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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 고린도후서 강해
   고후 10장(Ⅱ):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를 기다리는 주님
                                                                     고린도후서 10:6∼11
Ⅰ.바울을 멸시(비방)하는 사람들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바울의 어떤 것을 비방하고 있는가?
   1.바울을 육체대로 행하는 자라고 멸시(비방)을 하고 있다(2절)
      이에 대한 바울을 답변?(고후1:12∼23)
          ①육체의 지혜대로 하지 아니했다(1:12).
          ②하나님의 은혜로 했다(1:12)
          ③육체를 쫓아 경영하지 않았다(1:17)
          ④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했다(1:19)
    ☞바울은 육체대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8장에서는 육체대로 행하는 결과를
                                                크게 4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다.
                ①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8:6)
                ②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8:7)
                ③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수 없다(8절)
                ④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13절)
      ⇨그리고 바울은 육체의 열매가 어떤 것인가도 잘 알고 있었다(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바울은 이들이 지금 육신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성도가 싸워야 하는 싸움은 육신의 싸움이 아닌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육신의 싸움을 하고 있다.(파벌을 이루어서)
         그것도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이 세상 법정에까지 갔다, 고전6장)
          ☞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 헛 싸움을 하고 있다.
           사탄과 싸우고, 악한 영과 싸운데 영적인 에너지를 써도 모자랄 판에
              같은 교회 안에서 같은 성도끼리 싸우는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싸움은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 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래서
         악의 영들을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되는데
                     ⇨ 사람들을 대적하기 위해서 웃 옷을 벗어 던진다.
        ○항상 기도와 간구를 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로 무장하여야 하는데
                     ⇨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저 성도를 이길까의 꾀에 골몰한다.
        ○그래서 육체를 불의 병기로 만든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 ~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불의 병기는 사람들 죽이게 되고, 의의 병기는 사람들 살리게 된다!!!
      ☞교회가 무너지고, 어렵게 되는 것이
                                    외부의 핍박과, 외부와의 싸움 때문이든가?
        이런 싸움에서는 교회가 분명히 이긴다.
          하나 된 기도가 있고 하나 된 마음이 있고,
                                 하나 된 무장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교회의 어려움은
                 그 교회 성도들에게서 나는 혈과 육의 싸움 때문이다.
          장로파?( 甲 장로파, 乙 장로파) 목사파? 교회 개척파, 비개척파......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약 4:1)
         성도는 지체를 의의 무기로 만들고,
                그 의의 무기로 악의 영들을 대적하여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한 자들이었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Ⅱ.주님은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 중에 있노라”(6절)
    1.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복종이 온전하지 못할 때에 주님께서 오시면 심판의 대상이 된다.
              ⇨ 그러나 복종이 온전하게 되었을 때에 오시면 구원의 대상이 된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은혜가 된다.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은 것을 벌하려고 가 아니고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이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에 복종치 않은 것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한다.
        ☞ 우리의 주님은 과거의 것을 묻지 않으신다.
              과거의 불복종을 묻지 않는다. ⇨ 지금의 불복종을 물을 뿐이다.
              과거의 불신앙을 묻지 않는다. ⇨ 지금의 불신앙을 물을 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복종이 온전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 이것이 은혜다.
              이것은 바울은 자기의 신앙적 고백으로 무엇이라고 했는가?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도 주님의 우리의 기름통에 기름이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도 주님이 우리의 믿음의 예복의 단추가 채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채 믿음의 예복을 입기 전에 오셔서 벗은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시는 배려
         ⇨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후5:3)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달란트가 남겨져서
                                    칭찬받는 자로 설 수 있게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가 된다.
   2.주님의 이 모습으로 바울도 고린도 교회가 바로 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달려가면 고린도교회는
                 바울로부터 칭찬보다는 책망 받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 배려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바울의 배려를 모르고 무엇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10절)
       ①이들이 왜 이런 말을 하는가? 바울을 외모로 보기 때문이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7절)
       ※ 바울의 외모적인 모습은 그렇게 시원하지 생기지는 않았다.
            3번 기도할 정도의 가시를 가지고 있는자!
            루스드라에서(행14장) 바울은 헤르메스,
                                        바나바는 제우스로 평가 받는 모습!
             그러나 그의 말솜씨는 그렇지 않았다.
                               ⇨ 아덴에서의 철학적인 논쟁의 달변가
           그러면 이들이 말하는 「약하고 말도 시원치 않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 바울은 멀리서 편지를 보낼 때는
               큰 소리 치고, 힘이 있고,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한 사람이고 말도 시원치 않는 사람이라고 은근히
                         멸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미 자기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스스로 말을 해 놓았다.
       1절에서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
                                                                                이라고 했다.
            ⇨ 바울은 성도들 앞에서는 군림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있었다.
     그래서 성도들 앞에서 「유순한 자세」 그것을 사람들은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3.주님의 권세는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고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8절)
             주님은 우리를 세우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고,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주님 당시 율법은 수많은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지만
                       주님은 그 율법에 의해서 무너진 수많은 사람들을 세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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