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728x90

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이사야(41-1):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실 것임을 예고)
                                                                                                                                        이사야 41:1~9
    ※ 1~35 죄악과 타락과 심판 / 36~39 히스기야를 통한 역사적 사실 / 40~66 회복과 구원.
    ※ 41~ 45장까지는 고레스와 연관된 말씀으로 고레스를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의 말씀
        「고레스」가 직접 언급되어지는 장은 44장과 45장./ 그리고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46~47장)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은 곧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
             ⇨ 「고레스」는 이사야 보다 약 150년 후의 사람. / 앗수르 - 바벨론 - 파사
1.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2)
  ➀장차 「고레스」를 통하여서 세상을 점령하게 하실 분은 누구인가? -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 세상의 모든 나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아! 하나님의 이 계획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보라.
       -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너희 모든 힘을 다 모아 보아라.
              (섬들아! 라고 하는 것은 지중해의 섬들을 말하지만 많은 신들의 탄생지가 섬들이다.)
              (그 섬들의 지혜, 그 섬들이 가진 신들의 힘....)
    ○우리가 서로 재판 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개역;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 법정에서 가려보자는 의미로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려보자.
         / 하나님이 앗수르를 통하여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심판을 누가 시비 걸 수 있는가?
         / 하나님이 바벨론을 통하여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심판을 누가 시비 걸 수 있는가?
         / 하나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파사 고레스를 통하여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것에 댛서 누가 시비 걸 수 있는가?
  ➁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로 그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하나님은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깨워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 바벨론의 속국 메데 - 메데의 屬地 엘람 - 엘람의 지방장관 캄비세스 1세 - 고레스
       - 고레스생 출생과 모든 성장에는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가 있었다.
       -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게 하기 위하여 「고레스」를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실 것.
          / 하나님은 「고레스」를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시고 - 「내 목자」 「나의 종」으로 만드신다.
          / 「고레스」를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시고-「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44:28) 하신다.
  ➂「고레스」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일.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한다.
       -열국의 왕들이 그의 칼에 티끌 같게, 활에 草芥 같게 하실 것이다.
       - Bc 550년 메데의 「아스티아게스」(외조부) 함락 / Bc 546년 리디아 「크로이소스」 사데 함락
              (리디아의 크로이소스와 메데의 아스티아게스는 처남 매부? 사위?)
              (아스티아게스는 크로이소스의 딸(혹은 여동생)인 「아르네니스」와 결혼 하여 만다네 출산)
              (고레스의 진 외가 할아버지?)
       - Bc 539년 바벨론 함락 / Bc 536 파사.
    ○정복- 「그들을 쫓아가서 그의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3)
       - 고레스는 아시아/ 애굽/ 인도서부까지 점령하는 대 제국을 이룬다.
  ➃「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 내었느냐?」(4절)
    ○이 일을 하시는 분 - 여호와! 성취하시는 분 - 여호와!
       - 하나님은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렘33:2)
         / 처음부터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고,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시는 분.
         / 주님이 불러내시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 사람, 자연, 천둥, 비, 뇌성, 우박.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4절)
      - 이미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나라, 민족들을 주님의 발 앞에 불러내었었다.
      - 그리고 주님은 「나중에 있을 자」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 이사야가 이것을 쓰고 있는 이후의 불러냄을 받을 나라, 민족, 사람 사람들.....
         / 나중에 있을 느부갓센살/ 나중에 있을 고레스 / 나중에 있을 주의 선지자들 ......
  ➃ 이 하나님의 불러내심에 대항하는 민족, 나라, 사람들!(5~)
    ○세상은 고레스를 보고 두려워하게 된다.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
    ○그렇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서로 도우며, 너는 힘을 내라 하고」 협력하고
                                                                      그들의 우상을 의지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다.(7절)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 바벨론의 나보니두스 + 애굽의 아마시스의 동맹이 있었다.)
      - 세상적 힘과 논리로 대항하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기지는 못한다....
2.고레스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본 일?
  ➀이스라엘의 회복.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스라엘을 땅 끝, 땅 모퉁이에서 불러 다시 하나님의 눈이 있는 예루살렘에 모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알지 못하던 땅, 생각지도 못하던 낮선 곳에 포로로 잡혀와 있다.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렘 17:4)(렘 15:14, 16:13)
      - 하나님은 우리를? 땅 끝, 땅 모퉁이에서 불러 하나님 앞에, 생명, 구원의 자리에 세우셨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죽음의 벼랑 끝, 사망의 벼랑 끝, 지옥의 벼랑 끝 Vs 주님의 갈보리 언덕의 끝)
             (주님의 갈보리 십자가 언덕은 사망, 음부의 끝 지점이며 영생의 시작점이다.)
    ○싫어하여 버렸지만!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할 것이다.
       -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싫어하여 버렸다. - 그러나 아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 하나님은 사 1:4에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고 「행악의 종자, 부패한 자식」 이로다고 했다.
          /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루터기는 남겨 둘 것이다.(사 6:13)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느 9:31)(렘26:44)
          / 이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다.
             ! 하나님은 다윗을 싫어하셨지만... - 밧세바 사건, 인구조사 사건.
             ! 하나님은 사사기 시대의 사람들을 팔아 버리지만.. - 또 다시 사사들을 통하여 회복.
             ! 하나님은 광야의 사람들을 심판하시려고 하였지만....
    ○싫어하여 버렸지만 완전히 버리지 않고 다시 나의 종이라고 하는 이유?(8절)
       - 하나님이 택한 야곱,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 그들에게 약속한 것과 그들의 후손에 대한 약속....
       - 우리의(?)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럼에도 아끼시고, 그럼에도 말씀을 주시는 이유?
                 (그럼에도 엠마오로, 그럼에도 갈릴리 바다로, 그럼에도 베드로를...)
          / 주님의 십자가 약속이 있기에.....
          /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너무나 귀중하기에......
          ☞ 성도는 주님의 이 구원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 가룟 유다.(네 할 일을 하라!)



반응형
728x90
728x90

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사마리아와 사마리아

                                                                                                                                누가복음 9:51~56

       오늘 「내가 여기 있나이다」가 되어 예배드리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의 「사마리아와 사마리아」는 비교의 개념으로 제목을 잡았다.

             같은 사마리아인데 같은 사마리아와 비교를 한다....

     나는 오늘 이 본문의 사마리아 Vs 요한복음 4장에 있는 사마리아

                                비교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한다.

     -본문의 사마리아는 주님을 배척하여 받아들이지 아니하므로

                                     구원과 멀어지고 주님이 다른 마을로 가시는 장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사마리아...

먼저 구원 받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사마리아 중에서 수가성)

       시기: 예수님 공생애 첫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갈릴리고 가는 중

       과정: 첫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 성전 청결

               - 니고데모의 방문 - 거듭남 - 요 3:16의 말씀을 하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시는 길.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계획? -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개인적인 이유도 아니고, 시간적인 이유, 거리적인 이유도 아니다.

      / 사마리아도 구원 시켜야겠다는 이유이다....

      /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과, 사람과 상종도 하지 않았다.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인과 相從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9)

  그러나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로 일부러 가셨고

         「수가」성 우물에서 여자와의 대화, 그리고 여자의 부끄러움 없는 외침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요 4:39)

            그의 허물(5 남편, 현 남편)있는 것을 내게 말한 사람!!!!!!!!!

             (요즘 교회 설교는 너의 5 남편, 너의 현 남편 이야기 하면 목사 쫓겨난다...

                             아니면 교회 옮겨 버린다. 5 남편, 현 남편 모르는 교회로..)

   이 외침에 동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 여자를 저렇게 변화시키신 분이 누구인가?

       -저 여자의 치부를 드러내고 새 사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결국 동내 사람들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틀 동안 주님과 함께 한다...

              -유대인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동내에 주님이 상종하신다.

              -유대인들은 상종도 하지 않고 둘러 가는 동내를 주님은

                    이들을 더 머무시면서 말씀을 주시고 그들은 주님을 영접한다.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이렇게 이 「수가」성을 중심으로 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

    시기: 주님이 마지막으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때다...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Vs 수가성의 사건은 공생애 첫 유월절....

                이 유월절에 예수님은 친히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서 올라가신다.

                이제 다시 육신을 입으신 주님은 이곳으로 오시지 않을 것이다.

            - 이것을 오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져오면 다시는 주님을 만날

                      기회가 없다. 은혜 입을 기회, 사랑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

              ?? 이 마지막길의 여리고? 소경 2 사람이 치유를 받는다.(눅18장)

                    이들의 외침?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그리고 같은 여리고에서 삭개오가 주님을 영접한다.(눅19장)

       주님의 굳게 결심(=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고 굳게 결심하시고)

              -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굳은 결심.

              -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동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굳은 결심이 포함!!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부! -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53절)

          -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들어가시지만 그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음의 사마리아 때는?

     - 아직 공식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많이 나지 않은 상태...

     - 공식적 주님 활동에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기적만...

 그러나 지금의 사마리아는?

           -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소문이 있고 역사들이 있은 상태......

                / 이것을 지금 여기의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를리 없다....

                      Vs 그런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르는 상태이면 모르겠는데....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알고 있으면서...)

      그래서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난다....

                   특히 「우레의 아들」(막3:17)이란 별명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불같은 성질로는 더 용납할 수가 없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의 이 소리를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신다.

          누가복음 9장의 사마리아는 안타깝게도

                                                         주님을 통한 마지막 은혜의 기회, 생명의 기회를 놓쳤다....

  사마리아와 사마리아!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는 주님을 영접하였고, 주님을 이틀 동안이나 머물게 하였다.

     누가복음 9장의 사마리아는? 지나가시는 주님 마져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마을로 가시게 만들어 버리는 죄악을 범한다...

              영접하는 사마리아 Vs 영접하지 않는 사라마리아

 나는 이 말을 가지고 우리게 그대로 해 본다.

          다윗과 다윗? ⇨ 믿음의 다윗 안에 또 다른 다윗이 들어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지만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골리얏에게 달려드는 그 엄청난 용기의 다윗?

                그런데 그런 다윗에게 또 다른 다윗이 있다.

                             그 욕망 하나 제어하지 못하는 다윗.....

                              자기의 범죄를 은폐할려고 시도하는 다윗......

                              그것이 되지 않으니 충신 우리야를 죽이는 다윗!!!!!!

        아브라함과 아브라함?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까지 내려오는 아브라함.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순종하고 자기 아들마져도 마치는 아브라함.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사명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하는 용기

          그 아브라함에게 또 다른 나약하고 비겁한 아브라함이 있다.

                   자기 살겠다고 아내 사래를 여동생이라고 하고

                                                        비굴하게 바울에게 아무 소리 못하고 넘겨주는......

      노아와 노아가 있다.?

           말씀을 따라 방주를 만드는 믿음의 사람

                        Vs 홍수 후 술 취함, 그리고 그 후 함(가나안)의 저주.....

                      (자기의 술 취함의 실수에 대한 자각, 자책, 회개는 없다..)

                                        오직 함에 대한 분노만 있을 뿐이다...

                           그 분노의 저주와 셈과 야벳에게 한 축복이 오늘에까지 이른다?

      이병석 목사와 이병석 목사가 있다.

                어떻게든 부르심에 감사하며 말씀으로, 진실로 목회를 할려고 하는..

                        Vs 반면 육체로, 세상적 판단으로, 세상적 가치관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도 이런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말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그러면?

                  부산성동교회와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믿음의 처절함을 싸우고 승리를 거둔 성도들.....

                   믿음 사수를 위해 고향을 버리고, 전토를 버리고 믿음을 지킨,

                                  그리고 지키고 있는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한 편으로 눅 9장의 사마리아와 같은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은혜로운 부산성동교회를 말하는 사람들의 부산성동교회가 있고,

                              은혜롭지 못한 부산성동교회 말하는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나의 위치는....)

반응형
728x90
728x90

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지명 강해

 

                                              성경지명(72):고린도(2)

                                                                                                                                  사도행전 18:8~11

1.비울의 고린도에서의 복음 전파(2차 전도여행 중)

  ➀고린도에서 바울과 같이 사역하는 사람들?

    ○실라+디모데 ⇨ 베뢰아에서 내려와서 합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로마에서 추방을 당하여 고린도에 있다가 바울을 만남.

    ○누가 - 바울의 주치의로 복음 전파 현장에 직접 나서지는 않음.

  ➁복음 전하는 바울의 자세(?)

    ○처음 전도의 장소: 회당 ⇨ 핍박으로 「디도 유스도」집으로 변경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5절)

       -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지 않는 적이 있겠는가?

           / 이것은 고린도에서 사역의 그의 각오를 말한다.

    ○아덴에서의 사역과 비교되는 말씀!

       - 아덴에서의 사역은 순수 복음 전파라기보다 철학자들과의 논쟁이었다.

          / 이 논쟁은 곧 복음을 철학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 「알지 못하는 신께」라는 제단을 보고 「하나님」을 알리지만... 알리게 되고

                  알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은 그 많은 신들 중에 또 한 신이 될 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5절)

        - 이 증거의 모습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잘 말씀하고 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다」(고전 2:1)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2)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2:3)

                        (아덴세서의 논쟁은 서로의 설득력의 대결, 지혜의 말의 대결)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2:5)

                          (성경(하나님 말씀), 믿음, 신앙을 사람의 지혜로 바꾸어 버리는 철학적 사고...)

         - 고전 1:21에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했다.

             / 논쟁 보다, 사람의 지혜 보다, 말의 아름다운 것 보다 미련해 보이지만

                 ⇨ 여기서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사람의 능력이 아닌..)

  ➂핍박하는 사람들과 영접하는 사람들.

    ○핍박하는 사람들(회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들)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Vs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6)

       - 「옷을 털어 버린다?」 ⇨ 그 집이 가지고 있는 작은 티끌의 죄악도 묻히기 싫다.....

    ○회당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옮김(회당 옆의 집)

       - 「디도 유스도」에 대한 것은 더 알지 못함.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맛디아」 Vs 「유스도」라 하는 「요셉」 )

            (바울 옥중 서신 골로새서에서 바울과 같이 문안하는 사람의 이름에 「유스도」(골4:11) )

          / 골로새서에 바울과 같이 인사하는 「유스도」가 동일인일 수도 있다....

    ○믿게 되는 사람들?

       -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집 + 수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 바울은 고린도에서 세례를 준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고전 1:14~16)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 집 사람」

                    Vs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예수파로 나뉘어져 있는 중에 바울파 책망?

            “「스데바나」는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 지라”(고전16:15)

    ○그러나 더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핍박.

       - 천하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핍박으로 인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감옥에 갇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않던 바울인데....)

    ○하나님의 말씀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9~10)

      - 다른 지역에서는 사도 바울이 나올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막으신 적이 없다...(고린도의 복)

      -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 잠재되어 있는 구원받을 백성. 하나님이 꼭 구원해야 될 사람들...

  ➃1년 6개월 동안 있으면서 복음을 전파

            (에베소에서는 3달은 회당 / 2년 동안은 두란노 서원에서)

    ○유대인의 대규모적 핍박.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Ad 51~52)

            (델포이 문서에서 「글라우디우스」(Ad 41~54) 황제가 「갈리오」에게 보낸 편지?

                        「나의 벗 아가야 총독 루키우스 윤닝스 갈리오여!」

       - 「갈리오」 총독의 재판?

            /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14절)

            /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 스스로 처리하라」(15절)

                                           유대인들을 쫓아내 버림

      - 유대인들의 분풀이!

              회당장 소스데테를 잡아서 법정에서 때리나 갈리오 총독은 이에 개의치 않음.....

                              (원 회당장은 그리스보였는데(8절) 새 회당인지?)

      - 「갈리오 총독」의 기각?

         / 이 때 까지도 로마는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박해하지는 않았다는 방증.

         / 「갈리오 총독의 기각」으로 로마에서(정치)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갈래」로 인정을 받는다.

         / 이것으로 바울이 로마에까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➄고린도교회의 신앙?

    ○2차 마치고 3차 전도 여행의 사실상 시작 지점이 에베소에 왔을 때 전해지는 고린도 사정?

        -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던 「소스데네」와 함께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것이 고린도전서...

    ○고린도교회?

        - 분열 / 성적 부도덕 / 은사 남용 / 부활논쟁 / 끼리끼리 식사......

        - 선교의 부재 Vs 마케도냐 교회들과의 비교.

             / 분명 고린도는 가진 역량이 있었으나 교회내의 문제로 선교의 부재를 이루고 있었다.

반응형

'성경의 지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지명(71):고린도(1)  (1) 2026.01.30
성경지명(70):아덴(2)  (0) 2026.01.23
성경지명(69):아덴(1)  (1) 2026.01.09
성경지명(68):베뢰아  (1) 2026.01.02
성경지명(65):빌립보(2)  (1) 2025.12.09
728x90
728x90

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이사야서 강해

 

                                    이사야(40-2):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이사야 40:12~11

       이사야 1~35 죄악과 타락과 심판 / 36~39 히스기야를 통한 역사적 사실 / 40~66 회복과 구원

   앞 편?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로하신다.

         - 하나님의 위로는 위로에서 끝나지 않고 곧 회복을 의미한다. ⇨ 노역의 때가 끝났다.(2절)

         - 회복을 위한 준비 ⇨ 광야에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시들지 않고 영원히 서리라.(삼상15:29)(민 23:19)

                   (혹시? 하는 의문을 가지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서.... 」)

1.이스라엘을 회복시킬 하나님의 능력.

  ➀이 세상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시고, 뼘으로 하늘을 재신 분.

       - 이 세상의 모든 바닷물이 하나님의 손 바닥 안에, 이 거대한 하늘이 하나님의 한 뼘 안에.

    ○땅의 티끌을 되에,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기 저울로 언덕들을 달으시는 하나님.

       - 땅의 모든 티끌을 다 모아도 하나님의 되에, 모든 산과 언덕들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진다.

          /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산들을 언덕들을 골짜기들을 바로 평탄케 해 버릴 수도 있지만!!!

                이 평탄의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3절)

          / 교만과 타락의 언덕들과 골짜기, 죄악의 험지들을

                                             하나님이 직접 평탄케 하시면 그것은 우리에게 죽음의 심판이 된다.

                ⇨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평탄하게 하면 주님이 오시는 길이 되어 구원이 된다.....

  ➁하나님의 지혜와 지식(13~14절)

    ○하나님은 누구에게 배우고, 듣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출처는 하나님 본체시다.

       - 하나님께는 누구의 지도도, 모사도, 의논도, 교훈도, 모델(보고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

    ○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광대함?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15절)

       - 열방(온 세계)의 모든 지혜, 지식을 다 동원하여도 하나님께는? - 없는 것과 같은 미미함.

                         한 방울의 물 / 저울 위의 티끌 / 떠오르는 먼지

  ➂이런 하나님이기에 예배, 경배하기에는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고 짐승은 번제에도 부족하다.

    ○이런 것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

       - 이 부족을 숫자로는 결코 메꿀 수가 없고 믿음으로만 메꿀 수 있다.

           / 이미 1:11에서 하나님은?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이사야 1장의 배경에는 숫자의 예배에 만족하고 있는 백성의 모습!

                   무수한 재물, 월삭, 안식일, 절기, 대회, 많은 기도(1:11~15)-「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 바리새인은 숫자의 제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리는 가슴을 치는 회개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2~13)

  ➃하나님은 누구와, 우상과 비교할 수 없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을 신으로 받드는 자에게는 자기 생명과도 같은 것.

    ○우상?

       - 장인이 부어 만들고, 장색이 금으로 입히고 은 사슬을 둘렀다.

       - 장인이 나무를 택하고 만들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세워 놓았다.(20)

       - 우상에 대한 모순의 말씀은 이사야 44장에 상세히 설명한다.

                 숲의 나무들 가운데 한 나무 취함 - 우상을 만듬.

                                                                   - 남은 것은 고기도 구워먹고, 따뜻하게 하고 한다.

    ○하나님(우상과의 비교)

       - 땅 위 궁창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 하늘을 차일 같이 펴시고 천막같이 치시는 분.

              귀인들을 폐하시는 분 / (22~23)

    ○하나님의 분노?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며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25)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은 존재 / 입김에 말라지고 회오리 바람에 초개 같은 인생.

        -이런 인생들이 천하의 하나님을 무시하여도

                                                이런 나무, 돌, 쇳 조각 보다 못한 하나님으로 여기는 인생들......

    ○다시 한 번 보라(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26절)

       - 이 모든 것을 누가 창조하였나?

       - 누가 이 만상을 이끌어 내었나?

  ➄타락한 자들의 생각?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27절)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고 하는 이 생각이?

       - 죄인들은 더 죄를 대담하게 짓게 되는 타락을 이룬다.

       - 하나님께 하는 송사가 숨겨졌으므로 하나님을 의지할려고 하는 자들은 실망한다...

          / 억울함의 송사를 마지막에 들어주실 분은 하나님이신데 이것이 벗어나 버리면?.....

  ➅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하는 송사를 결코 벗어나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28절)

        -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

        -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 시간과 때, 상항을 최고로 활용하시는 하나님.

    ○이것을 아는 믿음의 사람?

        - 모르는 사람들은? - 내 길이 하나님께 숨겨졌다. 내 송사가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포기

        - Vs 아는 사람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 내가 하는 기도가 하나님 벗어나지 않고 숨겨지지 않을 것이니까....

               ! 분명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는 믿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Vs 여호와를 의지한다고 하는 믿음을 가졌다면서

                             아무것도 아닌 장인, 장색이 만든 우상을 의지하는 자들 보다 못한 신앙?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