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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 설교 선한 싸움을 하는 성도 디모데후서 4:3∼8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싸움을 하는 전사들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 잡혀있는 자는 영적인 싸움을 하는 자가 아니다. ○Israel 사람들이 애굽 바로의 종으로 있을 때에는 싸움이 없었다. ⇨고역만 있고, 고생만 있었지 싸움은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그 바로의 수하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부터는 바로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사탄(세상)의 수하에 복종 하고 있으면 아무런 싸움이 없다. 그렇다고 거기서 언제나 그렇게 사탄의 종으로 있을 것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사탄의 종으로 그대로 있다가는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이 사탄의 수하에서 벗어나는 싸움을 했고, 이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 내가 승리를 했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를 하심으로 ⇨ 그 승리를 힘입고 우리가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적을 붙일 필요도 없고, 날짜를 가릴 필요도 없고, 방향도 가릴 필요도 없다. ☞☞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싸워야 했던 모든 영적인 싸움을 다 하셨다. 그리고 그 모든 싸움에서 100% 승리를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승리를 믿으면? ⇨ 우리 성도들은 어떤 영적인 싸움에서도 패하지 않을 것이다. 왜?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은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실 때 이미 승리를 보장하여 주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신 사실을 믿고 바로에게 나아 간다면 무조건 승리를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Israel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이 이미 서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장군으로 세웠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세우신 것을 믿으면 절대로 패하지 않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미 Israel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계획이 서 있기 때문) ○기드온 용사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미디안과의 싸움에서100% 승리를 하게 되어 있다. ☞우리 성도들의 싸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영적인 싸움은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배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싸움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들 주위에서 포진을 하고 우리를 「성도의 자리, 하나님의 아들, 은혜의 자리, 생명의 자리, 양자의 자리, 직분의 자리, 사명의 자리」 에서 끌어 내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사도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처음 사울이었던 시절에 그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싸움꾼이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최 일선에 선 사람이었고 그 유명한 스테반 집사가 순교하는 그 현장에도 그는 있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싸움군」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의 용사가 되었고」 이 싸움을 잘 마쳤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선한 싸움을 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사도 바울의 싸움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 하고 있는 싸움이기도 하다. 1.그는 그의 학문과 그리스도의 복음과의 사이에서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최고의 학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가말리엘 문화 최고의 학부를 가진 그였습니다. 그 학벌은? 그를 세상적인 출세의 길로 이끌 수 있는 귀중한 재산이기도 하다. 세상적인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학벌이 가져다 주지 못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 영생을 가져다 주지를 못한다. 하나님께로는 인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학문은, 이 학문이 사울을 그리스도를 핍박하게 만들었다. 그가 하고 있는 학문의 견지에서 보면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핍박을 해야 되고 없어져야 하는 사교(邪敎)에 불과 했습니다. 이런 사울이었지만 주님의 강권적인 부름을 받고난 뒤에 하는 고백이 어떻습니까?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지금도 많은 사람이 세상의 학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세상의 학문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논할려고 한다. 세상의 학문을 가지고 창조를 반박한다. 세상의 학문을 가지고 성령 잉태와 부활을 부정한다. 세상의 학문을 가지고 천국과 영생을 부정한다. 그래서 이 세상의 학문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자들이 많다. ⇨ 이 세상의 학문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길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Ex)물고기의 학문은 아무리 해도 물의 세상에서의 학문에 불과하다. 새들의 학문을 가지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믿지를 못한다. (미친 소리라고 할 것이다) 물고기가 물고기의 학문만을 주장하는 한 새들의 학문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사람들이 세상의 학문에만 치중하는 한 「그리스도에 이르는 지혜」「영생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바울은 이 2개의 학문의 싸움에서 그리스도를 선택했고 이 지식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왜? 이것이 생명의 지식이기에..) ???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학문과 철학과 말씀과의 싸움에서 당연히 말씀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잡을 주의하라 이것은 사 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2.그는 육신의 원하는 것과 영의 원하는 것의 싸움을 하였다. 롬 7:22∼2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의 육신을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은 언제나 우리의 영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 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영이 육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처럼 되어 버렸고 ○육이 주인이 되어 버려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 때문에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로마서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마저도 육신의 원대로 이끌어 짐으로 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주인이 되어 버려서 육신이 좋아하는 일들만을 합니다. ⇨ 영은 전혀 보호하지 못합니다. 육신이 주인이 되어 버려서 쾌락을 원하고, 악을 원하고, 세상의 일락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Ex) 사람들을 위해서 자동차가 있는 것이지 자동차를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데 오히려 자동차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볼보나, 그랜즈를 사 놓고......) Ex) 나를 위해서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인데 내가 취미를 위해서 있는 경우도 많다. 눈만 뜨면 챙기고, 눈만 뜨면 올라가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오히려 영이 육신의 종이 되어 버려서 꼼작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지금도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육신과 영의 싸움에서 한 번 패한적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싸움에서 거의 패할뻔 하였다. ○ 밭까지 팔았던 아나니아 삽비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도.... ○본문 뒤에 나오는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 육신의 즐거움을 좇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같은 사람은 느끈이 이 싸움에서 이긴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육신과 영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고 하심으로 승리를 하셨다. 3.바울은 복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전도다. 선교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방해하는 세상과의 영적인 싸움을 하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므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냈습니다. 고후11:23∼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런 모든 난관들을 이기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나 혼자 얼마든지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나 혼자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싸움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전투 사명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싸움, 복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전사들입니다. 한번 패하면 그것을 다시 이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한번 패하면 그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간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이김을 힘입어 한 번도 패함이 없는 승자들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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