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배경(549장): 내 주여 뜻대로
막14:36
작사: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k, 1672-1737)
작곡:칼 마리아 본 웨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작시의 배경
1.작사자 ⇨ 벤자민 슈몰크
목사.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독일 슈레지아 출생.1702년 프리덴 교회 부목사.
1714년 루터파 교회의 감독이 되었으며 1,000여편의 찬송시를 지었다.
벤자민 슈몰크는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 시절에
시를 지어 그 수입으로 학비를 충당한 시인.
졸업 후 부친 Martin Schmolck의 목회를 조력하다가 목사가 된다.
유럽에 30년 전쟁이 있었다.1618~1648)
⇨ 이 전쟁은 유럽 대륙 거의 전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전쟁 발발의 원인?
1618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 왕의 자격으로
자신의 영토 내에서 가톨릭 절대 신앙을 강요하려고 하자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의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반란으로 발생했다.
이 전쟁을 시작으로 유럽 대륙의 나라들이 영토 확장을 이루기 위해서
이전 투구 현상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가톨릭과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표하는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과 지금의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한 합스부르그 王家가 주도한
神聖(신성)로마제국(독일 여러 영주국의 연합체)과 독일의 舊敎徒 편)
Vs 반(反)가톨릭 세력의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新敎 국가는
독일의 신교도 편에 의지한 프로테스탄트 도시들 및 공화국과의 전쟁
⇨ 독일의 수많은 公國과 영주 국가들은 신교, 구교편으로 갈렸다.
프랑스는 舊敎 국가였는데, 스페인과 神聖로마제국을 경쟁자로
삼고 있어서 新敎 편을 들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때에 프랑스는 구교의 편을 들어 주었다.)
이 전쟁의 전반부에서는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그)이,
중반부에선 스웨덴이,
종반부에선 프랑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The peace of Westfalen)으로
전쟁은 종식되었지만 전쟁을 종결할 때
전체적으로는 新敎가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
이 전쟁으로 유럽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었고,
당시 독일 1,600만 인구가 600만으로 줄었고,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게 되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구교의 대립은 여전히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나중에 슈몰크 목사가 시무하던 실레지아(Silesia)라는 곳이 있는데
(당시에는 독일(독일명은: 슈바츠(Schweidnitz), 지금은 폴란드)
이곳이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의 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전쟁으로 인해 모두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가 버렸고
그 지역에 단 한 교회만 루터교회로 허용이 되었다.
이 교회는 통나무 움막에 흙벽으로 지은 건물이었고 종탑이나 종도 없었다.
이 교회가 바로 슈몰크 목사가 시무한 유일한 개신교 교회
?성 삼위교회?였다.(조사(助事) 두 명과 함께)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그 지역에서는 도심지에 개신교회를 세울 수 없었고,
성 밖에서만 허용이 되었다.
또 로마 카톨릭교회 신부의 허락이 없이는 개신교(루터교) 목사가
그 지방의 환자를 심방할 수도 없었고 장례식도 치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런 악 조건 속에서도 슈몰크 목사는
36개의 마을을 가톨릭 신부들의 눈치를 보면서 심방을 하면서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방항하던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다.
그는 30대 초반부터 중풍에 백내장까지 오는 시련을 겪었다.
1730 어느 주일에는 과로로 쓰러졌고
중풍 병으로 한 동안 누워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회복된 후에도 끝내 오른손과 발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 후에도 그는 두 번이나 중풍 병이 재발하였고 백내장으로도 고생하였다.
성공적인 수술로 잠시 병세가 나아지는 듯 했지만
결국은 실명을 하고 와병 중에 있던
그는 1737년 2월 12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704년(32세 되던 해) 어느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먼 지역의 심방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고 있었다.
타다 남은 것들이 마저 타느라고 여기저기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슈몰크 목사는 두 아들을 찾아 보았지만
이미 두 아들은 서로 부둥켜 앉은 채 불에 타서 죽은 상태였다.
슈몰크 목사 부부는 새까맣게 탄 두 형제의 시체를 놓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다.
그 내용을 이후에 시로 옮겨 놓은 것이 바로 이 찬송시이다.
그는 1,000 편 정도의 시를 남겼고
현 우리 찬송가에 333장(충성하라 죽도록)이 실려 있다.
이 곡은 슈몰크 목사가 소천하신 후 100년이 넘은 후 발견되어
Holbrook, Joseph Perry가
웨버의 ?마탄(魔彈)의 사수(射手)?(Der Freischütz)'의 서곡(序曲,
overture)(1821) 호른(도 Horn) 연주 부분에서 가사를 붙였다.
작곡자: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베버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음악가이자,
독일 국민 오페라를 수립한 선구자이다.
그가 이 가사를 위해서 직접 작곡하지는 않았다.
편곡자: Holbrook, Joseph Perry(1822~1888)
홀스 부룩의 다른 곡들
74(오 만세 반석이신), 82(성부의 어린양이),
395(자비하신 예수여), 549(내 주여 뜻대로)
'찬송가 배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찬송가 배경(144):예수 나를 위하여 (2) | 2025.04.14 |
---|---|
찬송가 배경(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0) | 2025.04.14 |
찬송가 배경(109장):고요한 밤 거룩한 밤 (0) | 2025.04.08 |
찬송가 배경(3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 (0) | 2025.04.05 |
찬송가 배경(446장):주 음성 외에는 (0) | 2025.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