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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 지명 강해

 

                                         성경지명(45):셀라(=욕드엘=페트라)

                                                                                                                                              열왕기하 14:7

1.셀라

  ➀개요

    ○이름의 뜻: 바위(험악한 바위) (ץלפ;셀라)(바위 앞에 관사를 붙여 지명화 했다.)

             Vs 셀라하마느곳(분리하는 바위;삼상23:25) - 다윗이 하길라 숲 풀에 있을 때

                                   십 사람들의 신고, 마온광야로 도망 잡히기 직전 블레셋 침공으로 분리..

    ○위치:사해 남쪽 80km, 에시온게벨(엘랏) 북쪽 70km 지점으로 「왕의 대로」 연결 지점

         ※해안도로(해변도로): 애굽- 가자 -욥바 -아벡 - 므깃도 - 하솔 - 다메섹

             족장의 도로: 애굽 - 브엘세바 - 헤브론 - 예루살렘 - 벧엘 -실로 ~~

             계곡의 길:요르단 지구대 왼편으로 있는 길 ; 사해 서쪽 예루살렘 - 여리고 -벧산

             왕의 대로:요르단 지구대 오른편 길 ; 에시온게벨(엘랏)-페트라(셀라)-암만(랍바)-다메섹

             광야의 길:왕의 대로 오른 쪽 길

                  ⇨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에돔에게 왕의 대로를 지나게 요청했지만 에돔의 거절로

                                      더 돌아서 「광야의 길」로 가야 했었다.(민 20장)-이 때 원망으로 놋뱀 사건(21장)

    ○이름의 변천

               셀라(반석) - 욕드엘(하나님은 멸하심) - 페트라(로마가 점령하고 난 뒤)

2.성경에서의 셀라(페트라)

  ➀원 소유는 에돔의 수도였다.

    ○지형상 물을 저장하기 좋은 곳이어서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

       - 로마가 이 곳을 점령할 때(Bc 63년) 수도관을 부수어 물 공급을 끊어서 성공했다.

  ➁남 유다 「아마샤」 임금이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로 바꾸었다.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왕하 14:7)

    ○이름을 「욕드엘」(하나님은 멸하신다)로 바꾸었다는 것은 그만큼 「셀라」를 정벌하기 어려웠다는 것.

    ○「아마샤」는 「셀라」를 정벌하고 자신감을 얻어

                               북이스라엘 「요아스」에게 도발하여 「벧세메스」에서 전쟁을 하였다.

       -이 때 북 이스라엘 「요아스」는?(왕하 14: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아마샤」는 패하게 되고 사로잡히게 되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예루살렘 성벽을 헐어 버리고, 성전, 왕궁의 곳간을 탈취하여 가는 것으로 끝난다...)

  ➂모압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에서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사 16:1)

    ○모압, 에돔, 암몬이 살 수 있는 길은 ⇨ 「이 땅 통치자」=여호와 하나님께 어린 양을 드리는 것..

      - 그들의 중심 수도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내는 것...

      - Vs 이 당시 그들은 이스라엘의 어려움에 「박수를 치고, 아하 좋다 하였도다」로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때에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사 42장)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사 42:11)

      -이사야서 40장~45장 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의 장.

         / 42장에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니 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의 회복 하실 것.

                   이 때 「셀라의 주민들」은 이 회복을 진정으로 같이 기뻐해 주어야 한다....

          ! 이렇게 하면 그들에게도 같은 기쁨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회복 시켰을 때(이사야 60장)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사 60:7)

      - 「느바욧의 숫양」(이스마엘의 장남 = 나바이아인 ⇨ 페트라)이 하나님의 제단에 공급

      - 「게달의 양 무리」가 이스라엘로 모여 들 것.

         / 성경서 「게달」은 이스마엘 둘째 「게달」의 후손으로 「검은 천막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

         / 「게달의 장막」? ⇨ 타락과 볼품없음을 의미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시 120:5)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Vs 들사람, 자유

                 슐람미?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 1:5)

3.사도 바울과 페트라(셀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고후 11:32)

  ➀여기의 「아레다 왕」은 Bc 9~ Ad 40까지 나바티아 왕국을 통치한 「아레다 4세」

    ○이 본문은 「아레다 4세」가 유대인의 요청을 받고 바울을 잡기 위해 보낸 사람들로 본다.

    ○「아레다 왕」의 딸 「파샤리스 공주」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세례요한 순교) 원 아내이다.

             (대헤롯 - 헤롯 아켈라로 - 헤롯 안티파스(Vs 헤롯 빌립(헤로디아))

       - 헤롯 아그립바세(야고보 순교) - 헤롯 아그립바2세(;드루실라;바울)

    ○「아레다 4세」는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의 딸을 버리고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헤로디아)

         취하는 것에 격분하여 갈릴리를 침공하기도 했으나 로마의 중재로 물러나기도 했다.

                  (헤로디아 = 헤롯 안티파스의 이복동생 「아리스토 부르스 4세」의 딸)

    ○페트라의 대표적 유적 「알 카즈네」를 이 아레타스 4세의 영묘로 추정한다.

  ➁바울은 회심 후 초창기 아라비아에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중의 한 도시?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7)

3.셀라(페트라)의 세상 역사

  ➀Bc 300년경 나바티아 인이(나바테아:아라비아인의 일파) 에돔을 몰아내고 대상교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➁나바이아인?

    ○나바티아? ; 나바투에서 파생된 말로 「밝게 빛나는 자들」이란 뜻.

    ○현 요르단은 나바티아 인을 자기들의 직계 조상으로 인정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나바티아」인은 이스마엘의 장남 「느바욧」의(창25:13) 후손이라고 한다.

       - 에서의 처음 헷 사람 브에리의 따 유딧과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았으나(창 26:34)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 26:35)

       - 야곱이 밧담아람으로 떠나고 난 뒤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이스마엘의 딸인

               동시에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다(더 근심..)(창 28:9, 36:3)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난 뒤 에돔인들이 유대지방으로 집단 이주를 하는 사이

                                그 공백이 생긴 페트라(셀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로마는 처음에 아레다4세에게 다마스쿠스도 다스리게 했는데 「트라야누스 황제」는

             완전히 합병시켜 버리고(Ad 106년) 페트라 대신 보스트라(보즈라)를 주도(州都)로 만들었다.

                  (보스라(부세이라) = 패트라 북 56km 물의 도시; 한 때 에돔의 수도)

  ➂발굴의 시작

       스위스 출신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가 페트라의

               아론의 무덤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면서 무슬림으로 위장 하여 1812년에 발견 여행문....

           (아론이 죽은 호르산이 페트라의 제벨 하룬산(1,350m)로 대부분 인정; 아론의 관의 푸른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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