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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기적(41-1):웃사와 오벳에돔

역대상 13:6~14 (사무엘하 6:)

Ⅰ.법궤(언약궤)에 대한 고찰

1.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임재와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적 성물

2. 구성: 법궤(증거궤)+속죄소

3. 법궤에 들어 있는 것: 십계명의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금으로 만든 만나 항아리(히9:4)

4. 법궤의 이동경로?

광야(브살렐+오홀리압이 만듬) ⇨ 실로(여호수아시대; 수19:51) ⇨ 벧엘(사사기 말 삿 20:26)

⇨ 실로로 되돌아 옴(엘리제사장 시절) ⇨ 블레셋과의 전쟁터(삼상4장) ⇨ 블레셋의 아스돗 다곤의 신전(삼상5) ⇨ 블레셋의 에그론(삼상5)(블레셋에서 7달을 있음) ⇨ 벧세메스(여기서 법궤안을 들여다 보아서 오만칠십인이 죽음) ⇨ 기럇여아림 아미나답의 집에서 25년을 있음(아미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구별하여 지키게 함, 삼상 7:2) ⇨ 오벳에돔(석달:삼하6장) ⇨ 다윗성 ⇨ 압살롬 반역때 메고 나왔다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임(삼하18장) ⇨ 솔로몬 성전 ⇨ 바벨론?(대하36)

Ⅱ.다윗의 신앙 회복을 위한 법궤 들임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대상13:3)

1.아미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정치, 나라의 중심으로 모셔온다.

얼마 만에 모셔 오는가?

엘리 제사장 이후 사무엘 시대 20년(삼상7:2 참조),

사울 왕 시대 40년,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된 후 10년이 지난시점 ⇨ 70년

①이스라엘은 처음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를 아미나답의 집에 모셨을 때는 신앙이 좋았다.

삼상7:2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그러나 사울시대의 사울 임금은 이 법궤와 상관없이 살고, 청치하는 임금이었다.

⇨ 그는 법궤를 방치하였고, 그의 청치와 삶의 중심으로 모셔오지 못했다.

②오늘 다윗은 그 변두리에 있던 법궤를 나라의 중심으로 모셔 오고자 한다.

정치의 중심으로 모셔 오고자 한다.

그 삶의 중심으로 모셔 오고자 한다.

○ 성도는 신앙(법궤)을 삶의 중심으로 모셔야 한다.

○ 성도는 신앙(법궤)을 일을 중심으로 모셔야 한다.

Ⅲ.잘못된 방법

1.메어야 하는 법궤를 수레에 싣고 왔다.

①처음의 생각은 옳았다.

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하나님의 법궤는 제사장들이 메어야 했다. ⇨ 고핫 자손이 멤

(참고: 게르손 자손=장막 종류와 그에 따른 줄 종류)

므라리 자손=널판과 기둥과 받침과 말뚝과 그에 관계된 줄등)

법궤를 메어야 된다는 것은 인간의 완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 3의 힘을 빌려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나의 헌신을 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나의 헌신을 원하고 계신다.

??? 편안한 헌신?

②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7절)

분명히 6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라고 했다.

그런데 7절에서 갑자기 「새 수레에 싣고」가 되어 버린다....

⇨ 처음 헌신의 각오가 변하였다.

처음 온전한 헌신의 각오가 편안한 헌신으로 변하였다.

?? 법궤만 옮기면 되는 것 아닌가?

법궤만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 쉬운 방법을, 편안한 방법을, 빠른 방법을 선택한다.

☞ 어깨가 아파도, 좀 늦더라도, 좀 힘들드라도 메고 가자!!!!!!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지는 것이다!

십자가는 지고 메는 것이지 수레에 싣는 것이 아니다!!!!!

☞ 때때로 우리들이 이렇다.

처음 한 온전한 헌신의 각오가 편안한 헌신의 행동으로 변해 버릴 때가 많다.

버가에서 돌아가 버린 마가의 헌신이 이랬다.

○꼭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가? 하면서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집에 한다.

○꼭 하루에 한 장, 혹은 두 장씩 성경을 읽어야 하나? 한꺼번에 읽자로 변한다.

③오늘 이들의 헌신에는 새 수레는 있지만 자신들의 땀의 헌신은 없다.

○이들은 수레를 모는 헌신만 있다.

○이들은 소를 모는 재미난 헌신(?)만 있다.

2.소들의 뜀과 웃사의 죽음

웃사는 궤를 붙들었는데 하나님의 치심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웃사의 헌신을 받지 않았다.

⇨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신이라고 생각한 그들의 헌신을 받지 않았다.

민4:15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 ...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 공사현장에 가끔 󰡔촉수금지󰡕라는 단어를 보게 된다.....

○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나의 방법으로 섬길 때에 문제가 발생한다.

⇨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 사람들은 사람들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려고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 소와 사자의 사랑이야기?

소는 사자를 사랑해서 매일 맛있는 풀 요리를 해 준다.

사자는 소를 사랑해서 매일 맛있는 고기 요리를 해 준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원수같이 돌아선다.... 자기의 사랑을 몰라 준다고.....

⇨ 상대방의 방식대로가 아닌 자기의 방식대로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Ⅳ.오벧에돔

다윗으로 옮기는데 실패한 법궤를 오벳에돔의 집에 들여 놓았다.

웃사의 죽음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 법궤를 오벧에돔은 자기 집에 맞아들인다.

죽음의 두려움인가? Vs 축복의 기회인가?

⇨ 핍박의 두려움인가? Vs 영생의 기회인가?

섬김의 힘듬인가? Vs 축복의 기회인가?

헌신의 손해인가? Vs 축복의 기회인가?

웃사가 죽는 일이 발생하자 다윗까지도 법궤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삼하6:9)

그럼에도 오벳에돔은 3개월 동안 두렵고 떨림으로 법궤를 모셨다.

그 모심에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오벳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삼하12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라고 말하고 있다.

??? 석달만에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내렸을까? (지금처럼 복권이 있는 시기도 아닌데...)

⇨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축복의 소문이 다윗 임금에게까지 들리는 축복이었다는 것이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Ⅴ. 결론

법궤를 통하여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

웃사는 저주의 기적을 맞은 사람이고 오벧에돔은 3개월 만에 축복의 기적을 얻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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