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석 목사의 여호수아서 설교
길갈에서의 새로운 무장
여호수아 5:6~12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의 입주와 정복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는 데서 시작된다.
이 요단강을 건너는 데는 여호수아의 강한 믿음과 용기에서 시작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장군인데
모세와 많은 유사 비교 되는 점을 가지고 있다.
○모세는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넘
여호수아는 광야 40년을 종지부 찍는 요단을 건넘
○모세는 이스라엘을 바로의 속박에서 구해 냈으면
여호수아는 축복의 땅으로 인도
○모세는 백성에게 믿음의 환상을 보여 주었다면
여호수아는 그들을 산 믿음으로 이끌었다.
○모세는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 신을 벗었으나
여호수아는 길갈의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었다.
오늘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고 「길갈」이라는 곳에 진을 쳤다.
이때부터 길갈은
성소가 되었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한 총 본부가 되었다.
「길갈」이라는 곳을 오늘 말씀에서
9절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이란 ⇨ 수치를 제거하였다.(굴러간단, 둥글다, 제거한다) 라는 뜻
○이제 애굽에서 받던 모든 수모가 제거되고,
굴러가 버리고 없다는 상징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길갈」은 가나안 땅에서 최초로 점령한 자유의 도시요,
가나안 시작의 도시이고, 회복의 도시이며, 종교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길갈은 「살아 움직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 있는 이 땅에 도착하였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은 죽고.... 믿은 있는 자만)
갈릴리도 길갈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살아 있는 마을에서 살아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이 증거 되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넌 후 이 길갈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바로 앞에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크고 강한 여리고 성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쳐서 이기느냐 이기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가나안의 정복의 꿈이 실현 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치기 보다는
이 길갈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백성을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놓고 여리고를 치겠다 것이다.
그러니까 여리고를 점령하는 것 보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이다.
적진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생각과 믿음으로서는 안 된다.
☞ 우리들도 세상의 어떤 일을 시작 할 때에
먼저 나의 신앙을 확고히 다녀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신앙이 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일을 하게 되면 실패한다.
우리의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이 길갈에서 어떤 일을 행했는가?
1.길갈에서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할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선민으로서의 약속이다.
창 17:9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그래서 할례 의식은 하나님과의 보이지 않는 계약이
⇨ 보이고 확인하는 계약으로 인침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선민이 될 수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계약의 백성이 될 수가 없다.
○그 계약의 백성이 아니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래서 길갈에 있는 이 백성에게 있어서는
여리고성 점령보다도 더 선급한 문제가 바로 할례였다.
처음 모세가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나올 때는 모두가 할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 할례를 받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서 다 죽고 말았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아직까지 할례를 받지 못했다.
여행 도중에 할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는
부싯돌을 칼로 대신하여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있다.
다른 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들지 않는 돌칼을 사용하는 것은?
돌은 불변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백성의 결속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변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신앙을 변하지 않겠다.
여호수아는 할례를 행하고난 뒤
모든 백성은 각 숙소에서 낫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는 싸울 수가 없다!!!!!
⇨ 여호수아는 여기서 신앙의 큰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남자가 이렇게 할례를 행하고 회복을 기다라고 있을 때
여리고 군사들이 쳐들어 왔다면 이스라엘은 전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그 적진 바로 코앞에서 할례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Ex) 창34장 야곱 딸 디나- 세겜에게 강가니 시므온 레위의 거짓화친
할례 요구- 그 후 아픈 틈을 타서 모두 죽임
우리들은 세상의 일을 하려 할 때?
⇨바쁘다, 적이 바로 내 코앞에 있다. 기도 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하면서 신앙 다지기를 뒤로 미룬다.
이사야는? 「굳게 믿지 않으면 굳게 서지 못 한다」(7:9)고 했다.
믿음이 없이 육신적으로만 준비를 하고,
⇨신앙적 준비를 먼저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일에 실패를 하고 만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이 길갈과 같은 위치에 내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의 할례를 행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그 순종으로 인한 승리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실 것이다.
2.길갈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10절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출애굽은 이 유월절에서부터 시작된다.
⇨속박에서의 해방, 종살이에서의 자유, 이 모두가 유월절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렸던 장자의 재앙이
이스라엘 가정에는 넘어가 버려 변을 당하지 않은 구원을 얻었다.
이제 그 구원과 자유의 유월절을 40년이 지난 후에 자유민이 되어서
그들이 앞으로 점령할 땅에서 유월절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적진 바로 앞이다.
적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일주일간 쓴 나물을 먹고,
마른 떡을 먹으면서 1주일간의 유월절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할례를 행하지 않은 사람은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없다!!
할례를 행한 자만이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 유월절 행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심어주는 행사였다.
애굽에서 그들이 유월절을 지킬 때 그들은 두렵고 떨림의 저녁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두렵게 했던 장자의 죽음은 그들의 집에는 오지 못했다.
⇨ 지금도 적들이(여리고) 바로 앞에 있지만
역시 죽음이 그들을 엄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적진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 주신 구원의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 앞에 아무리 무서운 적들이 있다 할 지라도
지금도 역시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으로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3.그 길갈에서 처음으로 땅의 소산을 먹었다.
그들은 길갈에서 처음으로 유월절 행사 때에
복은 곡식과 그 땅에서 나는 산물을 먹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 광야의 생활을 했다.
바로 어제까지 그들은 이 만나를 먹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부터는 땅의 소산의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이 때부터 하늘의 만나는 내리지 않았다.
12절 “그 땅의 소산물을 먿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이,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을 먹게 해 주시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말씀의 꿀만을 이스라엘에게 허락 하실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이 주는 양식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 길갈에서 신앙의 회복을 가져왔다.
이 땅에서는 이제 이스라엘은 모세도 아니고, 여호수아도 아닌
⇨ 하나님을 그들의 지도자로 삼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총 지도자가 되신다.
하나님이 싸움에 도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우시고, 직접 싸우셔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먼저 신앙의
재 무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재 무장을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을 생각하여
지금의 이 시간과 자리가 우리의 수치와 죄와, 고역과 가난과 어려움이
다 굴러 가 버리는 길갈의 장소가 되기를 축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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