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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신약설교입니다.

「에바다」라고 말해 주소서!

마가복음 7:31∼37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TV의 코메디 중에? 이것은 맞는 것도 아니고 안맞는 것도 아니여!

이것은 들리는 것도 아니고 안들리는 것도 아니여!

이것은 선 것도 아니요 앉는 것도 아니여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오늘 말씀에 들리는 것도 아니고 안 들리는 것도 아닌 사람이 있다.

오늘 말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 사람이 있다.

귀가 열지지 않았고, 입의 말이 열리지 않은 사람이다.

신앙은 열리는 것이다.

우리의 귀가 열리고,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열려서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사람과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말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고 격려하는 말을 하는 입으로 열리고

○마음의 열리므로 주님을 영접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알고, 사랑을 받아들일줄 아는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성경 말씀에 당연히 열려야 될 입이 열리지 못하고, 당연히 열려야 될 귀가 열리지 못하고,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열리지 못하므로 「마음」 마저도 열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한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하므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 주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오늘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 데려져 나온 사람은 귀먹고 어눌한 사람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지체장애 중에 가장 불행한 장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마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생각이 각각 다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불행한 장애라고 우리는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믿음을 얻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걷지 못하는 것이 믿음을 얻는데 가장 장애가 될까요?

말하지 못하는 것이 믿음을 얻는데 가장 장애가 될까요?

보지 못하는 것이 믿음을 얻는데 가장 장애가 될까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믿음을 얻는데 가장 장애가 될까요?

☞ 우리가 믿음을 얻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은 보는 것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으로 나기 때문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를 보아서는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보면 무엇이 보이느냐 하면? ⇨ 요셉의 아들인 것이 보입니다.

나사렛 사람인 것이 보입니다.

목수인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내 나사렛 사람들이 놀란 것 아닙니까?

마태복음 13:5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가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쳐셨다.

그 가르침의 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났는가?

마 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들은 이렇게 말은 하면서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같이 있지 아니하냐?」

고 하면서 「예수를 배척한지라」고 했습니다(마13:57절)

이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 보다도 예수를 보는 것을 우선하였기 때문에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나아왔습니다.

기적을 보기 위해서 나아왔고, 안식일을 범하지 않는가? 를 보기 위해서 나아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는 것으로는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고, 보는 것으로는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는 것으로는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 27:20 “스올과(음부)와 아바돈(죽음의자리)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듣기 위해서 나온 자들이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 5병2어의 기적후에 따르던 사람들이 다 가고 난 뒤에 한 말.....

EX) 약장사들이 마술을 하고, 격파를 하고,,,,,,,,, 사람들을 모은다.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약을 파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약장수는 그것을 다 보여 주고 약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것은 뒤로 미루어 놓고 약을 판다. 왜? 다 보여 주고 약을 파는 말을 하면 다 가 버리기 때문이다......

※※※ 오늘 이 사람이 귀먹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복음, 생명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지금 예수님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예수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지금 무슨 생명의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알지를 못한다.

☞ 현재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모습니다.

교회를 본다. 예수를 본다. 예배를 본다. 목사를 본다.......

⇨ 그러나 교회의 소리를 듣지를 못한다. 예수의 소리를 듣지를 못한다.

예배 때에 주시는 말씀도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사의 소리도 내지 못하는 벙어리다.

⇨ 그래서 겉만 보고 평가를 한다. 외모만 보고 짐작을 해 버리고, 결론을 내려 버린다.

☞우리가 사람을 보는 것도, 주님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을 들어보고, 대화를 많이 해 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지 외모만, 얼굴만 봐서는 모른다.

오늘의 이 사람은 전혀 말을 듣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오직 그는 보는 것으로만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인데 현대의 사람들이 이와 같다.

☞ 보는 것만의 평가가 얼마나 온전하지 못한가?

밤에 보면? 낮에 보면? 조명 빛에 보면???? ⇨ 밤에 다방에서 선 보면?

2.오늘 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안수하여 주기를 바랐다.

주님에게 이 사람의 문제를 맡긴다.

주님이 이 사람을 듣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을 말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손을 머리에 딱 얹고 거룩한 안수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①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갔다.

예수님의 이 치유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앞에서, 자기들이 보는 가운데서 안수를 하여서 낫게 하여 주므로

그 신기한 것을 자기들이 직접 보기를 바라겠지만 주님은 그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 왜? 역시 보는 것으로는 주님을 바로 알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아무리 보여 주어 봐야 본 그것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

기 때문입니다.

②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었습니다.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면서 「에바다」라고 했습니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탄식」 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식하신 적이 딱 두 번이 있습니다.

처음은 오늘의 이 귀머거리를 치유하실 때 탄식하신 것이고,

두 번째 탄식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에 탄식을 했다.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첫 번, 오늘의 것은? ⇨

당연히 들어야 될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탄식을 하시는 것이고

두 번째 것은? 보는 것으로서는 믿음을 얻을 수 없는데 「보여 달라고 하는데서」

오는 어리석음에 대한 탄식인 것이다.

3.어쨌던 오늘 이 사람은 주님 때문에 듣게 되었고 말하게 되었다.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이제 이 사람은 귀가 열렸다.

그래서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복음의 소리를 듣을 수 있게 되었다.

⇨ 이 소리를 들음으로 이제 이 사람은 믿음이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제 이 사람은 들음으로 혀가 풀려서 말을 분명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이 분명하더라”

이제 이 사람은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분명하게,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의 나의 구주이십니다」.라는 말을 분명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말을 분명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앙고백의 말」이 분명하게 되는 것이다.

Ex) 내가 처음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 이것은 아직 믿음의 혀가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에바다 되기를 원합니다.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 아니라

무슨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 줄 아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혀가 에바다 되고 풀려져서 감사와 찬양이 나오고, 회개가 나오고, 기도가 나오기를 축원합 니다.

그래서 듣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지 않던 믿음이 들음으로 생겨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증거하는 귀중한 입술들이 되기를 축원하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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