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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구약설교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1)
여호수아 2:8~15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는 것만을 남겨 놓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벌하고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을 자기의 땅으로 만드는 믿음의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것이 쉬운일이 아니었다.
⇨ 요단을 건너면 여리고성이 있는데 이 성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여호수아는 여리고 정벌에 앞서 2명의 정탐군을 보내서 정탐을 한다.
오늘 말씀은 그 2명의 정탐군을 맞이해서 숨겨주고, 멸망받는 여리고성에서 구원함을 받는 「라합」이라는 기생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는 이 라합에 대해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연히 멸망 받아야 할 가나안 족속의 사람이지만 구원을 얻은 사람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죽는 여리고성의 정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된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도 구원을 얻게하는 전도자였다.
○그는 기생이지만 위대한 믿음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다.
    히11: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수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 하였도다”
○그는 위대한 행함의 신앙인으로 기록되는 영광도 얻었다.
    약2:25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는 이방인으로서 다윗 임금의 고조모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라합은 「살몬」과 결혼하여 룻의 남편이 되는 「보아스」를 낳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당연히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던 이 여인이 그 자신의 생명과, 그 가족의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이런 영적 영광도 얻게 되었는가?
1.라합의 원래의 신분을 보자.
성경은 그를 「여리고의 기생」(2:1, 6:22)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기생이라는 신분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곳을 막론하고 천대받고 냉대 받는 신분이다.
즉 라합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직업을 가진 여인이었다.
     ☞이것이 여호수아서의 기생 라합의 삶이다.
이것이 라합의 삶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과거의 삶의 모습이다.
         ⇨그리스도 없는 삶은 이 기생 라합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삶이다.
       Q/T 영적인 것을 떠나서 세상적인 삶의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세상의 삶에서도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것 같아도 사실은 불상한 사람이 많다.
    ⇨ 이런 사람은 내일이 없다... 미래가 없다. 그래서 만고 태평으로 하루 하루를 지낸다.
술 먹고, 놀고, 돌아다니고...도박하고⇨가족은 힘들어도 자기는 재미있다.
정신나간 사람은 보면? 하루하루 재미있다.... 아무 걱정없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그렇다...- 베짱이는 하루 하루 즐겁다..
⇨ 그러나 내일을 꾸려가는 사람은 ⇨ 오늘은 힘들다. 고달프다.
그러나 그 힘든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내일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 영적인 것을 도입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사람들은 하루 하루의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루하루의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하루 하루의 경건과, 하루하루의 믿음으로 천국의 곳간을 채워가는 재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라합은 기생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기생들과 차이가 있다.
그는 육신으로는 기생이었지만 영적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기생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이 있고, 보고 듣는 것이 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10절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11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
☞ 이 라합이 하는 말 중에 중요한 말이 있다.
       「여호와께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이다.
이방인들은 이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이 「여호와」라는 말은 분명하게 이스라엘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말한다.
라합이 「여호와」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우연히 홍해를 건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연히 아모리를 이기고, 시혼을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들과 그들 나라와 백성들이 믿는 신하고는 완전하게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라합은 그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실 줄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주신 줄을 알고 있다」이다.....
⇨ 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자기들은 쫓겨 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있다.
    ①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②지금의 이 땅이 영원히 나의 땅으로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
    ③주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것
         ⇨이것은 생명의 지식이다. 라합은 이 「생명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40년 전에 있었던 홍해를 건너는 그 사건부터의 이야기를 예사 로 듣지 않고 있다.
        ??? 지금 라합이 몇 살일까?
                  ⇨ 40살이라고 해도 그가 태어날 때의 일이니까 까마득한 일이고
                      40살 미만의 나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다.
                  ⇨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무용담으로 듣지 않고, 흘러가는 이야기로 듣지 않았다.
☞ 우리는 주님의 이야기를, 십자가의 이야기를,무용담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로 듣지 말아야 한다.
⇨ 모세의 이야기를, 다윗이 골리얏을 이긴 이야기를 흘러가는 이야기, 재미있는 무용담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들어야 한다. 신앙으로 들어야 한다.
⇨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의 이야기이고 믿음의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들에게서 끝나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게 해야 합니다.
☞ 사람들이 라합의 집에 와서 한잔 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 넜다는 이야기, 광야에서의
      이야기들을 안주삼아 해 댔을 것이다.
     ⇨ 그 이야기를 한 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 그것으로 끝났다.
      거기에 의미도 붙이지지도 않았고, 어떻게 그렇게 건너고, 이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영적, 지적
        분석도 없었다.
그러나 라합은 그렇지 않았다.
라합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가의 그 이유를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기생집, 술집은 최고의 정보수집지이다.
    ⇨ 옛날 동내의 정보수집지는 우물이다. - 동내 일 다 안다.....
        지금의 시류 정보 수집지는 택시다.- 택시 기사들 세상 다 안다...
라합은 그 집에서 단순히 술만 팔고, 노래만 파는 여자가 아니라 당시의 시류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 우리 성도들은 지금의 나의 직장과 일터 속에 파 묻혀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 세대의 흐름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영적인 것을 파악 할 줄 알아야 한다.
          빌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라고 했다.
Ex)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던 롯은 그 도성의 죄악의 세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
③라합은 정탐꾼들을 알아 본다.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이 얼마나 변장, 위장을 했겠나?
 그러나 라합은 그들을 알 수 있다.
        ⇨ 평범한 손님이 아니야! 술이나 먹으로 온 것이 아니야!
             그래서 라합은?
                ⇨ 이 정탐꾼들이 자기에게 심판자도 될 수 있고 구원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합이 이들을 인정하고 맞이하면? ⇨ 이들이 나중에 그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라합이 이들을 알아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이들이 그의 심판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설령 신고를 하여서 이 사람들을 잡아서 죽인다고 할찌라도 이들은 죽일 수 있고, 신고 보상금은 좀 타 먹을련지 모르지만 그것은 얼마가지 않을 것이다.
        ⇨ 결국은 자기도 여리고와 함께 멸망을 당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도 되고, 심판자도 된다.
☞ 우리가 예수를 인정하고, 그를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무시하면, 그를 죽이면 주님은 우리의 심판자가 된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대로 그 신분을 노출하여 주셨다.
그러나 서기관,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이런 사람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경, 문둥이, 가난한 여인, 제자들은 인정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면서 달려왔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주님이 죽으시고 나면 성령님이 오실 것인데 그 성령님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고 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한다.
   ⇨ 결국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라합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이 여인은 자기가 사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 도망을 가서 사는 것이 아니고, 숨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들을 신고하여 죽여버려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들을 인정하고 영접하므로 사는 것을 알고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 내라”고 한다.
우리는 주님에게서 도망하여서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죽여서 살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부정하여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접하므로, 인정하므로󰡕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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