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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사랑, 처음 행위를 회복하라

요한계시록 2:4~5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아시아에 있던 7교회에 대한 말씀을 주심으로 시작한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

1절에서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라고 말씀하고 있다.

   7별은 무엇인가? 1:20에서 설명을 해 놓았는데 = 7교회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7촛대는 무엇인가? 1:20에서 역시 설명을 해 놓았는데 =7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른손에 7별을 붙잡고 7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라고 하는 것은?

         오른손에 7교회의 사자들(종들, 목사들)을 붙잡고 7교회 사이를 다니신다는 것입니다.

            ⇨ 이 교회는 이렇고, 요 교회는 이렇고..........

               사자들, 종들, 너희들이 한번 보아라... 라고 현장 답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알아야 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릅니다.

옆의 사람이 우리를 잘 보고, 잘 알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잘 모릅니다. ⇨옆의 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더 잘 알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7교회의 사자들을 데리고 7교회를 일일이 답사를 하면서 잘 하고 있는 것과 잘 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첫 교회가 오늘의 에베소 교회입니다.

1.에베소 교회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네 행위와 수고, 인내를 안다고 합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칭 사도라고 하는데 사도가 아닌 거짓 사도임을 드러냈다고 말씀합니다.”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고 합니다.

분명히 에베소 교회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쓴 에베소서를 보면 에베소 교회는 「예수 안에 있는 교회」였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앞에서는 “네 행위와 수고, 인내를 한다고 했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고 했는데 뒤에서는?

    「책망할 것이 있는데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1-1에베소 교회는 점점 「처음 사랑을」 잃어 가는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는 점점 「처음 행위」를 잃어 가는 교회였다.

☞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여야만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와 성도간의 사랑이 충만해야만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교회에는 하나님이 떠나 버릴 것이다.

교회에서 성도와 성도들간의 사랑의 교재가 없다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분쟁의 교회가 될 것이다.

시편 31: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외치고 있다.

갈라디아 5:13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성도 사랑에 대해서 외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에베소 교회는 처음의 열정적인 사랑이 식어져 버리게 되었다.

사랑중에 제일 완전하고 순수한 사랑이 첫 사랑이다.

왜 첫 사랑이 순수한가? ⇨ 주고 받는 것 없이 생겨진 내면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처음 사랑은 무엇을 주고 받아서 생겨지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좋다!

    화장을 한 얼굴이든지, 지금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얼굴이든지 상관없이 얼굴만 보면 좋고,   

    공원에서 만나든지, 카페에서 만나든지, 허룸한 다방에서 만나든지, 길가에서 만나든지 아무

       데서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만나는 그것 자체가 좋다.

    만나서 무엇을 먹든지, 칼국수를 먹든지, 짜장면을 먹든지, 길거리 2000원짜리 떡 뽑기를 서서 먹든지, 값나는 중국요리를 먹든지 값이 문제가 아니라 같이 그 사람하고 먹고 있다는것 자체가 좋다.

    ○길가의 rak(리어카)제 선물이든지, 유명상표 제품이든지 선물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기뻐다.

그런데 그 사랑이 서서히 이기적인 사랑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 이런 무드 없는데서 만나자니? 이걸 선물이라고 주니? ...............

           그러면 상대는 그렇니다. ⇨ 너는 뭐 해주었냐? 지금까지 식비 내가 다 냈다......

☞ 처음의 우리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는 무조건 교회가 좋습니다. 무조건 성도들이 좋습니다. 무조건 목사님이 좋습니다.

   ⇨ 그래서 교회의 일에 열심이고, 충성입니다.

            오래된 성도들이 왜 저렇게 느슨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오래 다녔다는 성도들이 저렇게 느거적 느거적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도 오늘의 에베소 교회와 같이 처음 사랑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 이 세상의 많은 불행 중에는 처음 사랑이 식어짐으로 발생하는 것이 많습니다.

       신혼의 처음, 연애때의 처음 사랑이 식어지니까 가정에 문제가 옵니다.

            ⇨ 부부가 처음 사랑만 가지고 있다고 가정의 문제는 생기기 않습니다.

               처음 단칸방도 좋다. 너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좋다고 하다가 나중에...

                 ⇨ 이게 사는 것이가? 누구는 얼마짜리 아파트를 샀다는데..... 하는 것을 변질...

       교회와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이 식어지니까 신앙에 문제가 옵니다.

       처음 직장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니까 문제가 옵니다.......

           ⇨처음에는 월급 작아도, 잔업 좀시켜도 이 직장에 들어와서 일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다른 회사와 월급이 비교되고, 보너스가 비교되고.. 복지시설이 비교되고...... 휴가가 비교되고..... 그래서 불평이 난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처음 사랑을 버리고 있다.

구약성경 호세아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이라는 창녀를 아내로 맞게 했다.

                ⇨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창녀의 기질을 버리지 못한 고멜은 도망을 가서 또다시 창녀가 된다.

             ⇨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호세아를 가게 해서 값을 지불하고 데리고 와서 살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녀와 같은 이스라엘을 변치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성경은 말한다. ⇨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주님과 사랑이 떨어진 그 첫 지점이 어디인가를 찾아야 한다......

          그 지점이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성도는 떨어진 그 지점이 곧 세상 사랑 시작의 지점이다.

               어떤 성도는 떨어진 그 지점이 육체의 정욕의 지점의 시작 지점이다.

               어떤 성도는 떨어진 그 지점이 성도와 싸운 지점이 시작 지점이다.               

               어떤 성도는 떨어진 그 지점이 그냥 이유 없이 삐낀 그 지점이 떨어진 지점이다.

    Ex)부부간의 사랑이 떨어지면 ⇨ 옛날의 데이트 하던 장소로,

                                    옛날 신혼 여행 갔던 장소로......

                                    데이트 하면서 먹던 음식을 그 곳에 가서 먹음으로.....

         다시 회복할려고 하는 것을 본다....

야곱은 세겜에 살다가 처음의 장소 벧엘로 올라 갔습니다.

                            (모든 것을 마므레 상수리나무 밑에 뭍어 버리고..)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다른 제자들 어느 누구 보다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부활의 주님은 나타나셔서 3번을 뭍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부인한 그 베드로에게 주님은 3번을 뭍습니다. 그리고 3번의 답변을 받아 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은 여전히 베드로에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배반을 하더라도 언제 배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한참 잘 나갈 때 배반하면 좀 났습니다.

       그러나 최고로 어려울때 배반하면 정말 그 배반을 용납할 수 없고, 용서 할 수 없습니다.

           ⇨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했는데 언제 했는가? ⇨ 주님이 가장 힘들때 했다.....

그렇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도 그렇다....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

구약 예레미야에서는 하나님이

    예레미야 2:2 “나에 대한 너희 결혼때의 그 사랑은 어디두고 나를 멀리하고 오히려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느냐고 책망을 하고 있다.

     ☞너희 이스라엘이여,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과 광야의 고난의 때 나를 사랑하던 그 뜨거운 사랑은 어디로 보내고 나를 멀리하고 다른 이방신들을 사랑하게 되었냐는 말이다....

  1-2.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우리는 처음의 기도, 처음의 헌신, 처음의 섬김, 처음의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떨어진 사랑의 혈압을 다시 높이고,

         떨어진 사랑의 농도를 다시 진하게 하고,

         없어져 버린 처음의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2:3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Ex) 벨사살 임금은 달아도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달아보고,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고, 우리의 사랑을 달아보고, 우리의 기도를 달아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헌신의, 사랑의 믿음의 무게는 더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유 없이 몸무게가 줄면 그것은 병이 든 것입니다.

        ⇨ 이유없이 우리의 헌신의 무게가 줄어들면 영적인 병이 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은혜들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의 처음 헌신, 행위를 회복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처음의 사랑의 장소, 헌신의 장소, 기도의 장소를 찾읍시다.

그리고 회복하여 부흥되는 교회를 만들고, 칭찬듣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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