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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구약설교 너희는 이 곳에서 떠나라? 창세기 19:12~17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때에 그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고 있던 롯과 그의 가정을 구원하는 장면이다. 1.롯은 그 아버지 하란이 죽고 난 뒤에 고아가 되어 큰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했다. ○롯이 큰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할 때에는 그도 아브라함과 함께 모든 것이 풍성해졌다. ⇨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3:9)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는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받는 복을 더불어 받는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와 동행을 하면 하나님께 함께 하는 자가 받는 복을 더불어 받는다. 롯은 하란을 떠나 올 때부터 줄 곳 아브라함과 동행을 했다. 가나안 지경으로 들어와서도 줄 곳 아브라함과 함께 했고, 아브라함이 가는 곳곳 마다 단을 쌓으면 같이 거기에 동참을 했다. 어려움이 있어 애굽으로까지 같이 내려가기도 했고, 아브라함과 함께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 하나님은 하란을 떠날 때부터 아브라함에게만 약속을 주었지 롯에게는 약속을 준 적이 없다. 롯은 하나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개인적인 축복을 약속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같은 물질의 복을 받고, 아브라함과 같은 은혜를 같이 받았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는 자가 더불어 같은 복을 받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2.그런데 그 은혜의 길에서 갈린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었다.(창13:7) 지금까지는 그렇케 다투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다툰다. 다툰다는 것은 서로가 이익을 가질려고 하는데서 오는 행위다. 서로의 이익을 챙길려고 하지 않는 곳에서는 절대로 다툼이 오지 않는다. 지금의 세상에 있는 각종 다툼이 왜 오는가? ⇨ 이익, 이권을 서로 챙길려고 하기 때문에 오는 싸움, 다툼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 설 때에??? 아브라함이 하는 소리가 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실제적으로 목축을 할 수 있는 넓은 땅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동편을 보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고 했다. ⇨ 그렇다고 하면 싸울 필요가 뭐가 있는가? 싸울 필요도 없이 그냥 그쪽에 가서 양을 치면 될 것이 아닌가? ??? 그런데 그 목자들이 싸운다. ⇨ 그러나 여기에 영적인 것이 있다. 그 곳에 롯은 들어갈 수가 있을련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들어갈 수가 없다. ⇨ 아무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의 땅과 같이 기름지지만...... 롯은 들어가서 살 수가 있을련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그럴 수 없다. 왜 그런가? 성경은 말씀한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이것 때문에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그 땅이 풍성해 보여도 그 땅에 가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Ex) 노아 홍수 후 까마귀와 비둘기? 노아 산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후 40일이 지나서 까마귀를 내 놓았다. 그런데 까마귀는 날아 왕래 하면서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어 놓았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 정말 비둘기가 발 붙이 곳이 없었는가? 까마귀는 정말 24시간 내 내, 그리고 밤 12시에도 날아 다니면서 끝까지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 고집을 부렸는가? 산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날로부터 40일이 지나서 이들을 내 보냈다는 것에 주목한다. 사실은 까마귀에게도, 비둘기에게도 그들이 앉을 자리는 있다. 쉴 자리도 있다. ⇨ 그러나 비둘기에게도 쉴 자리가 있지 만 그 자리가 비둘기가 쉴 자리는 아니다. 까마귀는 쉴수 있고, 앉을 수 있는 자리린지는 몰라도 비둘기에게는 쉬고, 앉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쉴 수 있고, 놀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될련지 모르지만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 세상의 사람들은 내가 죄짓고 돈 버나? 하면서 할 수 있는 장사가 많이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죄 짓는 것은 아니지만,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만 성도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사업들, 장사들, 일들이 많이 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그러나 롯은 그 곳에 들어가서 산다. 얼마 있지 않아서 멸망의 땅이 될 곳에 들어가서 산다. 얼마 있지 않아서 심판의 땅이 될 곳에 들어가서 산다. ⇨ 아무른 일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롯을 버려 둘 수가 없다. 아브라함의 조카를 버려 둘 수가 없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그 조카를 그냥 버려 둘 수가 없다!!! ⇨ 그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과 함께 롯을 같이 멸하실 수가 없다. ☞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들이기 때문에? ⇨ 우리 성도들을 가족을 그냥 버려 둘 수가 없다. 우리 성도들의 친척을 그냥 버려 둘 수가 없다. 우리 성도들의 자녀를, 부모를, 형제를 그냥 버려 둘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롯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먼저 믿는 우리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먼저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알아서 전하게 하신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19:29) 3.천사들이 와서 롯에게 말한다.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롯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이끌어 내는 주체가 누구냐? 롯이다. 롯이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이 소리를 듣고 롯은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여기에서 그의 말이 잘 못 되었다. 「여기에서 떠나라」가 아니고 ⇨ 「여기에서 떠나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은? ⇨ 나는 여기에 남아 있겠다고 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하나님이 이 성을 멸하실 것이니 너는 여기서 떠나라???? 나는 남아 있겠다???? ⇨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전하는 자가 이렇게 되면? ⇨ 듣는 사람은 전혀 신빙성 없이 받아 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다」고 한다.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이 문제인가? 농담으로 들리게 심각성 없게 전한 롯이 잘 못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나는 먹고 있으면서 이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고 있지만 너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고 있으면서 너는 가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롯과 같이 말씀을 전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주님의 구원을 전하면서 나는 구원받은 백성의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나는 말씀을 버리면서 살고 있다. ○지옥의 심각성을 전하면서 지옥의 두려움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교회 가자고 하면서 나는 주일에 시시때때로 빠져 먹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7) 또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 롯의 딸들이다! 롯의 딸들과 롯의 아내는 분명히 천사들이 온 것을 알고 있고, 소돔 사람들이 와서 천사들을 끌어 내라고 소동을 벌이다가 천사들을 통하여 그들이 소경이 되어 버린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후에 천사들이 롯에게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 딸들도 천사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주시는 말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과 결혼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 같이 가서 적극적으로 알려주어야 했을 것이다. 이 성을 빠져 나가야 한다고..... 오늘 밤에 나가야 한다고... 빨리 나가자고...... 그러나 이 딸들은 그 사랑하는 예비 신랑들에게 가지 않았다. ☞ 정말로 내 가족을 사랑하십니까? 정말로 내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정말로 내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정말로 내 부모를 사랑하고, 내 자식을 사랑하십니까? ⇨ 그러면 그들을 살리십시요, 그들에게 가서 말하세요, 오늘 밤에 이 성을 빠져 나가야 된다고.... 지금 교회에 나와야 된다고....... 지금이 구원받을 때라고...... 성경의 상항을 보면? 오늘 롯은 전해야 하고, 살려야 하고, 살아야 하는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왜?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창19:23)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지체하고 있다. 롯이 그 가족과 사윗감들을 이끌어 내어야 할 것인데.... ⇨ 천사들이 롯과 그의 아내, 두 딸들의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천사들은 분명히 말씀을 했다.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19:12) 롯이 주체가 되어서 그에 속한 모든 가족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롯은 이끌려 내어질 자가 아니라 이끌어 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롯의 강제성이 동원되어도 된다. ⇨ 「이끌어 내라」는 말에는 약간의 강제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 사위가 나오지 않을려고 해도. 그 아내가 나오지 않을려고 한다고 해도. 그 딸들이 혹 나오지 않을려고 한다고 해도.... ⇨ 롯은 천사들의 말을 직접 들은 자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장인으로서의 권세로(?) 이들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그런데 그도 「이끌려 내어지는 자」가 된다. 「이끌려 내어지는 자」가 되니 겨우 자기 하나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끌려 나와지는데 누구를 데리고 나오겠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이 구원 받은 마지막 날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가족들에게 말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너희는 이곳에서 떠나라」고 하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 「이끌어 내어야 할 때」입니다. 롯과 같이 나도 겨우 이끌려 나와지는 자가 되지 마세요. ⇨ 이끌어 나오는 적극적인 전도자가 되세요.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족은 모두가 구원의 가정과 가문을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
#소돔 #롯 #고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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