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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의 기적(46):에녹의 승천

                                                                                                      창세기 5:21~24

에녹은 65세에 무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그는 이런 육신의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히 11:5)으로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의 데려가심을 입었으니 육신으로 승천(휴거) 하였다.

아담 이후로 오직 에녹 한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1.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을 했다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본문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이 두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은 사람과 동행하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으니 광명을 등지고 흑암으로 정의를 등지고

지옥으로 달음질치던 때입니다.

(마 7:13-14)에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여 찾는 자가 적으니라"고 했다.

에녹은 이 좁은 길을 홀로 걸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마음에 합해야 하고

흰옷을 입어야 하고 빛 가운데로 행해야 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를 에녹은 했다는 말입니다.

성만찬을 그린(성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성만찬식 성화를 그리기 위하여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모델로 택한 인물을 고르기 위하여 여러 나라 여러 교회를 순회하였습니다.

그리다가 파리 어느 장로교 성가대장이라는 어느 청년을 모델로 택하여 주님의 형상으로 그렸던 것입니다.

그는 성화의 주인격이 주님의 형상을 그리고 만족하게 생각하고 곧 그 성화를 마친줄로 여겼으나

가룟 유다가 아직 그려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정작 가룟 유다의 형상을 그리고자 하니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간교하고 악독하고 철면피요 죄인의 괴수 사탄의 모습 간악한 얼굴을 그리기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가룟 유다의 모델역이 될 얼굴을 찾아 헤메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다 보니 벌써 도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파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뒷골목의 어둠침침한 죄악거리 골목길에 앉아서 가고 오는 사람의 얼굴을 낱낱이 주시하고 있었는데 때 마침 한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사람 이야말로 가룟 유다의 모델로 적격인물임을 알아 차렸습니다.

10년간 모델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을 모델로 선정하고 그림을 그리는 중에 보니 그가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사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10년전 어느날 교회에서 예수님의 모델로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린 생각이 나서 과거를 회상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는 10년전에 예수님의 모델이 된 평화스럽고 고귀한 얼굴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타락하여 고귀한 얼굴은 사라지고 가장 간악하고 악한 자의 대표가 될만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 거할 때는 누구나 평화스러운 얼굴을 소유하게 되나 악을 행할 때는 악한 성품이 그 얼굴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타락할 소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자는 처음 결심하고 믿는 신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에녹의 승천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바쁘시게 하는 믿음에 생활이었다

(히 11:5)에 "에녹은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으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생애는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생애였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일치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믿음으로 사죄함을 받았고 믿음으로 외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에녹은 어떤 특수한 은사와 재능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그 자신 안에 있는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영적 생활의 출발도 믿음이요 영적 생활의 최고 절정도 믿음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와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만 가능합니다.

영적 생활의 최고 표준도 영적 최저 표준도 믿음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을 죄입니다.

에녹은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내 언행, 심사, 사업, 일상생활을 통해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하는 것(눅 15:7), 온전한 믿음(히 11:56), 경외하는 것(시 147:11), 온전한 행실(잠 11:20), 정직한자의 기도(잠 15:8), 자비(마 11:7), 산 제사(롬 12:1), 순종(삼상 15:22), 헌금(빌 4:18), 거룩하고 깨끗함(살전 4:1-3), 복음 전파(살전 2:4), 인내(벧전 2:20) 등이니 성도들은 이 말씀을 잘 준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3. 시종이 여일한 믿음의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용두사미는 부당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작할 때는 굉장한 의욕을 가지고 과대선전하며 시작하지만 나중에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허다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회 때나 특별 기도회 때 은혜를 받고 새로운 결심으로 새 출발한다고 하나님과 대중 앞에서 간증까지 하지마는 얼마 안가서 그만 헤이 해져 오히려 전보다도 못한 사람이 있는데 이는 시종여일치 못한 증거입니다.

심지어 상품도 처음 나올 때는 우량품으로 제조하다가 선전이 잘된 후면 처음만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술로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 헌금을 했으면 반드시 약속을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언제나 불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꾸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 이틀 믿고 말 것이 아니고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시종일관의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번 옳다고 시인하고 기도한 일은 시종여일 끝까지 성공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조금 어려워서 그만 두고 고난이 있다 하여 그만 두고 핍박이 있다고 힘이 든다고 그만 두면 성공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여 변치 말고 꾸준히 좁은 길로 걸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며 시종여일하게 나가는 자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우리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죄를 멀리하고 성결의 생활을 한 자입니다

에녹이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이때는 홍수 심판 직전이므로 인구도 많았고 문화도 다양하게 발달된 동시에 물질 문명의 영향으로 벌써 이 시대는 사회가 부패하고 죄악으로 충만한 시대였습니다.

일부일처 윤리는 깨진 시대요 살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양심이 없는 시대로 하나님 영광을 더럽히며 오직 만사를 정욕으로 살았고 그 시대 사조라고 하는 것은 성도덕의 문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를 살면서 에녹은 속화를 물리치고 시대의 사조를 거스르며 깨끗한 절개와 견고한 신앙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도 이런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에녹이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아니함은 종교의 힘이요 신앙의 바른 생활입니다.

연꽃은 진흙 가운데서 아름답게 피는 것같이 오리는 탁수에서 헤엄치나 물들지 아니하는 것같이 우리 신자는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롬 12:2)에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독신생활을 하여야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거나 신부나 중처럼 은둔생활을 하여야 의로운 생활 경건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함은 잘못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가정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의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도 현 시대를 도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적응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에녹은 당시의 사회 생활에 슬기롭게 대처했기 때문에 만사형통의 복을 받았으며 사망의 두려움을 이겼던 것입니다.

 

5. 모든 인생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 그를 데려 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했다.

이 세상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할 것 없이 떠나고 마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떠나셨습니다.

(히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불가 학력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인간의 후예들은 늙지 않으려고 해도 늙고 죽지 않으려고 해도 죽는 것입니다.

이같은 길은 인간의 재능과 힘으로는 막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인은 한 손에 막대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지켰더니 백발이 제일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하였습니다.

(히 2:15)에 "사람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한 여왕 「엘리자벳」은 이상한 고함을 치면서 죽었습니다.

곧 나를 한치만 더 살게 해주면 몇 백만금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6. 에녹은 죽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에녹은 태어나서 죽어보지를 아니했습니다.

(요 11:26)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했습니다.

에녹은 주님이 말씀하신 신앙을 가지고 늘 생활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의 이같은 믿음은 너무나 귀한 믿음인 것입니다.

(히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했는데

 에녹은 죽지 아니하고 승천하기를 바라면서 살았기에 승천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녹과 같은 승천의 믿음이 지금도 있는 신자가 나오기를 주님은 요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이 죽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다 구원받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나사로도 살리시고(요 11:43)

나인성 과부의 독자도 살리시고 (눅 7:14)

회당장의 딸도 살리신(막 5:41)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과거사가 아니고 현재도 죽지 아니하기를 원하십니다.

(벧후 3:8-9)에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

 주님은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시는 것은 사망으로 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아 살기 위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7. 남보다 의로운 생활을 한 증거입니다

(롬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했다.

죄를 범한 자의 보상은 사망입니다.

반면 의로운 생활자의 상급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이로 보건대 에녹은 언제나 의로운 생활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고전 15:55-56)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서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다.

죄가 사해지면 사망은 쏘는 것을 상실해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죄가 처리되지 않은 곳에서는 사망이 유독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건대 에녹은 죽지를 아니했으니 죄와는 관계없이 지내면서 하

                                                                               나님만 향하는 생활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오늘 모든 성도 취할 자세이며 태도입니다.

에녹과 같이 의로운 생활을 하면서 주님에 섭리만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에녹은 죽지 아니하고 승천을 하였습니다.

이제 오늘에 사는 성도들은 예수님 재림하시면 에녹과 같이 승천하게 되며 그전에 세상을 떠나면 부활하여 승천하게 되는데 이 때에 이와 같은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대망하면서 성결의 생활을 그날까지 잘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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