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기회
전도서 3:1∼11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 목표들이 성취가 될 때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룰려고 하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데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씻지 못할 해를 주면서 자기의 목적만을 달성할려고 하는 그런 생각들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현대에는? ○조급한 생각들이(빨리 이루어야 되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돈을 벌어도 차근차근 순리대로 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와장창?
○젊은이들은 출세를 해도 한꺼번에............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투기 심리가 만연하게 되었다.
옛날의 양반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고, 소낙비가 와도 체통지킨다고 천천히 걸었다.
하인들이 서둘면 서둔다고 나무랐다.
그런데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이런 여유의 멋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바쁘게 서둔다.
그렇다고 그 바쁘게 서두르는데 대한 이익은 사실상 거의 없는 상태이다.
성경은 말세의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가운데 ꡔ조급함ꡕ을 들고 있다.
딤후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사람들이 자꾸만 조급한 마음이 생겨서 서두른다는 것이다.
조급하다는 것은 부지런하다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르다.
조급하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이 서두르는 현상이다.
그러나 부지런하다는 것은 일 하나하나를 처리해가는 규모 있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에서
Israel 사람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빨리 내려오지 않음을 보고(39일이 지나도)
성경은 ꡔ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ꡕ라고 말을 하고 아론을 보고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ꡕ고 제의를 했다. ⇨ 범죄
조급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조급함은 나의 뜻, (인간의 뜻)은 이룰런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루지 못한다.
⇨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가 된다.
오늘의 본문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특히 본문에서는 ꡔ되어지는 때ꡕ에 대해서 14번의 댓구를 사용하면서 실례를 들고 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삶에 주신 질서와 시기를 깨닫게 된다.
본문 말씀에서 “천하에 번사에 기한이 있고”라고 했는데,
ꡔ기한ꡕ 즉 기회는 히브리어로 ꡔ스만ꡕ이데 ⇨ 인간이 노력을 해서 얻는 기회를 의미한다.
“이룰 때가 있다”고 하는 「그 때」는 ⇨ 「에트」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확정적인 시기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때」(에트)를 준비하고 계시는데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때를 위하여 「기한」(스만)에 잘 활용을 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때를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기한(시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주신 「기한」을 가지고 「나의 때ꡕ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혜를 주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건강한 체력을 주셨는데.......... 술집이니 드나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권세를 주었는데............... 착복이나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주셨는데................ 혼자서 사치, 즐기기나 하고......
이것은 범죄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한을 가지고 ꡔ나의 때ꡕ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이 기한을 가지고 절대로 ꡔ나의 때ꡕ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ꡔ하나님의 때ꡕ를 만들고 이루어야 한다.
우리의 예수님도 요한복음 7:6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이 아직 갈릴리 촌 동내에 있을 때 초막절이라는 명절이 되었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갑시다. 촌에 묻혀서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도시에서 큰 일을 해서 빨리 예수님을 나타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아직 ꡔ내 때가 아니다ꡕ
⇨즉 아직까지 나를 나타낼 때가 아니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지금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제자들의 때는 지금이다.
⇨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때, 은헤를 받아야 할 때, 준비해야 하는 때이다.
고후 6;2에서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ꡔ은혜의 때ꡕ 라는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슬리로운 5처녀와 미련한 5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은혜의 시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그 때를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라는 하나님의 때를 위하여 좋은 기회(스만)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미련한 5처녀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기들을 「구원의 날」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자기 육신의 기회의 날들로 삼아 버린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기회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 인간의 역사, 내 인생의 역사는 허사가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때」를 아직 주시지 않았는데도 인간이 그 「때」를 만들려고 해도 그것이 무리수가 되고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범죄와 타락 행위가 되고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준다”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기회를 만들어서 농사에 종사를 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적당한 비를 주시지 않으면 기회는 인간에게 고통만 주고 없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때를 주시고, 인간이 그 때를 자기의 기회로 만들어 일치 시킬 때 그 노력의 댓가가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때가 되기 전에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예수를 잡을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노력은 헛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때가 되자 공짜로 잡혀 주셨다.(도망가지도 않고....... 다른 때에는 주님이 피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때를 위하여
지금의 때를 나의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한 사람이 다윗이었다.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사울」 청년을 왕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때를 그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을 강력한 나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다윗이 증장, 사울의 인기가 떨어지고 다윗의 인기가 상승 ⇨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이 왕이 될까 싶어서 죽일려고 했다.
즉; 사울은 육신으로, 자기의 의지로, 자기의 때를 만들어 갈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죽일려고 하는데 국력을 낭비하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나라를 지키는데 써야 되는 군사를 신하를 찾아 다니고, 죽일려고 하는데 쓰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피하여 광야로 전전하게 되었다.
나라에 공을 세우고도 역적 아닌 역적으로 몰리는 불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윗은 유대 광야를 피해 다니면서도 여전히 민심을 얻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이 무렵의 모습을 성경은?
삼상 22:2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장관이 되었는데”라고 말하고 있다.
다윗은 도망 다니면서도 그 시간을 자기의 미래의 기회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까지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고, 사울을 죽이는 때를 기다리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무시하고 얼마든지 사울 왕을 주기고 「자기의 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서 기다린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인간인 자기가 죽일 수가 없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엔게디 동굴과 같은 기회의 때가 와도 그는 넘겨 버린다.....
○십 황무지에서 사울이 자고 있을 때도 (삼상26장) 사울 옆에 가까이 갔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때 아비새가 하는 말이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이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꽃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삼상 26:8) 고 했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고 하면서 말렸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서두른다...
다윗이 처한 앤게디 동굴과 같은 때가 되면 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사울과 같은 적을 죽인다.
십 황무지와 같은 때가 되면 나의 육신의 때로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의 때를 거스려서 억지로 자기의 때를 만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역자가 되고 만다.
만약에 다윗이 그런 때에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종으로부터 멀어졌을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때를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은혜의 때에(기회) 철저히 신앙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은혜의 기회를 육체의 기회로 만들어 버리면 안 된다.....
○사람들은 일해야 될 기회의 때를 노는 것의 기회로 만들어 버린다.
○성도들은 기도해야 될 기회의 때를 세상과 짝하는 것의 기회로 만들어 버린다.
○주님을 섬겨야 될 기회의 때를 세상을 섬기는 기회의 때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의 기회의 때를 더 헌신의 기회, 기도의 기회, 나 영성 돋움의 기회로, 우리 교회 부흥의 기회로 만들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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