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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사도행전 설교
             초대교회와 같이 날마다 모이는 교회
                                                                        사도행전 2:46∼47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교회와 성도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본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가 받았던 은혜를 우리 교회도 같이 받아 누리고,
                                        축복을 우리 교회도 같이 받아 누리고,
                                        부흥을 우리 교회도 같이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
         초대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은혜와 축복들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초대교회와 같은 신앙생활, 믿음 생활을 하면 된다.
  ○누구나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
           ⇨ 그러나 다윗과 같이 살지는 않는다.
               살기는 사울임금과 같이 살면서 다윗의 축복을 받을려고 한다.
        다윗과 같은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다윗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 그래야 다윗과 같은 은혜를 받는다.
  ○누구나 야곱의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
              ⇨ 그러나 야곱과 같이 살지는 않는다.
                살기는 에서와 같이 살면서 야곱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이다.
 야곱의 축복을 받으려면 야곱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야곱이 받았던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뒤
     남아 있는 제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교회를 이루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예수를 죽인 핍박자들이, 사울이라는 청년이 여전히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던
         그 위기의 순간들에도 초대교회가 교회로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 남아 있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잔멸하려고 하는 것과는 오히려
           반대로 더욱 부흥하고 성장되어 가게 된 이유는
바로 오늘의 말씀의 모습이 그 교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 교회가 교회로서 남아 있고, 존속하는 것으로 거치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처럼 부흥되고 성장되기 위해서는
                           이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이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상항이 아무리 지리, 위치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초대교회가 당하고 있는 상항만큼은 분명히
                                     어렵지 않고 좋은 상항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초대 교회는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축원하면서 말씀을 드린다.
1.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자
    이 말씀에서 우리는 3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① 날마다 ② 마음을 같이 하여 ③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는이다.
   우리 교회에는 날마다 주님과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촌보다도 이웃 가까이 있는 이웃사촌이 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혈육으로는 남이지만 가까이 있으면서
                                     매일 매일 정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성도가 신앙에서 떨어지는 것이 「날마다」에서 서서히
   「한 주일씩」으로 ⇨ 「한 달씩」으로 떨어지게 될 때에 신앙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날마다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날마다 만남?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이들이 날마다 모였다는 것은 누구 집사가 보고 싶어서 모였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 장로가 보고 싶어서 모였다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위해서 모인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동고동락해야 하듯이 성도와 그리스도가 동고동락해야 한다.
                 이것이 영적인 부부로서의 모습이다.
    남편과 아내가 별거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그 가정에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한 달간 별거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내 신앙에 분명히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부분의 성도는 1주일간을 그리스도와 별거상태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주일에 한번 만나는 것이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생긴 말이 있다. 「주말부부」라는 말이다.
서울과 부산에 떨어져서 각기 직장 생활을 하다가 주말이 되면 만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 중에도 6일간 동안은 완전히 주님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다가
               주일에 한번 나와서 주님을 만난다. 이것은 영적이 주말 부부들이다.
        성도는 영적인 주말 부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동거하는 성도가 될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 몇 번이고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마지막 기도중에서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소서”(요17:20)라고 기도를 했다.
      무엇으로 인하여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 해야 하는가? 말할 것 없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마음을 같이 해야 한다?
               ?교회를 인하여 마음을 같이 해야 한다.?
           ○정당은:정치로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써클은:취미와 이상을 같이하는 자들이 같이 모이는 것
           ○계 는 :돈에 대해서 마음을 같이 하는 자들이 모이는 것
                         ⇨그래서 얼굴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 같은 계에 들어 있다.
           ○교회 :그리스도로 인하여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는 것이다.
   만약에 교회에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 된 모임이 아니라면
                        이 교회는 이미 교회로서의 모습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모여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가 있는가?
   Ex) 오이 두개가 있다. 이 두개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가 있는가?
            방법이 있다. 오이 두 개가 믹셔기에 들어가서 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쥬스가 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각기 오이 개체 두 개로서는 절대로 하나가 될 수가 없다.
            두 개가 동시에 믹셔기에서 부수어지고 갈아져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
                 쥬스가 될 때에 하나가 될 수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도 각각이 개성이 있다.
           오이가 훌쭉한 것, 통통한 것, 가시털이 많이 난 것, 없는 것,
                          구부러진 것, 똑 바르게 곧은 것 등이 있듯이
    교회의 성도들도 각각의 모습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성도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줄로서 묶어 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믹셔기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라는 믹셔기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원래 오이의 모양이 아니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나와야 하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나와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했다.
      그 원래 오이의 모양은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한 컵의 오이 즙으로서 새롭게 탄생된 것처럼
  우리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부산성동교회에 담긴 오이 즙들이 될 때에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오늘 여기에 같이 모이는 사람들이 누구들인가?
      ○주님 당시에 누가 크냐고 다투던 제자들!
      ○세리였던 마태도 있고, 생전 비린내 나는 어부였던 베드로도 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던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다.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와 다른 여자들도 있다.(막달라 마리아?)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의 모양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믹셔 되어서 하나가 된 것으로 모이는 것이다.
2.어디에 모였나?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성도가 모이기를 힘써야 되는 것은 성전이다.
     주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 “여호와의 눈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모여서 하는 일에는 언제나 은혜가 있다.
                그러나 어느 집에 모이고 어느 다방에 모여서 하는 일에는
                   항상 은혜롭지 못하는 일들이 차후에 발생한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의 중심은 이 교회당이 되어야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광야의 시절에는 성막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성전이 중심이었다.!!!!!!
3.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42절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6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오로지?라는 말에 주위를 귀울여 보자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 교제, 떡을 뗌, 기도, 찬미 이런 것들만을 위해서 모인 것이다.
  ○교회에는 내가 말들을 하기 위해서 모여서는 안 된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떡을 떼기 위해서 모여야 한다.(듣기 위해서)
  ○교회에는 누구에게 말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말하기 위해서(기도) 모임는 것이다.
  ○교회에는 즐기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은혜 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찬미) 모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는 정말로 모이는 교회가 됩시다.
     예배하기 위해서, 기도하기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 모이는 교회가 됩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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