 집 /

         벧산(벧스안) = 안식(평안)의 집 / 벧 호른 = 동굴, 구멍의 집)

    ○가나안 족속이 이 지역을 지배할 당시 태양신(샤마슈; Shamash)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다.

      ※ 성경에서의 다른 지역인 「벧세메스」?

                - 잇사갈 지파에 속한 「벧세메스」(수 19:22) ⇨ 갈릴리 남쪽 2㎞, 요단 강에 연 곳.

                - 납달리 지파에 속한 「벧세메스」(수 19:38) ⇨ 두로의 남남동 「하리스」

                                 ⇨ 납달리는 이곳 사람들을 몰아낼 수 없어 강제 노동을 시켰다(삿 1:33).

                - 애굽의 「온」(헬리오폴리스)을 벧세메스라기도 한다.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석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렘 43:13)

                  (참조; 예레미야 43장? 「이스마엘」이 바벨론이 임명한 그다랴를 죽이고,

                                   또 「이스마엘」은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으로 가 버리고, 「요하난」이 백성들과

                                           예레미야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려 할 때 애굽으로 가면

                                                  칼이 애굽을 따라 가서 죽게 될 것이라고...

                   이 「온」(벧세메스)는 요셉의 장인 「보디베라」가 태양신의 제사장으로 있던 곳(창 41:45)

  ➂역사

    ○가나안 점령 전에는 「하르헤레스(Har-heres, 태양의 산」 불리던 아모리 족의 성읍.(삿 1:35)

    ○단 지파와 유다 지파 경계지에 위치하여 단은 「이르세메스」(태양의 성읍)으로 불렀다.(수 19:41)

    ○유다지파는 「벧 -세메스」로 부르다가(수 15:10) 단 지파가 북쪽 「라이스」로 옮겨간 후에는

                                                                      완전한 유다 지파 영역이 되었다.(수 21:16, 대상 6:59)

    ○이곳은 레위인의 성읍으로 구분되어 고핫 자손들에게 주어졌다.(수 21:16)

2.벧세메스에서의 성경 역사적 사건

  ➀블레셋이 빼앗아 갔던 법궤를 돌려 보낸 곳.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아벡 전투」(삼상 4장) - 법꿰 빼앗기고 홉니, 비느하스의 죽음.

      - 아스돗-가드 -에그론

      - 새 수레 - 멍에를 메어보지 않는 젖 나는 소 두 마리(송아지는 집에 돌려보내고)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삼상 6:9)

      - 벧세메스로 가는 소들?

         / 젖 나는? - 새끼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확률이 많은 어미소

         /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 어깨의 아픔, 수레를 모름,

         / 두 마리의 조율? - 두 마리의 같은 걸음, 같은 마음.

         / 벧세메스로 가는 길? - 직선으로 12km, 길은 약 20km

             ! 소렉 골짜기 길을 따라 올라 가는 약 20km의 길.

             ! 고도차; 에그론(60~80m) ⇨ 벧세메스(120~280m) / ※ 예루살렘(750~800m;최고점 880m)

                ⇨ 이 모든 것이 맞아 극복되어져야 한다.

     - 소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다라 가니라」(삼상 6:12)

      - (Q.T) 왜? 블레셋 사람들은 「벧세메스」로 정하고 법궤를 돌려보내는가? 실로로 보내지 않고...

             /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스라엘 관문 도시, 레위지파의 성읍 중 고핫자손들의 성읍?

                        (레위= 고핫, 게르손, 므라리 / 고핫 - 아론- 대제사장)

    ○벧세메스 사람들?

      - 밀을 베다가 보고 기뻐하고 수레를 패고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렸다.

                  (아마? 레위인 고핫 자손들이 이 일을 주도 했을 것...)

      - 그러나 법궤를 들여다 본 고로 (오만) 칠십 명이 죽게 되었다.- 「백성이 슬피 울더라」(삼상 6:19)

      - 두려움을 가진 「벧세메스」 사람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삼상 6:20)

      -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보내어 가져가게 한다.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삼상 6:21)

                  (벧세메스 ~ 기럇여아림 = 14km (벧세메스 북동)

           / 왜 「기럇여아림」인가?

                 ! 실로는 이미 파괴,

                 ! 400년간의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엘리 제사장과 아들들이 죽으므로

                                                                                 사실상 제사장이 상실(?)되어 있는 시대.

                 ! 블레셋과의 거리를 더 늘리므로 블레셋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

                 ! 「기럇여아림」은 기브온에 속한 영역으로 여호수아와의 약속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위한 성소의 봉사자로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수 9장)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 」 - 「기럇여아림」 사람들의 수용....

                 (참조; 기렷야아림의 「아비나답」의 신분, 지파는 알 수 없다? ⇨레위 지파? 기브온?)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삼상 7:1)

  ➁유대 왕 「아마샤」와 북 이스라엘 「요아스」의 전투에서 「아마샤」가 패전(왕하 14:11~13, 대하 25:21~24)

    ○이 전쟁으로 북 이스라엘 요아스는 (예후-여호아하스-요아스-여로보함Ⅱ-스가랴)

              예루살렘까지 와서 성벽 400 규빗을 부수고 왕궁 곳간의 것들을 탈취하여 갔다.

  ➂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시대 때에는 이 벧세메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대하 28:18)

    ○빼앗긴 이유?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대하 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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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이사야(55-1):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이사야 55:1~5

          ※ 55장은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 부를 정도의 만민 구원, 만민 초청을 말씀하고 있다.

                   - 앞의 말씀들은 「선민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택한 백성」의 회복, 구원을 말씀.

                   - 구약의 전체적 입장에서는 구원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구원을 말하고 있다.

                             Vs 그런데 55장은 「만민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구원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열려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심과 같은 맥락이다.

1.만민 초청

  ➀「오호라」- yAh((호이)

    ○yAh((호이)는 성경에서 「화로다!」 「슬프도다!」 「아아!」 등으로 번역되어 쓰인다.

    ○하나님의 초청인데 기쁨의 초청이 아니라 「슬픔과 탄식, 한탄」이 섞인 초청이다.

       - 이것은? 하나님이 초청하는데도 불구하고

                                        초청에 응하는 사람이 소수인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픔의 소리다.

      - 하나님은 구원의 잔치를 베풀어 놓고 초청하시지만

                                      하나님이 오히려 「오호라」라고 해야되는 안타까움(인간의 타락됨이 있다.)

  ➁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모든」이라는 말에

      -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한계가 없다...

         / 주님의 구원의 초청에 기본적으로 배제되는 그룹, 사람은 없다.

         / 인종, 민족적, 국가적, 신분적, 남녀노소,

         / 신명기 23장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다.

              ! 고환이 상한 자, 음경이 잘린 자, 사생자, 암몬과 모압 사람, / Vs 에돔, 애굽?

     -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이 모든 담을 헐어 버렸다.

         / 강도에게도, 이방인들, 사마리아, 자주나, 종이나, 헬라인이나.......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 3:11)

               (스구디아인: 이란계 언어인 소그드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현 우즈베키스탄,

                       타지기스탄(사마르칸트, 부하라)등을 중심으로 거주 하면서 비단길 무역을 주도했던 사람들)

  ➂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구원의 물을 기다리나 구원의 물을 마시지 못하는 자들

      - 사마리아 여인은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의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야곱의 우물 물을 마시고 있다.

         / 대화 중에서 여인은?

            「그 생수를 당신이 어디서 얻겠사옵나이까?」 - 우리에게는 이 야곱의 우물 밖에 없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 자기도 예루살렘에서...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 구원의 물의 기다리나 다른 물을 구원의 물이라고 계속 마시고 있는 사람들!!!!

           ! 아덴의 사람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행 17:23)

           ! 예수님 당시의 주위의 사람들! - 주님을, 메시야를 옆에 두고도......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 8:19)

           ! 이사야 선지자 당시,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는 당시?!

                        이들은 열심히 우상의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구원의 물인 양 마시고 있었다.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사 47:12)

    ○주님은 우리의 구원의 생수가 되신다.

        -주님은?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에 이 말씀을 그대로 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 이 물을 마시고 구원을 받는 자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이 물을 마시며 살게 될 것이다.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계 22:1)

    ○구원의 초청에는 값이 필요 없다.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주님께 나와서 구원의 생수를 먹는 것은 세상의 돈이 아니라 - 믿음과 순종의 돈이다.

            /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 구원은 하나님의 공짜의 선물을 믿음의 값으로 사는 것이고, 후에 감사와 감격이 있다.

                          (농촌: 돈 사러 간다 ⇨ 우리는 구원을 사러 오는 성도들이다.)

       - 우리가 치루어야 하는 값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치루셨다.

            / 속죄의 값, 초청 잔치의 값!?......... ⇨ 완전한 값....

       -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살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➂어리석은 인생들 - 그래서 「오호라」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 생명 아닌 것, 영생 아닌 것에 최대한 투자, 지불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 이것들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고 육체의 것, 우상의 것을 사지만???

          / 이것들은 끊임없이 사고, 또 사야 한다.... ⇨ 계속 목마르게, 계속 배고프게.....

             ! 육체의 것, 우상의 것은 결코 만족함이 없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잠 30:15~16)

            ! 육체를 위하여 더욱 자극적인 것들이 발달되어진다....

         ☞ 성도는!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모든 것에 즐거움을 얻고 구원의 기쁨을 가진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 생명의 본체, 말씀의 본체, 「나는 나로라, 스스로 있다」하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 좋은 것을 먹을 것이고,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 하나님이 하시는 약속이다.

        -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

            / 하나님이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다.

            / 다윗의 후손에서 나게 될 메시야에게로 만민이, 알지 못하는 나라가 달려 올 것이다.

              ! 그리스도에게로 만민이, 알지 못하는 나라가 달려 올 때 나는? 우리는? 이스라엘은?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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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4~27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예배 자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오늘 마지막 -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유?

            - 이것이 생명이 되고, 구원이 되고, 풍성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

            - 자유를 방종으로, 타락으로 만들면 그 자유는 버림을 당하게 되는 지름길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가 최고의 은혜이며 축복이지만

                                               그 자유가 아차하는 순간에 타락과 연결되고 죄악과 연결된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이 자유를 가지고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려 함.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

         -복음에 참여 하고자 함. 이라는 복음에 적극적인 표현이었다면?

  이번에는 자기를 경종하는 부정적 말을 한다.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 」

         ⇨ 자유가 되려 하나님에서 버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걱정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므로 바로의 억압에서부터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방탕이 되고, 타락이 되어 광야에서 죽어간다...

    왕이 되고, 임금이 되고, 권세를 잡은 것이 더 큰 타락이 되고 방탕이 된다.

           북이스라엘 모든 임금들/ 솔로몬 / 웃시야 임금/ 므낫세 임금....

    ☞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 자유를 복음의 기회로 만든다.

             - 더욱 더 주님과, 교회와 십자가와 가까워지게 만든다.

                    (현실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자유가 없어지는데.....)

        주님은?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버리노라」(요10:18)에서 말씀하신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유가 버림을 당하는 자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1. 절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

       이기는 데만 중점을 둔다면 절제가 필요가 없다....

             어떤 수단을 썼으라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길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 신앙은? ⇨ 이기기는 이겨야 하는데

             부정의 방법을 쓰지 않는다. 비겁함을 쓰지 않는다....

        (온갖 무기를 동원, 온갖 흉찍한 말을, 온갖 방법을 찿겠지만..)

              대적들은 검과 몽치를 들고 달려들지만 - 베드로의 칼을 거두게 ...

              대적들은 온갖 희롱의 말을 해 대지만 -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저리..

              대적들은 온갖 거짓 증언들, 사람들을 동원 - 주님은 12군단 천사x

    우리는 이기를 원하지만?

                말에 절제를 한다.(소금을 고루듯)

                행동에 절제/ 시간에 절제를 한다.

                물질에 절제를 하고, 향락과, 유흥과 쾌락에 절제를 한다.....

                젊음의 절제를 하고, 늙음의 절제를 하고 과시 과욕의 절제..

     절제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이지만, 내가 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만 참는 것...

                           절제는? 나에게 건전한 질서를 가져다 준다.

                           절제는? 나의 방종과 타락을 막아 준다.

                          절제는? 나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요즘 절제하지 못하여 - 욱 하는 성질로- 블랙박스 - CCTV 등)

         특히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서 절제는? ⇨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루게 한다.

             -주님은 게셋마네 동산에서 칼을 들고 설치는 베드로에게 절제를 요구

             -다윗은 압살롬 난 때 도망가면서 장군 아비새에게 절제를 요구했다.

                           (시므이의 저주 - 아비새의 분노 - 다윗 왈 )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데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삼하 16:9)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삼하16:11)

               Vs 돌아 올 때? 이 시므이가 제일 먼저 요단을 건너와서 맞이한다.

                             아비새가 볼 때 눈에 천불이다.(뭐 저런 놈이 있나?)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삼하 19:21)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복귀한 다윗은 피비린내 나는 숙청, 복수를 이룰 수 있었지만.....

                   절제를 하지 못하면 썩을 면류관/ 절제를 하면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을 것...

             Ex) 체급을 가지고 운동하는 선수들? ⇨ 식단의 절제., 시간 연습의 절제..

                    이 절제를 해야만 출전이 가능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

2.향방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향방이 없다는 것? 허둥지둥 하다는 것, 뚜렷한 목표 지점이 없다는 것.

        향방 없이 달리는 것은 달리는 것이 아니다. 경주가 아니다. 그냥 뛰는 것.

                  취미, 운동으로 뛰는 사람도? - 시간, 거리, 속도를 가지고....

            원래 「달린다」는 말은 트레코(τρεχω)이다 (트렉이라는 말의 기원)

                           트레코는 「전진하는 노력」이라는 의미가 있다.

                        달린다는 것은? - 트랙으로만 달려야 한다.

          Ex) 육상 트렉 달리기?

                개인: 100m, 200m, 400m, / 800m, 1,500m / 5,000, 10,000m

                        400m 까지는 자기 트랙만을 지키면서 달려야 한다.

                        800m ⇨ 120m까지 자기 트렉 후에 안쪽 레인으로 합류.

                       1,500m ⇨ 출말 직후부터 안쪽 레인으로 가능.

      향방 없이 달리는 사람은? - 달리는 것이 아니라 쫓기는 것과 같다.

            쫓기는 사람은 향방이 없다!

            쫓기는 사람은 질서가 없고, 트랙이 없다.

            쫓기는 사람에게는 상급이 없다. - 경주가가 아니기에...

            쫓기는 사람은 뛰기는 뛰었는데 골인 지점이 없다. (목표점)

     향방이 없다는 것은? 법이 없다는 것이다. -도망가는데는 법이 없다...

            성도의 믿음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말씀대로 사는 것이 향방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 안식일을 지켜라/ 십일조를 하라.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좌로나 우로나 지우치지 말라 ⇨ 이것이 곧 법이고 우리의 향방이다.

                        이것들을 어기고 우리는 향방 있는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할 수 없다.

         ☞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쫓기듯이 살아간다.

                  성적에 쫓겨서, 성과에, 결과에 쫓겨서 ⇨ 목사는 부흥에 쫓겨서....

                              향방을 잃어 버렸다...

                     트랙이고, 뭐고 없이 무작정 달린다.. 경주자가 아니라 도망자가 되어서.

3.허공 -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지 아니하며

         세상의 사람들은 허공을 향하여 기도를 하고,

                                                        허공을 하여 부르짖고, 허공에다가 소망을 둔다.....

   허공? 아무것도 없는데....

           - 그것에다 인생을 걸고, 아무것도 없는 이것을 무서워하고,

           - 아무것도 없는 이것들에게 갖다 바친다....

        ☞ 우상은 허공이다. 코가 있으나 호흡이 없는, 입이 있으나 말이 없는..

                        세워 놓은 대로 있고, 앉혀 놓은 대로 있는... 있으나 없는 것 - 허공!

4. 그리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

        내가 가진 자유를 내 스스로 치고 복종한다.

        믿음에, 말씀에, 십자가에 가까워지고 복종되어지게 내 몸을 친다...

              -  승마자가 말에게 채찍을 치고 방향을 조절, 속도를 조절 한다.

              -  농부가 꼬삐를 잡고 소의 방향을, 속도를 조절한다.

              - 내가 내 스스로 꼬삐를 잡고 나를 쳐서 주님께 복종되어지게 한다...

   이유? - 이유가 경각심을 준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 까 두려워함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이 모습을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 버린 데마」

                                                                                     를 통하여서 보았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가룟 유다에 대한 소리를 들으므로 이것을 두렵게 여겼을 것....

              그 밖에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거의 평생 믿음에 있다가 말년에 믿음에서 떠나는 것도 많이 보았다....

                    우리 성도들? 여전히 그 때의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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