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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석 목사의 신약설교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사도행전 22:6~15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모습을 말한 것

         이 중에서 10절의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에 중심한 설교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 물음은

      사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처음으로 하는 자기 자각의 소리이다.

         ○주님 당신이 나를 부르시는데 이제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나같은 핍박자를 부르시는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죄인 중의 괴수를 부르시는데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 믿는 자와 교회를 핍박하던 일만 하던 나인데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지켜온 율법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생명처럼 지켜왔고,

            내가 배운 학문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인데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이 오늘 사울 청년의 질문이다.

그러면 사울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전후를 봅시다.

1.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의 사울은 핍박자요 폭행자였습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이것은 그가 예수를 믿고 난 뒤의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나온 말이다.

        그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자기가 절대로 하나님의 일에, 복음에,

      「비방자」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폭행자, 죄인이라고..)

   오히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일에 열심」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오늘 본문 말씀 앞에 3절에서 보면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있는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도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의 의, 그 생각의 열심)

        그의 육신에서 나온 행동이었지 절대로 「하나님의 일」도 아니었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육신의 판단이었고, 육신의 행동이었고, 육신의 열심이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고 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15:50) 했다.

       「육으로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 육신적인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 전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자행하고 있었다.

☞☞ 우리 인간들이 그렇다.

     자기 나름대로는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삼상1장의 한 소년?)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 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라고

          생각 하면서 살았는데 오늘 주님은 그런 사울에게 하는 말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꾸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네가 왜 나를 못살게 구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주님은 부르십니다.

              다메섹으로 성도를 붙잡으러 가는 사울이 오히려

             ⇨ 하나님께 붙잡혀 버립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를 꼼짝 못하게 붙잡아 버립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사람 같은 생각을 가지면 당장 처치를 해야 할 것인데,

         능지처참을 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고 주님은 그를 부르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행실을 볼 것 같으면, 우리의 행동을 볼 것 같으면

               ⇨ 당장 요절을 내고 싶겠지만 그래도 참고 참으시다가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을 시킨 것입니다.

    ○광야에 나온 백성들이 시시때때로 원망하고 배반하는 것 보면

                                                           당장 어떻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예레미야가 눈물 흘리고 권면해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장 요절을 내고...

    ○엘리야 선지자의 권면을 그렇게도 듣지 않는 아합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비를 주십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이 은혜를 간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지금 우리의 선한 행실 때문에, 나의 의로움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은혜입니다.

2.주님의 강권적인 부름을 받고 오늘 사울은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이 말은 우리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뒤, 구원을 받고 난 뒤

 누구든지 제일 먼저 해야 할 하나님께 대한 질문입니다.

     사명에 대한 질문들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뒤에도 「사명에 대한 질문」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하는 질문이라고는 「언제 복을 주실것입니까?」

                                                                  「언제 내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까?」

                               「이 문제를 언제 해결 해 주실 것입니까?」는 질문만 해 댄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오늘 사울의 이 질문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   ○나 같은 자를 불러 주셨는데

                ○나 같은 자를 이 제단으로 인도하여 주셨는데

?                    주님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사명적인 질문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뒤에 곧 바로

                                그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 지금까지는 백성들 착복하는 재미로 살았지만...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세금을 한푼이라도 더 걷어서

           자기 몫으로 많이 챙기는 재미로 살았지만

     ⇨ 이제는 그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스스로 알게 된 것입니다.

              ◇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습니다.

              ◇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

                     이것의 재미로 살겠다는 것이다.

   ☞ 우리가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세상의 것으로 재미를 붙이고 살았다.

             그 일들이 내 육신과 내 영혼을 위하는 것인 줄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일 하는 재미를 가지는 자가 되야 한다.

        ⇨ 「하나님의 일」하는 재미로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 다니는 재미, 성도 만나는 재미, 기도하는 재미,

                    교회 봉사하는 재미, 성경읽는 재미, 설교듣는 재미,

                       전도하는 재미, 은혜 받는 재미, 축복 받는 재미.....)

      Ex) 창 25:27의 에서처럼 들 사람이 되어 익숙산 사냥군이 되어 세상

             에는 익숙한데 주님의 일에는 한정 없이 서툴고, 서툴러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행 7: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이 생각이 나기 전 까지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살았다.

         거기에서 모든 학술을 다 배우고, 그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지금까지 맛있는 것 다 먹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자각한 것이다.(자기를 바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turing point 입니다.

      ⇨ ○나는 유대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동족은 엄청난 고역을 당하는데 왜 나는 이 왕궁에서 성장 했는가?

     ☞나의 이 학술, 말과 행사가 능한 것⇨이것을 누굴 위해서 쓸 것인가?

           내 동족을 위해서 쓰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각도에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각도에서 서야 한다.

         하나님의 각도에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각도에서 몰아가자....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각도에서, 일을 해도 하나님의 각도에서,

                       나를 쳐다 봐도 하나님의 각도에서...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은혜받는 성도, 축복 받는 성도가 된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지금까지의 내 죄를 묻지 않고 불러 주시는 주님

                                ⇨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스테반을 죽이는 일에 대한 죄악을 묻지 않고 불러 주시는 주님

                         ⇨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이제 주님

                         ⇨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깡패로 익숙한 나, 이것 가지고 주님의 일 할 것 없습니까? 입다

3.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행 22:14-15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①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셨고 의인(주님)을 보게 하셨다.

  ②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직접 듣게 하였다.

                 ⇨ 그러니 너는?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어라?

                    바로 우리의 사명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보고 들은 것, 이것에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가 달려가고 있는 그 다메섹의 길이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일러 줍니다.

   오늘 여전히 자기는 다메섹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 나는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구 못지않게 우리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주님이 오늘 이런 생각을 가진 사울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우리는 이미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분명한 사명을 주실 것입니다.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 주시는 사명의 명령 받들고 헌신하여

                           하늘의 상급 받는 귀중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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