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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이사야(59-2):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이사야 59:9~21

※ 지난 시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한다.(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구원 해 주실 수가 없다. - 사람들의 죄악 때문이다.(죄악이 갈라 놓고 있다.)

       무슨 죄악들인가? - 개인의 죄악들(손과 손가락의 피, 거짓 입술, 혀의 악독)

                                     사회적 죄악(소송과 판결의 굽음)

                                     영적, 신앙적 죄악 (허망한 우상을 만들고 섬긴다.)

                                        ⇨ 이런 것들을 행하기에 발이 빠르다.(7절)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정과 한탄(회개?)

             (이 인정과 한탄은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대표성으로 하고 있는 말씀이다.)

  ➀정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는 이유?....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기 때문이다.

        -내가 공의가 없으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 이것은 모순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님의 진노를 구하는 것 하고 같다.

          / 내가 공의가 없으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공의 없는 나를 심판하실 수 밖에 없다.

            ! 자기가 어두움과 캄캄함에 다니면서 빛을 달라고? - 아무리 빛을 줘도 .....

            ! 자기가 독사의 알을 품고 먹으면서? ......

     ○맹인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진다.

        - 하나님의 빛이 없는 것이 아니다. - 낮의 태양같이 하나님의 빛은 여전히 있다.

          /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들이 여전히 있다.(책망, 指導, 인도, 가르침)

          /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여전이 있다. - 산헤립의 침범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37장)

          /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도 여전히 있다.

            ! 55장의 「누구든지 와서 먹고 마시고 젖을 살 수 있는 때,

                                                                               만날만한 때, 찾을 만한 때, 부를 만한 때...」

                     ⇨ 하나님은 이 때를 여전히, 지금도 주시고 있다.

           ☞ 예수님의 오심 때? 「빛이 왔으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요1:5)

       - 강장한 중에도 죽은 자와 같으리라.

          / 아무리 강장해도 맹인 같이 담을 더듬어야 되고, 그 강장함이 의미없는 강장함이 된다.

            !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만 하여서 강장한 자였다..... 그러나 소경으로 붙들려서...

            ! 히스기야가 39살의 최고(?)의 강장한 때였지만 하나님의 사형선고를 받는다...

          / 주님이 없는 자, 믿음이 없는 자들? ⇨ 세상 속에서 아무리 강장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사데교회: 황금의 왕 크로이소스, 사금, 최고의 요새, 최고의 군사력,

                                                         소아시아 지역의 패권자, 리디아 왕국의 수도...; 사르디스; )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 연약한 자들을 부르짖게 만들던 이들이 이제 자기들이 곰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슬피 운다.

           / 곰의 부르짖음? - 곰은 부르짖음을 할 필요가 없는 동물이다.(겁낼 상대가 없다....)

           / 지금까지 이들은 그 강한 힘으로 남은 부르짖게 만들었으나 자기들은 부르짖어 본 적이 없다.

           / 지금까지 이들은 비둘기같이 슬피 울어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울리기만 했다..

        - 그러나 이제 이들은 곰 같이, 비둘기 같이 부르짖는다.(회개다...)

           / 아무리 울어도 이 울음을 멈추어 주게(지게) 할 정의가 없고, 구원이 없다....

                Vs 굽은 공의, 굽은 판결, 행악의 빠름, 독사의 알, 손과 손가락의 피?

                       이것들이 자기들에게는 유익, 즐거움, 풍성이 되었지만 상대에게는 피눈물이 되었었다...

  ➁이제야 이렇게 울어도 응답(필요)이 없는 이유를 안다.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한다.」(12절)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 때문이다는 회개의 고백이다.

        -2절에서 말씀하셨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 그렇게 가르쳐 주어도 몰랐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이 괴로움을 당할 때에야...

          / Vs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미리 하는 성도!!!!!

               분명 하나님은 미리 말씀을 주시고, 알려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싸인을 주신다...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속였으며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낳으니」(13)

         -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을 짰다...(5)

         -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였다.(7)

         - 평강의 길을 알지 못했고, 정의의 길을 굽게 하여 구불어지게 했다.(8)

                  ⇨ 결국은 자기들의 「죄악의 열매가 자기들에게로 돌아오게 되었다.」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 14:28)

                  “~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겔 33:20)

     ○타락의 결과?

        -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서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도다」

           / 자기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세상이 이제 자기들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그런 일들을 행할 때는 자기들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로 다가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한다.

           / 북 이스라엘 임금의 모습을 보면 결국 자기의 죄악들의 결과를 자기가 뒤집어 쓴다...

2.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약속

  ➀하나님이 살피시고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정의를 굽게 하고, 소송, 판결을 굽게 하던 자들이 회개하고

                                                               곰 같은 부르짖음, 비둘기 같은 슬품의 눈물을 보신다.

        - 보시고 한 동안(?)은 침묵하시고, 고통을 당하게 하시만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신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9:8)

           /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한 대로 갚기만 하시면 우리는 죽음 밖에 없다.....

           /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갚기는 하시지만 사랑과 용서가 있다.

             ! 그러나 이렇게만 하시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로 스스로 의지하사 ~ 」(17~18)

        - 이미 타락한 인간들 스스로는 자정의 능력이 없다.....

        - 가능한 것?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 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 - 하나님의 사랑과 임마누엘

                            「공의를 갑옷으로, 구원을 투구로, 보복을 속옷으로, 열심을 겉옷으로 삼으신다.」

     ○이것으로 오히려 원수들에게 분노하시고 보응하시고, 섬들에게 보복하신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앗수르를 심판 하신다.(산헤립, 멸망)

         - 하나님은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바벨론을 심판하신다...

         - 주님은 우리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만 사탄을 심판하고 책망하신다.

     ○하나님의 임재

         -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동쪽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한다.(전 세계)

         - 하나님의 기운이(여호와의 영)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이다.

             / 밀려오는 강물을 막을 수 없다... 어찌 할 수 없다...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이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고 야곱의 자손 가운데세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 「시온에 임한다.」 - 시온에 임하시는 여호와의 임재를 누구나 인정 (고레스....)

             / 개인적으로는? -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 이 일이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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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광야 - 불평이 많은 곳이다.

                                                                                                                             출애굽기 16:7~9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지난 주부터 「광야」를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다.

              1. 광야 - 주님이 인도하셔야 한다.

              2. 광야 - 광야에는 불평거리도 많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신다.

           그 지긋지긋하던 애굽의 400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리려 가시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하나님은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가신다.

          원망적인 측면에서 보면? ⇨ 이스라엘을 더 고생하게 만드는 길?

                                                 이스라엘에게 더 엿 먹이는 길이 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애굽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장자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을 어쩔 수 없이 나가라고 하였지만

                                                        그들 속에는 분통이 있고, 적개심이 더 불타오른다.

       이렇게 나간 이스라엘이 그들의 신의 인도로 가고 있다는 데

                        좋은 길, 편한 길, 제일 빠른 길로 가는 것을 보면

                              진짜 어쩔 수 없구나! 할 수 없구나 하고 좌절하고 포기할 것인데....

    바로에게 들리는 소리는 그렇지 않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가장 편한 길, 좋은 길을 놔 두고,

                             가나안으로 가는 길 하고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을 목적지로 두고 가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길...

         -가나안으로 간다고 하면서 그 쪽으로 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길...

                           「믹돌」 - 「바알스본」 - 「비하히롯」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 쪽으로 가면 길이 없는데? 그 쪽으로 가면 홍해가 점점 넓어지는데...)

   그래서 바로가 하는 말이 이렇다.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출14:3)

                                                                             이래서 바로는 착각하게 된다!!!

                  도망간 이스라엘을 추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광야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길이 없는 곳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신다.

   물이 없는 곳으로, 방해 하는 아말렉이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에돔땅으로...

          (그럴 줄 알았으면 아래에서부터 에돔 땅으로 지나지 않고

                                                        가는 길을 선택하여 올라왔으면 좋았겠는데.......)

       물론 그들의 범죄와 타락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독사가 우굴 거리는 곳으로,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는 요단 동편쪽으로 해서....

이러니 백성들에게는 불평이 날 수 밖에 없다......

       해방을 시켰으면 바로 가나안 땅을 주셔야지....

       교회를 다니게 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축복을 주셔야지.....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신 말씀들,

                            바로에게 가서 한 말 들을 잘 들어보면 이에 대한 각오의 답이 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은 왜? 바로에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내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지 않고

                       「광야에서 내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고 했을까?

          그 속에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추해야 하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내실 모양이구나!!!!

                -그러나 뭐 상관없어!

                            이리 가던, 저리 가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그리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야!!!!

                -그러나 광야로 간다고 하니? 우리는 각오는 좀 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 이런 각오가 있으면 광야의 불평은 사라질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도 하나님의 절기를 지킬 것이지만 먼저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우리가 될 것이야....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우리가 되어야 돼.....

   ☞ 풍성하고, 잘나갈 때만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자?

                        Vs 힘들고, 고통스러운 광야와 같은 곳/ 같은 시간/ 같은 환경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변함없이 출애굽의 절기를 지키고 찬양하는 자...

           욥이 동방에서 제일 큰 자로 있을 때에도..

                        Vs 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도, 종들에게, 어린이들에게 멸시?....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고 광야로 전전긍긍하던 때에도....

                        Vs 천하를 얻고 왕이 되어 왕궁에 있는 때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을 때에도..

                         Vs 핍박으로 쫓겨 터어키의 광야 카파토기아, 갈라디아 광야....

           부산성동교회 초대 성도들이 북한의 고향의 교회에 있을 때에도...

                      (함흥북주동교회, 함흥남부교회, 함흥북부교회, 원산신풍리교회 등)

                     Vs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 부산땅으로 피난 왔음에도에도...

하나님은 광야의 어려움, 이것으로 나오는 불평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이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고 아끼고 계심을 보이실 것이다.

          Ex) 목회를 하면서 가끔 성도들로부터 듣는 소리가 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이런 시련을! 이런 고통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가 봅니다.....

                        (오죽 답답하면 목사에게 이런 소리를 하겠는가 마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고, 아끼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너를?

         아예 처음부터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교회 다니게도 하지 않았을 것...

         원래 너 살아가는 그대로 살아가게 내 버려 두어버렸을 것이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불렀고,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 믿게 하였고,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교회를 이루고 다니게 하셨다...

       ☞ 너희들을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지 광야에서 고통 받게 하려고,

                                      광야에서 살다가 죽게 하려고 이끌어 낸 것이 아니다.

  그러면 광야에 나온 백성들에게 있는 불평들?

  1.홍해 앞의 불평 - 살기 위해서 나왔는데 꼼짝 없이 죽게 된 것....

                    자유를 얻었는가 싶었는데 꼼짝 없이 죽게 되고, 갇힌 곳.

                                                     그러나 하나님이 마른 땅과 같이 열어 주실 것이다....

           백성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이끌어 냈느냐」고 하지만...

                         「우리를 내 버려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겠노라」 하지만

               이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은 없었다..... 진짜 불평불만 할 수 밖에 없는 곳..

                               제일 처음에 제일 큰 시험이 왔다.... (점점 강도가 놓아졌으면?......)

         사람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때? 모세는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아말렉과 같은 경우에는 내가, 우리가 칼들고 창들고 싸워야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나는 칼 하나, 방배하나 들지 않고

                                                           하나님이 싸우셔서 주시는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2.쓴물과 목마름의 불평이 온다.(수르의 마라의 쓴물)

                 호렙산의 므리바(맛사) - 가데스의 므리바)

            단물이 있고, 물이 많으면 그 곳은 광야가 아니다../ 물이 없기에 광야다.

            물이 없기 때문에 광야이다.... 어쩌다 물이 있어도 그 물은 쓰다....

                                                                               있어도 먹지 못하는 물이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달하기 전에

                                                         - 쓴물과 목마름을 경험하게 하신다...

         이 경험이 있는 자이 젖과 꿀의 귀중성과 은혜를 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젖과 꿀을 먹다 보니 귀한 줄을 모른다.....

                (카드를 쓰다 보니??,  에어콘을 쓰다 보니, 

                                    가스렌지 -전자렌지를 지나 인덕션을 쓰다 보니???)

            ⇨ 장작 떼던 때, 연탄(19공탄) 불 갈던 때? / 거기에 밥해 먹던 때?

      만나를 「이 박한 식물(한찮은 식물)」(민21:5)이라고 하는 사람들?

             -적어도 애굽의 밥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만나가 처음 내렸을 때 감격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소리를 더욱 해서는 안 된다.....

3.모세와 아론이 원망되어지고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되어진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의 반역 사건이다.

                이들과 함께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지휘관 250명이 동조한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스스로 우리 위에 앙이 되려 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부정,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부정,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직을 부정(제사의 부정)이다....

     ⇨ 단순한 불편의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과 주의 종에 대한 불평과 부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의 불평들? 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잠재워 가는 성도들!

         그 불평의 때에 오늘 아침에 먹은 만나를 먹은 내 입임을...

                                     오늘도 태양과 함께 있는 저 구름기둥을 보며,

                                     지난 밤에도 있었고 오늘 밤에도 여전히 있을 불기둥을 보면서....

               감격하고, 감사를 더 찾아 가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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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지명 강해

 

                             성경지명(95):소돔과 4 성읍(나라)(1)

                                                                                                                                             창세기 14:1~3

 

 

 ※ 5개 도시의 개괄적 모습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소알) 5개 나라(성읍)은 사해 5~6시(?) 해변에 위치 해 있는 도시들..

       ○아브라함 당시에는 5개 동맹체로 형성되어 있었고 맹주는 소돔이었다.

                (블레셋 5개 동맹체=아스돗, 아스글론, 가사, 가드, 에그론)

         - 당시 동맹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들의 생존 전략의 강력한 힘이 되었다.

                 아브라함도 헤브론에서 마므레와 그의 형제들 에스골과 아넬과 동맹을 맺고 있었다.(창14:13)

                  (롯을 회복하여 돌아와서 수고한 분깃을 줄 때는 「아넬, 에스골, 마므레」 순으로 말함(창14:24)

            Vs 동맹체를 이루지 않고(?) 있었던 「그랄」 「아말렉」 「세겜」 등은 오래 존속 하지 못했다.

         - 4개 도시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난 뒤 동맹체는 자동으로 와해되고 벨라도 곧 없어진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4 성읍은 심판을 받았으나 소알(벨라)는 심판을 받지 않았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창19:21~22)

       -「벨라」가 「소알」로 개명이 된 것은 심판 때 롯이 도망하여 들어간 일로 변경되어졌다.

       -의미적으로 벨라가 소돔, 고모라와 함께 하는 동맹체였지만 타락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1.소돔((םדסְ, Σόδομα)

  ➀이름의 뜻; 「에워싼 장소」

     ○현; 사해 남부 서안 제벨 우스둠(Jebel Usdum; 소돔의 산, 암염 산; 216m, Lot's Wife)

  ➁갈릴리 북동쪽의 4개 연합국과 소돔을 중심으로 한 5왕과의 전쟁과 롯, - 아브라함의 회복.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왕 디달 Vs 소돔 연합국.

       - 이들의 맹주는 시날 왕 아므라벨이었지만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지원하여 싸움.

       - 이유? - 12년 동안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섬기던 소돔의 5개 왕이 배반하므로...

     ○소돔 5개 연합의 완전한 패배 Vs 아브라함의 318명의 군사 + 마므레 형제 연합

       - 「단」까지 추격하여 잡혀 가던 사람들과 롯을 회복 - 살렘 왕 멜기세덱의 영접과 십일조.

  ➂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적어도 「소돔」은 롯이 아브라함과 분리 되는 그 때도 이미 타락의 도시였다.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2~13)

        - 롯?이 아브라함과 분리 될 때의 이유? - 목축의 문제..

        - 그런데 그가 바라보았던 목축하기 좋게 보였던 그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라고 한 그 곳에서 목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 「도시들에 머무르며」 ~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 변질

            /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는 보이고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는 보이지 않는다....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가 보이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아야 되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를 보러 가시는 하나님?(창 18장)

        - 이 때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에 있을 때 3 사람이 지나간다.(그 중 한 분은 하나님)

        - 아브라함의 대접 -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 이와 같은 해 얼마 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꾸게 하셨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라고 말씀을 해 놓으신 상태이다.

            / 그럼에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확신이 없었고 이번도 웃는다......

        -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말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창 18:20)

                  ⇨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21)

            / 하나님이 직접 소돔과 고모라에 들어가서 볼 필요가 없다.(다 아시는 하나님....)

              ! 그럼에도 「 ~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심은? 하나님의 심판의 신중성!,

                              그래도 살려 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도가 있다.

              !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셔서 그들의 죄악을 직접 확인하시는 모습.

            / 성경 말씀으로 들어오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이다...

              ! 심판을 당해야 되는 직접적 1차 대상은 「소돔과 고모라」였다.

              ! 그러나 안타깝게 「아드마, 스보임」이 함께 심판을 받는 성읍이 되어 진다.....

           / 두 천사가 「소돔」에 들어갔을 때 롯의 영접과 사람들의 타락.(창 19장)

              ! 두 천사는 「소돔」의 죄악은 확인 했지만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은 확인 하지 않았다.

           / 「소돔」의 죄악성만 확인하고도 나머지 성읍들은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이 된다..

                Q.T// 우리가 누구와 연합을 하며, 무엇으로 연합을 이루고 있는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 15:33)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Vs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시 119:63)

                      형제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시 1331)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의 멸망

          / 성경에서 시간적인 흐름을 보면 두 천사가 롯과 두 딸을 「소알」로 들이고 난 뒤 심판.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도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였더라」(창 19:23~24)

                  (즉;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 볼 때는 아직 이런 심판이 내리지 않는 상태였다...)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약 65km 떨어진(직선)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헤브론에서도 보였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창 19:27~28)

                    (아브라함은? 소돔을 어떻게 멸망시킬지 몰랐다. 밤에 소돔성 쪽을 보았다고 하면? )

                    (아브라함은 현 시점에서 조카 롯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 멸망 중 롯의 구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살리셨다.

             ! 성경상에서는 하나님이 롯에게 이 말을 하신 적도 없고, 아브라함에게 이 말을 하신 적도 없다...

             !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말한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29)

                      (하나님이 직접 말씀 해 주시지 않지만 롯은 이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은혜와 도움, 보호인 것을 아는가?

                    Q.T// 보디발? 종인 요셉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가?

                             라반? 야곱 때문에 자기 집이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을 아는가?

                            여호수아? 모세와 아론과 훌의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가?

    ○성경에서의 소돔?

        - 극도로 타락으로 심판 받은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Vs 바벨론? 음녀, 사탄의 세력의 대명사)

        - 여기에서 파생된 말들?

            / 소돔의 관원(사 1:10)

            / 소돔의 포도나무(신 32:32)-독이 든 포도, 포도주는 뱀의 독.(Vs 사 5:7 여호와의 포도원)

            / 소돔의 죄악(겔 16:49) - 예루살렘의 타락과 죄악에 대한 비교

         - 남색의 어원? = Sodomy(남색, 수간, 항문성교) /

                     (Vs 슈나미티즘(Shunammitism; 수넴 여자 아비삭;왕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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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이사야(59-1):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이사야 59:1~8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➀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내리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18:3)

    ○기본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고,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 넣어주셔서 생령이 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신 사람을 통하여 교제하시고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지고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 때때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현현 하실 때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 하셨다.(아브라함, 이삭등에게...)

    ○타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라」 「사탄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➁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사 59:1)

         이미 50:2에서도 말씀했었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

    ○주님은 양과 소의 제물(동물)로서는 한계가 있는 속죄를 영원한 속죄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전 인류를 위한 속죄제 제물이 되셨다.

       - 주님의 십자가 속죄와 구원에는 대상적 한계, 시간적 한계, 지역적 한계가 없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➂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해 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구원받게 하는데도 구원을 해 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 하나님의 천사가 손을 잡고 소돔성을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는 롯의 아내!!

        - 5번의 말씀을 주시며 돌이키기를 원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가룟 유다!!

        -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데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자들!...

        - 구원의 1 순위인 유대인들이지만 복음 이방으로 돌려 후 순위가 되게 할 수 밖에 없는...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롬 11:11)

              Vs 이들은 구원해 줄 수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극과 극)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대상 ⇨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바뀐다.

  ➃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지만 구원을 해 줄 수 없는 이유?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죄악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시킨다.

       - 여기서 믿음이라 함은 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보혈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는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7)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 사탄은 사람을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하나님과 완전히 동떨어지게 만든다.

           / 사탄은 죄악과 친해지게 하므로 하나님과 친해지게 할 틈(?),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사야 당시 백성들의 죄악들?

       - 개인의 죄악 ⇨ 손의 피, 손가락의 죄악과 입술의 거짓 말, 혀의 악독.(3절)

           / 손에 피를 묻힌다....!!!! ⇨ 살인의 피 +인신제사의 피 +우상의 제물의 피 +거짓 제물의 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 가인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은?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창 4:11)

                Vs 대제사장들은 그 손에, 옷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피가 마를 날이 없다....

                       손가락에 적셔 일곱 번 뿌릴 것이요,, / 피를 찍어 제단 뿔들에 바르고..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 하나님의 일, 하나님을 찬양, 복음 전파(진실, 진리), 구원의 혀 Vs 죄악으로 변질.

       - 사회적 죄악 ⇨ 소송과 판결의 죄악.

          / 인간 사회속에서 가장 정의롭고 공의로와야 하는 소송과 판결이 굽어졌다.

            ! 소송과 판결이 굽어졌다는 것은 강한자와 약자의 균형의 추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 인간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는 강한 자와 약자가 있을 수 밖에 없으나

                                                 소송과 재판에서는 강한 자와 약한자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부분에서 율법으로도 엄중하게 말씀하였다.; - 많은 부분에서 자주..)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레 19:15)

       - 영적(신앙적 죄악) ⇨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 우상과 관계된 모든 것은 허망이다.

              ! 우상자체가 허망이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사 44:9)

              ! 우상을 만들 때? 의지할 때는 최고의 소망, 완벽한 소망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 결과는 허망(虛妄)이다......

              ! 사탄의 말의 결국은 허망(虛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광명의 천사의 모습에서, 가장된 의의 일군의 모습에서(고후 11:14)

                   Vs 주님은 이사야서 53장의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셨지만

                         사탄은 광명의 천사의 모습, 의의 일군의 모습, 정의의 사도의 모습으로 왔다.

              ! 사탄의 말, 허망한 것을 의뢰하는 그 때부터 악이 잉태되고, 죄악이 나오게 된다.

       - 죄악의 실행?

           /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을 짠다. ⇨ 남을 해치기 위한 계획, 음모, 설계

              ! 그러나 이것으로 얻은 것들이 그들의 옷을 될 수 없을 것이다.

              !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 흘리기에 신속하다.

                     ⇨ 하나님의 일에는 「왜 이리 번폐(번거)스러운고」(말1:13)

                 Vs 몰렉에게 갈 때는 「피곤할지라도 헛되지 않다, 피곤하지 않다」(57:10)고 한다.

           / 「그들이 행하는 곳에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8)

              ! 그들이 걸어가는 길, 만들어 가는 길이 결로 평강의 길이 되지 못한다.

              ! 결국 그들이 걸어가는 길, 만들어 가는 길이 그들의 심판을 빠르게 자초하게 될 것이다....

                      ( 57장의 길; 산 꼭대기의 상수리 나무로, 골짜기의 매끄러운 돌을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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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광야 - 주님이 인도하셔야 한다.

                                                                                                                       출애굽기 5:1~2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내가 여기 있나이다」를 이루고 싶어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Vs 우리는..

    오늘부터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나온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광야」라고 하는 주제로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찾아보겠다.

         첫 시간? ; 광야 - 주님이 인도하셔야 한다....

      흔히 우리 인생을 광야와 같은 인생이다고 한다....

          이 말은 힘들다. / 우여곡절이 많다. / 변동성이 많다./ 미래를 모른다..

                                                                             등 많은 말들이 함축 되어 있는 말이다....

   자전거: 오프로드 자전거가 있다.

        MTB(산악자전거), 그래블 바이크(자길, 흙, 비포장도로;)

        Cx(시클로크로스; 진흙, 잔지, 장애물)

        지하트/ Fat(파트 바이크; 눈길, 모래길) ⇨ 타이어, 쇼바

  자동차; 오프로드 자동차. - 4륜 구동, 로우기어

      Diff Lock/ Brake LSD; 바퀴 하나가 공중에 뜨거나 빠졌을 때 그 바퀴를 제어하는 장치

      높은 지상고, 리프트업 서스펜션(지상고를 높이는 장치)

      윈치(Winch) 장치; 로프를 와이어 당겨 탈출하는 장비.

      언더커버& 스노클; 자체 하부 부품 보호, 깊은 수로 주행시 엔진 흡기용 스노클...

          그래서 이 자동차는 그야 말로 탱크처럼 아무 곳이라도 간다....

                   심지어는 차가 뒤집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간다...

   일반 승용차는 엄두를 낼 수 없고,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있다.

          아스팔트 위로 달리도록 설계되어 있는 자동차가 이 길로 가려한다?

                          절대로 갈 수 없다. 한 발자욱도 가지를 못한다....

  우리 사람들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지나가고 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지나가는 우리들이 온전히 지나갈려고 하면

             앞의 오프로드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설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니! 이 모든 설비를 갖추고 있는 완벽한 오프로드 자동차라고 해도

                   엔진 자체가 고장이 나면 그 좋은 모든 설비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우리의 결론은?

         이 광야와 같은 세상, 길을 지나갈려고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지나갈 수 없다.

     - 지나갈 수 없으면 지나가지 않으면 되는데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문제다.

     - 둘러가면 되는데 둘러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문제다.

     - 다른 수단을 사용하면 되는데 여기는 오프로드 자전거도,

                                                    오프로드 자동차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스라엘이 400년의 애굽의 종살이를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간다.

        하나님이 배성들을 애굽에서의 종살이에서 해방을 시켰으면

     바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살게 하시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광야로 이끌어 나가신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광야의 길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보다 더 힘들고, 더 괴롭고, 더 어렵게 느껴지게도 하는 길이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돌아가자 한다」

                         (그것도 광야로 나온지 오래 된 것도 아니고

                                깊숙이 들어온 것도 아닌, 나온지 딱 한 달 지났을 때이다.)

       추억은 아픈 것이라도 포장 미화 된다고 하였지만.....(출 16:3)

             -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 있던 때가 좋았다고 한다.

             - 거기서 떡을 배불리 먹던 때가 좋았다고 한다.

      이 소리리들이 당연히 불신앙의 소리라고 생각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출애굽을 한지 채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홍해를 건넌 그 경이로움이 바로 엊그제인데

                        이런 소리를 하는가? 로 이해를 좀 해 준다고 하면.......

                그만큼 광야의 길이 힘들고 어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광야는 -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되는 곳이다...

        우리가 천국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하여야 하는 곳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이다.

      -이 길에는 배고픔도 있고, 목마름도 있다.

      -이 길에는 다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하며 부추키는 사람도 있고,

      -이 길에는 아말렉과 같은 대적자가 있고,

                                                에돔과 같이 둘러가게 만드는 것들도 있다.

      -이 길에는 미디안과 모압이 풀어 놓은 미인계가 있고, 불뱀도 있다...

   그래서 이 길을 통과하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이 광야를 지나 갈 수 없다.

           모두가 중간에 포기해 버릴 수 밖에 없고, 광야에서 죽게 된다....

            -지나가면 중도에 포기 해 버리든지 거기에서 죽어 나가는 길! - 광야!

           -모든 인생이 지나가야 하는데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길! - 광야!

           -이 광야를 통과해야만 약속의 땅에 다다를 수 있기에 가아만 하는  - 광야

 그러면? 나 혼자 비껴나서 다른 길로 혼자 안전한 길로 가면 안 될까?

        혼자 블레셋 길로 살짝 빠져서.....

        나는 엘림에 더 머물러 살다가 다른 사람들 다 가서 도착하고

                          난 뒤에 그 안전할 때,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가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나 혼자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스라엘을 이루는 곳에 나도 같이 이루고 있어야 하고,

            -우리의 믿음은 선민을 이루는 곳에 나도 같이 이루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민, 백성들이 이루고 있는 광야 교회에

                                                            나도 있어야 하고 이루고 있어야 한다.

      스데반 집사님은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광야에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행 7:38)

       이스라엘의 한 무리가 광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은 교회였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교회였다.

        오늘 말씀에서도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고 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 절이 아닌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들에게 자동으로 주시는 은혜.)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들에게 자동으로 주시는선물)

                 - 우리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광야로 나왔다.

                 - 우리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광야로 나왔다.

                 - 우리는 약속의 곳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광야로 나왔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광야!!!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광야!

          / 그렇지만 이 광야가 끝나고 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있다..

          / 이 세상의 광야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이 있다.

                     그 천국의 약속이 너무나 크기에 우리는 광야의 어려움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수하는 광야의 길의 어려움이?

                                           하나님이 약속한 천국의 약속의 것에 미치지 못하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이것을 참지 못하고, 이것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사람들이 참 많다.

                     고라, 다단, 온과 같이, / 데마와 같이, /고스비를 안는 시므이같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교회를 이루어 광야를 걸어가는 성도들이다.

             스테반 집사님이 말하는 것처럼 「광야교회」를 이루고 걸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냥 광야를 걸어가지만

                                    Vs 우리들은 교회를 이루어 광야를 걸어간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따라 광야를 걸어간다.....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시 78:52)

            믿음으로 광야를 완주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는 교회!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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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지명 강해

 

                                          성경지명(94):가데스 바네아

                                                                                                                                      민수기 13:25~27

 

1.가데스 바네아(( קָדֵשׁ בַּרְנֵעַ, Kadesh-Barnea)

  ➀이름의 뜻

    ○가데스 = 거룩한, 성별된.

    ○바네아 = 분명한 뜻은 없음(개인 이름에서 유래?)

    ○가나안에는 「가데스」 혹은 「게데스」라는 이름이 많은데 「바네아」를 붙여서 다른 가데스와 구별한다.

➁위치?

    ○현; 「아닌 가디스」(("Ain Kadi-s)

    ○브엘세바와 연접한 신광야(Zin) 입구에(애굽위치에서) 위치한다.

       - 「바란광야」는 신(Zin) 광야 의 한 부분으로 신(Zin) 광야의 남쪽 부분에 해당한다.

                (네게브 사막 ⇨ 신 광야 ⇨ 바란 광야)

    ○브엘세바 남쪽 약 80km, 동쪽으로는 에돔(민 2016)과 아모리 족속의 산지(신 1:19)을 접하고 있다.

    ○가데스 바네아는 「아인 엘 구데라드」(Ain el-Qudeirat) 「아인 게디스」(Ain Qedeis)

                                 「아인 고세이메」(Ain Qoseimeh)의라는 세 개의 샘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3개의 샘으로 많은 인원이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곳.

    ○브엘세바에서부터 바란 광야가 이루어지므로

                              의미적으로 가나안 땅과 분리되어지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 범주에 들어 있다.

                         (사실상 땅의 범주로 보면 약속의 땅 최 남단이다.)

2.성경에서의 역사

  ➀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이 길을 통하여 올라왔다.(창 13:1)

           (애굽 -네게브 -브엘세바 -헤브론 -벧엘과 아이 사이; 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롯과 분리)

           (롯과 헤어지고 난 뒤 다시 헤브론으로 내려와서 산다.; 아모리 족속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

    ○이 길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통하는 길 중 성경에서는 「술 길」(창 16:7)이라고 한다.

  ➁아브라함과 가데스 바네아(창 14:7)

    ○아브라함 시대 갈릴리 북쪽의 4명의 왕이 소돔과 고모라성을 쳤을 때

                                                              당시 「가데스」에 살고 있던 아말렉 족속도 같이 쳤다.

           (이때 아므라함은 조카 롯고 헤어지고 난 뒤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었다.)(창 13:18)

      -이 때는 가데스를 「엔미스밧」이라고 했다.

             “그들이 돌이켜 엠니스밧 곧 가네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아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창 14:7)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임신하여 교만하여 사래를 학대하다가 쫓겨나서 방항하던 곳.

       - 쫓겨나서 「술 길」에 있을 때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말씀을 주신 곳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족하라」(창 16:9): 교만하지 말고... 넌 종이야..

       - 이 곳을 「브엘라해로이」(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 로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➂12 정탐꾼을 보낸 가데스 바네아

    ○시내산을 출발하여 11일 후에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다.(신 1:2)

       - 성경 내용상 시내산 다음으로 오래 머문 곳으로 볼 수 있다.

           (시내산: 3개월에 도착~2년2월 25일 출발 / 11일 후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적어도 40이상)

           (시내산 출발 -3일째에 디베랴(악한 말로 불사름)

                                   기브롯 핫다아와(섞여 사는 인종들;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도다)

      - 하세롯 - 바란광야 - 가네스 바네아)

      -12 정탐꾼을 보냄.

            / 10명의 報告 Vs 여호수아와 갈렙의 報告

            / 40년의 광야 생활 시작 Vs 11일로 끝났을 것을.....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리」(민 14:28)

                ??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 특히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

            / 정탐꾼의 모순?(잘 보면, 잘 들으면 들린다. 분별의 영...)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Vs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 10명의 정탐군들의 죄 + 이들의 말을 듣고 불평하고 원망한 백성들의 죄

              ! 죄에 빠뜨리는 죄, 분별하지 못하고 빠뜨려지는 죄.

           / 후회 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올라가지만 아말렉과 가나안인에게 패배

  ➃그 후 광야를 돌고 돌아 다시 가데스에 진을 친다.(민 33:36)

    ○두 번째 가데스에서 있었던 사건?(민 20장)

       -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죽음(민 20:1)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20:1)

       - 「가데스 므리바」 사건과 모세의 두 번 반석을 치는 사건.(가데스 므리바 Vs 맛사, 므리바)

          (참고: 1차 므리바는(출17:장) 호렙산에 도착하기 전의 호렙산에 있는 므리바=맛사, 므리바)

              「네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출17:6)

       - 네게브 거주 「아랏 왕 」이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전쟁 - 호르마의 승리.

       - 에돔의 거절로 세렛 시내를 돌아서 가게 되어 불평.

    ○두 번째 가데스에서 - 호르산(아론의 죽음) - 살모나와 부논 ~~~~~ 모압 평지

    ○두 번째 가데스에를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이 걸려Te.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년동안이라 」(신2:14)

          ☞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턱이었으나,

                         믿음의 부재로 인해 38년에 가까운 긴 광야 방랑의 출발점이 된 신앙적 경고의 장소.

               (40년의 계기, 미리암의 죽음,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계기, 다음의 아론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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