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석 목사의 설교
빈들에서의 은혜
마태복음 14:13~21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상항설명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던 세례요한은 이제 그의 사역을 마지막으로
감당을 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 했고, 그는 쇠하여야 했다.」
그가 헤롯의 죄를 지적하고 참수형을 당하는 비극을 낳게 되고 난 뒤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오늘 말씀에 “들으시고”) 슬픔을 가지고 빈들로 나가게 되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오게 되어서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저녁때에는 그들에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 말씀이다.
1.어떻게 해서 이들은 주님의 은혜를 얻는 자들이 되었는가?
이들이 주님의 은혜를 얻게 된 이유는?
⇨ 빈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아서, 따라서 갔다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가셨는데
⇨ 많은 무기들은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을 쫓아갔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은 바닷길로 가로 질러 가셨는데
사람들은 돌고 돌아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까지 찾아오는 열성을 보인 것이다.
이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면 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 아무리 멀어도, 아무것도 없는 빈들이라도, 거기에 주님이 계신다면
그 주님을 찾아 가는 것이다.
☞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그래야 한다!!!!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어떠한 곳이라도 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의 은혜를 체험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를 않다!!!!
현대인들은 풍성한 곳만을 좋아 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 쾌락이 많은 곳, 돈이 많은 곳, 권세가 있다고 생각 되는 곳.....
그래서 현대인들은 풍성한 곳이 아니면 찾아가지 않는다.
빈들과 같은 곳에는 가지를 않는다.
⇨ 가 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이다.
2.그러나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하면 결코 별 볼일 없는 그런 곳이 아니다.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생명이 있고, 은혜가 있고, 진리가 있는 곳이다.
주님이 계시는 곳은 비록 빈 들판과 같아 보인다고 할찌라도
그 들판이 풍성의 들판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지금은 풍성하게 보인다고 할찌라도,
⇨ 거기에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 풍성한 곳은 곧 쇠하여 버리고 된다.
❍ 소돔과 고모라성은 롯의 보기에는 아주 풍성한 곳이었다!!!!!
거기에 가서 살면 내가 풍성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고, 수지가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거기가 지금을 풍성의 도시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땅이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할 폐허가 될 줄은 롯이 알지를 못했다.
❍ 탕자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넓은 곳이 화려하게 보이고
거기에 나가야만 수지가 맞을 것 같지,
집구석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화려하게 보이는 세상은 아버지기 계시지 않는 풍성의 도시임을
알지를 못했다.
결국 그 풍성하던 세상의 도시들은 계속 풍서하지 못하고 흉년을 맞이하게 된다.
하필 그 세상의 흉년이 그가 돈 떨어졌을 때 같이 닥친다.
그래서 그 세상의 풍성은 결국 탕자를 빈 털털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 그러나 지금은 빈들과 같은 곳이지만 주님이 계시는 곳이면
⇨ 그 빈들은 은혜의 들판으로, 생명의 들판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계시는 곳에는 흉년이 없다! 가뭄이 없다!
우리는 이삭(창26장)의 경우에서 이 사실을 볼 수 있다.
이삭이 살던 곳에 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 갈고 했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계속 있으라고 한다.
이삭은 애굽으로 갈려 했떤 것을 포기하고 그 흉년의 땅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의 결실을 얻었다. (블레셋 사람이 시기하기까지....)
⇨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 만약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면 잠시의 흉년을 면할 수
있었겠지만 거부가 되는 축복을 누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주님의 곁을 떠나 세상의 풍성한 곳을 찾아 갈려고 하는 성도들이 많다.
○주일날 주님의 곁을 떠나 세상 유희가 풍성한 곳으로 간다.
○믿는 총각은 고리타분하게 보이고, 안 믿는 총각이 더 멋있어 보인다.
○세상의 방법으로 돈을 벌면 더 풍성해 질 것 같다.
⇨ 그러나 사탄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의 화려함은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때에
체질에 다 풀어져 버리게 되는 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Ex) 얼음 조각을 아시나요?
화려하게 조각이 되어 있지만 햇볕에 녹아 버리면 형체도 없어져 버리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6)
(세상의 충만한데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충만한데서 받는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충만한 데서는 결코 받지 못한다. 오히려 빼앗긴다.
우리는 없는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모든 것을 소유하신 주님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이 빈들에 모인 사람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치유를 보고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 저녁이
되었다.
저녁이 되니 걱정이 되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그래서 이들이 주님께 하는 말이
“이 곳은 빈들이고, 저물었으니까 사람들을 마을에 들여 보내어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한다.
여기에 제자들의 불신앙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1.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이 먼저 어떻게 해야 하나?를 걱정한다.
2.세상적인 방법으로 이 저녁의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한 것이다.
○ 예수님을 찾아왔던 무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있고 이적과
말씀에 완전히 매료 되어 있어서 한 끼 굶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 그런데 제자들이 먼저 육신의 빵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그리고 제자들의 생각에는 이들을 마을로 보내 음식을 사 먹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것도 문제다 만약 이 사람들이 한꺼번에 마을로 내려가면 이 많은 음식이 준비가
되어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이 동내에 5천명이 몰려와서 빵을 산다고 생각을 해 봐라....
현대의 시대에도 당장 수급을 할 수 없는 빵의 양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불신앙을 아시고
16절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음식을 하나도 가지지 않은 것을 아시면서
「너희들이 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당항을 하였을 것이다.
뻔히 알고 계시면서 우리를 보고 음식을 주라고 하는가?
⇨ 사실상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뭐 그렇게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느냐 이놈들아!
그렇게 걱정이 되면 너희가 주면 될 것이 아니냐?」는 식이다.
☞ 우리는 제자들처럼 세상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할려고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첫째도 주님의 방법이고,
둘째도 주님의 방법을 선택하여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그러면 그 문제들을 자동적으로 주님께서 해결을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도 주님은 「갈 것 없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마을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 여기에 문제 해결이 있다!
너희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너희들의 근심의 해결이 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의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서도
이 많은 사람들을 권능으로 먹이시는 것을 보여 주셨다.
어린아이 하나가 가져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제자들의 걱정을 불식
시킨 것이다.
작은 것으로 주님은 많은 사람들을 풍성하게 채워 주신 것이다.
주님께는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큰 것이라고 해서 큰 것도 아니다.
⇨ 그래서 주님은 이 작은 것들을 가지고 큰 능력을 행한 것이다.
주님께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신 양식은 바로 자기가 생명의 양식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양식이로다?고 말씀하셨다.
☞ 사람들이 볼 때는 주님이 보잘 것 없는 나사렛의 사람으로 보였다.
오늘의 어린아이가 가져온 5병이어와 같이 보잘 것 없이 보였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고도 남음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한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주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었던 만나와 상통을 한다.
⇨ 만나는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만나는 밤에 하늘로부터 내려 왔고 그리스도는 세상이 어두울 때 오셨다.
○만나는 땅에 떨어졌으나 더렵혀지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과 구별되게 깨끗하신 분이다.
○만나는 값없는 선물이고 그리스도도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다.
○만나는 광의 모든 백성에게 충분했고,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
○만나는 광야의 유일한 음식이고,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유일한 구원이시다.
○만나는 줍지 않으면 밟혀지고, 그리스도는 영접하지 않으면 거절하고 밟혀진다.
히 10: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만나는 맛이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심령을 기쁘게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주님이 계신 곳에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본문의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생명의 풍성을 얻는 은혜를 세상이 주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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