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광을 봅시다.
창세기 12:1~4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 실천 표어가 「순종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광을 봅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여러 명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물론 복의 최 종점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순종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순종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무모 하리 만큼 어리석게 하나님께 순종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육적인 축복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시간 뿐만이 아니라 그가 죽고 난 뒤에도 그 이름으로 인한 축복이 존재하게 만들었던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ꡔ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ꡕ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시키시는 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일.
⇨이 모든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의 유익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시키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시키신 일을 통하여 그 순종한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을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명과 일과 달란트를 주시고
하나님의 기쁨과 우리의 기쁨을 동시에 거두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 순종은 믿음이 있을 때 나오게 된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어떤 순종을 하였고, 어떤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까?
1.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것의 시작 때의 순종입니다. 스타트 때의 순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보면 처음에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나중에도 순종을 잘합니다.
처음에 순종을 하지 않고 어슬렁 어슬렁 하는 사람은 보면 상당히 시간이 오래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적으로 어슬렁 어슬렁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13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 한 자가 되리라”고 한다.
오늘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즉각적으로 순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세상적인 비젼을 제시하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한 것입니다.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그들이 머물러야 될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야 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 그런데 아브라함은 나아갑니다.....
아들 하나 없는 그가 이제 그 75세의 나이에 돈을 벌면 얼마를 벌어서, 출세를 하면 얼마나 출세를 할 것이라고 떠나겠습니까?
⇨ 아닙니다. 그래도 그는 떠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때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이 나이에 이제 무엇을 할 것이라고 가라고 하십니까?
이제 내가 일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라고 부르십니까?
이제 내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벌고 또 벌면 무엇합니까? 물려줄 아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먹고 살만 한데......
⇨ 분명히 지금의 시점에 아브라함은 못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5절에서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서는 그래도 먹고 살기에는 걱정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순종의 뒤에는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 아브라함에게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홀홀 단신인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될 시조가 될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 왕건 연속극을 보면?
박술희: 면천 박씨의 시조가 된다.
신숭겸: 성도 없이 능산이란 이름만 있던 그에게 「평산 신씨의 시조」
왕유: 박유라는 이름에서 「해주 왕씨」의 시조
복지겸:면천복씨의 시조가 된다....
유금필: 평산유씨(平山庾씨) 시조가 된다.
⇨ 이들은 완건과 함께 하여 이런 성을 얻었고 조상이 되었다. ⇨ 그 앞의 그 아버지가 있지만.....
아브라함은 ⇨ 한 성의 조상이 아니라 한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될 「복의 근원」으로서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두번째 아브라함의 큰 순종이 있습니다.
아들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에 자기의 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 아들을 얻고 아브라함은 즐거운 나날을 약 15,6년 보냈습니다.
☞ 성경은 15~6년 시기를 기록하지 않고 있다. ⇨ 아브라함이 여기에 묻혀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느닷없이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22장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어떤 의미적인 늬앙스를 품기고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 할 때 성경의 정확한 말씀은 이렇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네 사랑하는 독자」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에게 파 묻혀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즉; 그 아들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그 아들에 모든 소망을 두고
그 아들에 즐거움을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냥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가 아니고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 우리가 잠시만 방심하면 아브라함과 같이 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삭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파 뭍혀 살 듯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산물들에 더 파 묻혀서 살게 됩니다.
그것을 더 사랑하는 모순에 빠져 버리게 되고 맙니다.
Ex) 아버지가 아들이 사랑스럽고 이번 월말 시험도 잘 치르고 해서 게임기를 하나 사 주었다.
참 고마운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아버지를 사랑해야 되는데....
⇨ 그렇지 않고 그만 그 게임기의 게임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며칠 지켜 보고 있으니까? 이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계속 게임만 하고 놀고 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말씀합니다.
예 영철아 그 게임기, 하나 밖에 없는 그 게임기,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계임기..... 부셔 버려라!!!!!
아니 아버지가 사 주시고서 부수어 버리라니......
아버지의 참 뜻을 아는 아들은 그 게임기를 부수겠습니다. 할 것입니다....
또 그 아버지의 뜻을 알고 게임기를 부수겠습니다. 하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그래 놔 두라.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한번씩 해야지 할 것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금 자기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뒷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 이삭을 바치려 갑니다」⇨할렐루야.
이것이 아브라함의 순종입니다.
내 사랑하는 것,
내 하나 밖에 없는 것.....
⇨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치는 것입니다. 순종의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 이삭 번제로 태워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무슨 하나님께 큰 유익이 있겠습니까?
☞☞☞ 우리는 하나님이 바치라는 그 의미와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아브라함이 순종을 하여서 어떤 영광을 받았습니까?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육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는 한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물질을 얻었습니다.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했는데.(창22:17)
그는 모든 대적들의 문을 얻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한 해에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순종하여서
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ꡔ모든 대적들로부터 문을 얻는 승리자ꡕ
아브라함이 얻었던 물질의 풍성함을 얻는 영광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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