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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신약설교 네 믿음의 너를 구원하였으니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성경에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옥합을 깨뜨린 사건에 대해 4번 언급 ⇨ 이것을 종합을 해 보면 아마도 2 사건일 가능성이 많다. 참고적으로 위의 모습을 보면 아마도 2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바리새인의 반응과 제자들의 반응, ○문둥이 시몬은 구원을 받았지만 본문의 바리새인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로 남기에.... 오늘의 분문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도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지목을 받으면서 부끄러운 삶을 살아오던 한 여인이 어떻게 「죄의 문제」 「인생의 문제」 「부끄러움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말씀이다. 우리들이 생활을 하다가 보면 이웃 사람에게 「고개도 들지 못하겠다」고 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부끄러움 때문에 매일 기가 죽어서 지내고, 숨어서 지내게 되는 사람을 본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더 근본적인 부끄러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의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이 세상에 존재한 사람치고 부끄럽지 않을 존재가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를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 인가를 깨닫지를 못하는 것. 그러나 깨닫는 자는 그리스도에게 나온다.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께 당할 그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서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온다. 오늘 그 용기를 가진 믿음의 여인이 있다. 오늘 우리는 이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믿음에 대해서 정리를 해 보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는데 과연 이 여인의 믿음은? 1. 이 여인은 용기가 있는 여자였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나아올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부담없이 나올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나올려고 하면 그것을 막는 세상의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바리새인의 집에 계신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 동내에 들어오셨을 때 ⇨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죄를 고백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그런데 일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바리새인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경건한 사람들이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아주 경건한 사람들이었고, 죄와 동떨어져 살아가는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죄인인 자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 앞에서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는 그런 인간적인 간격을 가지고 있는 사이이다. 그런 집으로 예수님이 쏙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예수님이 저 집에서 나오면 예수님을 만날까? ○아니면 지금 들어가 버려? ○아니야! 그러면 저 바리새인이 나를 쫓아내어 버릴지도 몰라, 수모만 당하고 쫓겨날 거야 ○다음에 우리 동내에 들어오실 때 만날까?... ⇨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아니야! 지금 만나야 해.... ☞우리 성도들도 이런 망설임에 접해 보신 적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결단?, 예수님을 만나는 결단은 ?지금」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여인은 감히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갑니다. 사람들을 비집고 예수님에게까지 나아갑니다. 더디어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에게까지 나아가는데 많은 난관들이 있습니다. 체면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습니다. 신분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습니다.(좋은 신분, 나쁜 신분) 자존심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습니다. 부끄러움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 때문에 「그래 내일 만나자.............」 「예수님 혼자 있을 때 다시 오자.......」 「저 집에서 나오면 만나자..........」 고 하면서 생각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이 여인은 수치를 무릎서고, 자기의 자존심을 내어 버리고, 혹시 다가올지도 모르는 봉변을 무시하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2) 여인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그 집 주인 바리새인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 거기에 계시는 ?주님만을 의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을 의식해서 주님 앞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저 목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 교회 교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웃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성도 여러분! ⇨ 이런 외형적인 것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 계시는 「주님을 의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망설여지지 않을 것이다. 늦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2.이 여인은 옥합을 깨뜨렸다.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 정도의 가치를 가진 향유입니다. 이 여인이 향유를 왜 마련했습니까? 처음부터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 이 향유를 마련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 아마 이 여인이 이 향유를 마련하게 된 동기는 자기의 치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더 아름답게 꾸미고, 더 많은 남자들을 유혹하는데 쓰기 위해서 거금을 들여서 이 향유를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오기로 결심한 이 여인은? 이제 그 향유가 자기를 위해서 쓰여져야 하는 것이 아닌 줄을 알았다. (깨달았습니다.) 이 향유가 여인 자신을 위해서 쓰여지게 될 때는 ⇨ 죄 짓는데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향유가 주님을 위해서 쓰이되니까 ⇨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주님을 기뻐게 하는 것이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위해서 많은 것을 모은다. 내가 쓰기 위해서 많은 것을 거금을 들여서 모은다. 이것들이 앞으로 나를 위해서 유용하게 쓰여질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 앞에 이것을 깨뜨립십시오 나를 위해서 쓸려고 모은 것, 장만 했던 것, 주님 앞에서 깨트리십시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쓰는 용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 주님을 만난 성도는 이제 더 이상 「나만을 위한 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쓸 때에 꼭 그것이 참 쓰임의 장소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3.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더디어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물로 발을 적셨다. ⇨ 회개의 눈물입니다.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 ⇨ 그 머리털로 얼마나 많은 남자를 유혹하였던가?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발에 입맞추었다 ⇨ 지금까지는 세상의 뭇 남성들과 입을 맞추고, 유혹하던 애교의 입술이었다 ⇨그는 자기의 죄를 조목조목 주님 앞에서 열거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죄를 눈물로서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 씻김의 의미, 옥합을 깨트리는 의미를 아시는 분이다. 초청했던 바리새인이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고 했지만 이미 주님은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50) 라고 합니다. ⇨ 이 여인의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질병의 문제 때문에, 귀신의 문제 때문에, 물질의 문제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문제들 때문에 나오지 않았다. 「죄의 문제로 고민했고, 그 해결을 위해서 주님을 찾았다」 모든 문제 때문에 주님을 찾는 자는 문제의 해결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여인의 마침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오신 주님으로부터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이 여인의 사모함과, 신앙의 용기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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