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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가 배경(297장): 양 아흔 아홉 마리는

                                                                        누가복음15:4~7

작사:Elizabeth Cecilia Douglas Clephane, 1830~1869);(1868)

작곡:아이라 데이비드 생키 (Ira David Sankey 1840~1908)

 

작사자:클리페인 (Elizabeth Cecilia Douglas Clephane, 1830~1869)

   ① 클리페인은 1830년 6월 18일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서 파이프의주

           장관인 부친과 명문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다.

   ② 그러나 그는 일찍 고아가 되었고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 받았다.

   ③ 그는 불구의 몸이었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고 스코틀랜드 개혁신앙의 독실한

        신앙으로 살았고 그가 받은 유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제

                 사업을 했다.

         나중에는 그의 말과 마차를 팔아 구제 사업에 쓰기도 했다.

   ④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영혼이 명랑하여

                                        "Sunbeam,"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⑤1869년 2월 19일 브리렌드에서 39세가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작사

   클리페인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68년에 누가복음 15장을 읽다가

    은혜를 받아  바로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양이고,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헤매고 다니신다 는 것을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잃은 양」 한편의 시를 지었다.

     이 시는 멜로우즈에서 쓴 것으로 어린이 잡지 [어린이 시간]에 실렸었는데,

      주간지 [기독 시대]가 그의 여백을 메꾸기 위해 실었던 것을

       생키가 곡을 붙여 [성가와 독창곡집]에 43장으로 실은 후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작곡

   ① 미국의 대 부흥사인 무디 목사와 동행하며 찬송으로 복음을 전파하던

      생키(Sanky)는 1874년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에서 부흥집회를 마치고

             다음 부흥회 장소인 에딘버러로 가기 위해 가차를 탔다.

   ②기차 안에서 신문을 읽던 생키는 신문 한 구석에 실린 시 한편을 발견하였다.

      이 시가 바로 엘리자벳 크리페인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쓴

                   「잃은 양」 이라는 시였다.

   ③생키는 이 시를 읽고 너무도 감동적인 은혜를 받아 무디 목사에게

               읽어주려고 했으나  무디는 설교준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④생키는 그 시에 찬송 곡을 붙이면 훌륭한 찬송이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시를 오려서 악보집에 넣었다.

   ⑤다음날 에딘버러에서 개최된 부흥 집회에서 무디는

                   “선한 목자”라는 제목에 설교를 했다.

   ⑥설교를 마친 후 무디는 생키에게 자기 설교에 적당한 찬송을 붙여 달라고 했다.

               미쳐 특송 준비를 하지 못했던 생키는 당황했다.

   ⑦그런데 바로 그 때 신문에서 오려낸 시가 생각났다.

     그 시를 꺼내 읽어보니 놀랍게도 그 날 설교 내용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⑧그러나 이 시에 맞춰 부를 곡이 준비되질 않았다.

               그는 그 시를 올갠의 보면 대에 펴 놓고

        하나님께 이 아름다운 시에 알맞은 곡을 허락해 주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

   ⑨그리고는 올겐 건반을 누르며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찬양을 불렀다.

        그때 두 눈에는 눈물이 고이며 시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목이 메여서

             울먹이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 집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찬양에 감동되어 함께 울었다.

 

클리페인이 쓴 다른 찬송시

      415장 : 「십자가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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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찬송가 배경 강해

                             찬송가 배경(410장) :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데살로니가후서 3:16

             작사:Peter Philip Bilhorn, (1865-1936)

             작곡:Peter Philip Bilhorn, (1865-1936)

.작곡자 피터

  1.미국 일리노이 주 멘도타(Mendota)태생

  2.원래 그의 성은 풀혼(Pulhorn)이었는데

     아브라함 링컨이 변호사 시절에 빌혼이란 이름으로 개명해 주었다고 한다.

  3.11살 때 남북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시카고로 이주해서

                           형제들과 함께 가업인 마차바퀴 만드는 일을 했다.

  4.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어 여러 곳에 뽑혀 다니며 노래를 했다고 한다.

  5.1883년에 무디 부흥집회에 초청되었다가 부흥사인 펜테코스트

    (George Pentecost)목사님을 만나 큰 감동을 받고 전도단의 일원이 되었다.

  6.전도단은 이동할 때마다 많은 짐으로 큰 애로를 겪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이 덩치가 큰 오르간이다.

    ○이에 빌혼이 아이디어를 내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휴대용 오르간(potable organ) 고안하고 제작을 했다.

    ○나중에 오르간은 전쟁 시에 많은 이동을 하는

                           군인교회에선 이러한 오르간이 필수로 자리잡았다.

    ○그는 이 오르간을 제작하는 회사까지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그 수익금을 모두 복음전도사업에 썼다.

        「빌혼 휴대용 오르간 회사」(Bilhorn Folding Organ Company)

    ○이 오르간은 지금도 세계 각처 미군부대 채플에서 많이 애용되고 있다.

  7.그는 영국 크리스탈 팔레스(Crystal Palace)에서 열린 세계기독교대회에서

                          4천명으로 구성된 성가대도 지휘하고,

                 버킹검 궁에서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도 연주했다.

.작곡의 배경

  1.1886년 여름, 미국 뉴저지 오션 그로브(Ocean Grove)에서 캠프집회가

          열렸는데 빌혼이 독창자로 초대되어 노래를 하게 되었다.

  2.이 때 평소 알고 지내던 무디 목사의 전도 집회를 돕던 소프라노

            디바레스트 여사 자기 목소리에 잘 맞는 곡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3.그 때 빌혼은 이 여인에게 어떤 내용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Oh, any sweet piece”라며 아무 것이나 감미로운 곡」이면 된다고 했다.

  4.바로 이 부분에서 「작품」이란 뜻의 ‘피스’(piece)란 말에 힌트를 얻어,

              같은 발음이 나는 「평화」란 뜻의 ‘피스’(peace)란 단어가 생각나서

     「아름다운 평화」(Sweet Piece)라는 모티브로 후렴 가사를 먼저 짓게 되었다.

     「sweet piece」를 「sweet peace」로 바꾼 것이다..

  5.“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Peace, peace, sweet peace! Wonderful gift from above!

    Oh, wonderful, wonderful peace! Sweet peace, the gift of God's love!)

  6.이것은 살후 3:16의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 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말씀을 배경으로 하는 이 노래는 이듬해인 1887년에 곡을 붙여 발표하였다.

Ⅲ.찬송의 특징

   1.곡명=SWEET PEACE

   2.찬송가사에서 「sweet peace」라는 말이 5번 반복된다.

   3.「peace」라는 단어는 13회 사용되고 있다.

Ⅳ.기타

   1.빌혼은 2천편 이상의 복음찬송을 작사 작곡하였다.

   2.우리 찬송가에 실린 빌혼의 찬송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86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260장),

       「내 맘에 한 노래있어」(410장) 등 3편은 그가 모두 작사 작곡한 찬송

       작곡만 한 것

         ⇨ 「허락하신 새 땅에」(347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246장)

Ⅴ.빌혼의 일화 중 하나

    빌혼은 교도소를 자주 방문하고 찬양을 했다.

    열심을 다해서 봉사를 하는데 그의 찬양의 제목은

               「부러진 날개를 가진 새는 다시 날수 없다」였다.

    어느날 교도소에서 봉사를 마치고 오려는데 한 죄수가 근심어린 얼굴을 하고

                 〝선생님 저는 다시 회복될 수 없겠지요?〞했다.

                갑자기 충격을 받은 빌혼은 가사를 바꾸기로 했다.

            「날개 부러진 새도 하나님께서 고치신다」로 했다.

      그 후 어느 곳에서 대령 한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

        「제가 청년 때 방황했으나 선생님의 찬송에 힘입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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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찬송가 배경

 

 

      찬송가 배경(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디모데후서 1:10~12

 

작사자: 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작곡자: James McGranahan (1840-1907)

 

미국 뉴욕에 있는 장애복지회관 현관에 들어서면 이런 글이 걸려있다.

 “나는 하나님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라고...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나는 하나님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나는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나는 하나님에게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싶어서.

        하지만 나는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라고...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작사자 휘틀

①미국 메사츄세츠주 치코피 태생의 저명한 부흥 전도자이며 찬송 작가.

②어려서 시카고로 이주한 후

      은행 직원으로 근무하던 중 남북 전쟁(1861)에 참전, 한 팔을 잃는다.

③그는 전쟁 참전 공으로 소령까지 되었다가

                                 제대한 뒤 시계 회사에 경리사원으로 근무.

④이 때 시카고에서 무디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큰 감동을 받고 자신도 부흥강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⑤구세군 신학교를 졸업하고 참령(구세군 사관이 계급)이 된다.

⑥그는 1873년부터 미국 전역을 돌면서 본격적 부흥집회를 열었다.

⑦무디는 휘틀의 능력을 인정하고 별도로

                     부흥집회 팀을 구성하여 미국 전역을 순회하게 했다.

       그 때 그는 영감 넘치는 찬송가를 많이 지어 연주하며

                                                     보급하여 큰 공을 세웠다.

⑧나중에 휘틀의 딸 메이 휘틀이

             무디의 며느리가(메이 휘틀 무디) 되므로 무디와 사돈이 된다.

⑨메이 휘틀 무디는 노래에 재능이 있어 일찍부터

                                         아버지와 무디의 부흥집회를 도왔다.

   부흥집회 때는 독창자로 활약했으며 찬송가 편찬자로서도 활동하였다.

       이 딸이 붙이 곡 중의 하나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있다.

⑩그때 함께 사역자 자들이 이 찬송의 작곡가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 1840-1907)과 블리스(P. P. Bliss),

        스테빈스(G. C. Stebbins) 같은 찬양 동역자들이 함께 사역하였다.

⑪이 찬송 시는 1883년 ‘복음찬송’(Gospel Hymns)

             제 4집에 처음 발표하였는데,

         이 책에는 그가 지은 ‘빈들에 마른 풀 같이’(172장)도 함께 실렸다.

⑫곡명 EL NATHAN은 휘틀 목사의 필명이다.

⑬미국 침례교 찬송가 위원회에서

      1956년에 ‘침례교 찬송가’(Baptist Hymnal)에

         이 찬송을 실으면서 이 제목으로 다른 제목이 있는데

                  놀라우신 은혜라(WONDROUS GRACE)라는 이름도 있다.

⑭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신정찬송가’에 처음 수록되면서부터 애창되었다.

⑮그의 찬송들 - 그가 지은 찬송은 우리 찬송가에 네 편이 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183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358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310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407장)

                                                                    (M.W Moody 곡)

 

작곡자 맥그라나한(J. McGranahan 1840~1907)

①미국 오하이오주 태생의 음악가이며 횟틀 전도단의 찬송 인도자.

②맥그라나한은 생키(Ira David Sankey)와 스테빈스 등과 함께

                   이 ‘복음찬송’을 제3집부터 제6집까지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참고

구세군과 조직

구세군은 1965년 영국의 부드가 창시한 군대식 조직의

                            복음 전도와 사회사업에 힘쓰는 개신교의 한 교파다.

구세군은 창립당시 강력한 선교조직의 필요에 따라

                                                 준군대식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그래서 구세군은 군대식 특징과 용어 등을 사용하는

                                                 특색 있는 교회로 알려졌다.

 

1. 일반적인 용어

①영문 (Corps) : 구세군은 교회를 영문이라고 한다.

         영문은 군대의 주둔지라는 개념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의 선교, 봉사를 목적으로 한다.

②병사 : 구세군의 일반 교인

③사관 : 구세군의 목회자

 

2. 사관(Officer)(=목회자)

①사관은 타 교단의 신학교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구세군사관학교를 나와야 한다.

②구세군 사관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명령과 조직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며

         맡겨진 임무에 따라 일반 목회를 담당하는 목회사관과 구세군의

          시설과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사관 등으로 나뉘는데 순환하며

               보직을 맡게 된다.

3. 사관의 계급

- 위관사관

   ①부위 : 사관학교 졸업 후 처음 임관되었을 때의 계급

   ②정위 : 임관 후 5년이 지나면 정위로 진급

- 령관사관

   ①참령 : 정위 진급 후 15년이 지나면 참령으로 진급한다.

       사관학교 임관 후 만 20년이 지나야만 달 수 있는 영광스런 계급이다.

          참령까지가 일반적인 구세군 사관의 계급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후부터는 특별한 직책을 부여 받을 때만이 진급할 수 있다.

   ②부정령 : 참령 진급 후 특별한 직책이 부여 되었을 때 맡게 된다.

   ③정령 : 부정령 진급 후 맡게 되는 직책으로

       대개 한 군국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야만 부여되는 영광스런계급이다.

- 장성사관

   ①부장 : 전세계 구세군의 주요사항들을 결정하는 의결권을 가지며

                   대장을 선출하는 투표권을 갖는 등 특별한 권한을 갖게 된다.

   ②대장 : 명실공히 구세군의 최고 지휘자 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구세군 최고의 계급이다.

4. 일반 병사의(교인) 계급

   구세군에서는 일반교인을 병사라고 하고 성도를 군우라고 호칭하는데

             사관과 마찬가지로 일반병사도 맡겨진 직분에 따라 계급이 있다.

   ①부교 : 일반교회에 집사에 해당하는 직책

   ②정교 : 일반교회에 장로에 해당하는 직책

   ③하사관 : 부교이상의 직책을 담당하는 모든 교인을 통칭해서

                                                                      하사관이라 칭한다.

5. 구세군의 입대식

   믿음을 갖고 어느 정도 영문에 출석하게 되면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데

               신앙고백 후 받게 되는 것이 입대식이다.

                 입대식은 일반교단의 세례와 비슷하다.

    ①예비병: 교단의 학습에 해당하는 것으로

                       영문 출석 후 최소한 6개월이 지나야만 받을 수 있다.

    ②병사:일반교단의 세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영문 출석 예비병 입대를 한 후 6개월이 지나야만 받을 수 있다.

 

        *교회= 영문 *목사= 사관 *교인= 군우 *장로= 정교 *집사= 부교 

        *성찬식=입대식 *학습= 예비병입대 *세례= 병사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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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찬송가 배경

 

                  찬송가 배경(348):마귀들과 싸울지라

                             (Battle Hymn of the Republic)

                                                             베드로전서 5:8~11(약4:7)

 

1. 작사자

①줄리아 와드 호우(Julia Ward Howe, 1819-1910)

②미 뉴욕 태생의 여류 찬송 작가이며, 시인.

③문학잡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자신의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

④1848년 사무엘 그리드리 하우 박사와 결혼한 후에

        남편의 맹인 학교 일을 헌신적으로 도우면서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⑤미국 남북전쟁 때에 승전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미국을 대표하는 시로 남아 있다.

2.작곡자

존 윌리암 스테스(John William Steffe)

                   ⇨ 그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2. 찬송시의 배경

① 1852년 버지니아의 리치몬드에 사는 윌리엄 스테프(William Steffe)

        는 사람이 소방대원의 행진곡으로 작곡한

                   「전투 노래」(Battle Hymn)라는 곡이 있었다.

②이 노래 곡조가 씩씩하고 경쾌해서 교회에서

         「형제여 우리 집회에 와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Say Brother, will you meet us?)라는

                   찬송시가 붙여져 캠프 전도 집회용으로 널리 불려졌다.

③그 후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北軍의 병사중 하나인

          존 브라운(John Brown)이라는 병사가 하퍼(Harper)의 배를

        습격하다 포로가 되어 남군에 의해 처형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④이를 계기로 南軍에서는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군가를 지었는데

                「존 브라운을 신 사과나무에 목매달았네」

      (They hanged John Brown to a sour apple tree)라는 노래였다.

⑤이 노래가 한참 남군에 의해 유행되고 사기를 얻게 되자

     남군은 다시 노예폐지론 주창자인 존 브라운을 조롱하기 위해 가사를

                    「존 브라운의 아이 감기 걸렸네」

      (John Brown's baby had a cold upon its chest)로 바꾸어

                  비아냥거리는 노래로 만든다.

⑥이에 北軍도 질세라

    「남군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를 신 능금나무에 목매달았네」

(Hanging confederate president Jefferson Davis to a sour apple tree)

           로 시의 내용을 바꾸어 불렀다.

     그러나 이렇게 양측에서 서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동안에도

 

            후렴은 한결같이 「영광 할렐루야」였다.

 

반전

 

⑦이러던 중 1861년 가을 이 시의 작시자인 호우 여사는

     남편 호우 박사

  +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 제임스 프리만 클락(James Freeman Clarke),

  + 메사추세츠주 주지사 앤드류(Andrew)와 함께 워싱턴을 방문하게 된다.

⑧이때 포토맥 강가에 주둔하고 있던

                         북부 연방 부대의 사열을 참관하도록 초대받는다.

⑨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들 일행은 군인들이

          「존 브라운의 시체」(John Brown's Body)란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⑩이 광경을 보던 클락 목사가 그녀에게 이 곡에 어울리는

      좀 더 고상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하자 이 시를 써서

1862년 『디 애틀랜틱 먼들리』(The Atlantic Monthly)지

                       2월호에 처음으로 실리게 됐다.

4.이 찬송시는 원래 5연으로 되어 있는데 한국 찬송가에는 3연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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