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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7-2:스데반 집사의 설교

                                                                                                              사도행전 7:44~60

☞ 지난 시간 스데반 집사의 설교?

   ①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하나님

   ②요셉을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예수를 거역한 너희들과 비교

   ③모세를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 예수를 거역한 너희들과 비교

  4.성전 숭배의 잘못을 지적(44-50)

    ①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난 뒤에 광야에서 하나님과 백성과의 만남의 장소 로 성막을 짓게 했다.

       그래서 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과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②이것이 솔로몬에 이르러서는 고정적 건축물인 성전으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후에 성전은 율법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을 했다.

       ※ 성전의 흐름

           성막(광야) ⇨

           회막(처음엔 실로, 다윗 시대 때 예루살렘으로 옮김

                  ;여호수아시대~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하던 때 까지 약 500여년) ⇨

           솔로몬성전(966년 성전시작)⇨ 스룹바벨성전(BC515다리오왕 6년3월3일;스6:6:15~22) ⇨ 헤롯성전 ⇨

           예수 그리스도 교회

    ③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서 벗어나서 성전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성전 자체

      를 숭배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에게는 성전이 있으니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을 주실 것이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늘 스데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66:1-2)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한다.(48)

      ??? 분명히 주님은 성전에 계신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의 장소, 은혜의 약속의 장소, 축복의 약속의 장소이다.

            그러나 그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단지 그 성전만을 의지한다고 하면 그것은 은혜의 통로가 되지를 못한다.

               Ex)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와서 기도하지만 바리새인에게는 주님의 임재, 응답, 축복, 사죄의 장소가 되지를 못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성전이기 때문에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셨다.

      ※솔로몬도 성전을 건축하면서

           역대하 6:18에서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이 전이오리이까?”라고 사실상 성전의 보잘 것 없음을 고백했다.

      ☞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이 지니는 참된 의미 즉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5.설교의 결론(51-53)

    ①5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육체적인 할례는 받았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 심령의 할례는 받지 못했다.

       즉 그들의 마음속의 더러운 것, 마땅히 잘라내어야 할 것을 잘라내지 못하고 있었다.

      ☞ 할례는 잘라 내는 것이다.

              할례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잘라내도 되고 잘라 내지 않아도 된다.

                  꼭 잘라 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 잘라 내야 할 필요가 없는 이 것을 잘라 내라 하시고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정하셨다.......

          사람들은 꼭 잘라 내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라 내지 않는다.

                     꼭 잘라 내어야 하는 것이면 말씀하지 않아도 잘라 낼 것이다.

               ??? 꼭 잘나 낼 필요가 있나? 놔 두어도 별 지장이 없는데.......

                    ⇨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의 할례를 이루지 못한다........

                          (욕심, 시기, 질투, 정욕, 과욕, 사랑, 취미, 정서, 버릇, 습관...........)

    ②“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말하는 도다.”

    ③너희는 선지자가 예언한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자가 되었다.

    ④천사의 전한 율법(예수 그리스도)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다

    ☞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들의 조상들이 수없이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처럼 여전히 불순종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 지금의 그들은 과거의 그 선조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같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한다.

             ⇨ 그렇지만 현실인 지금 그들은 복음을 받지 않는다......

Ⅱ.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54절)

    ①이들은 분명히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②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를 갈았다!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들은 오히려 이를 갈았다.

       스데반의 말대로 이들은 ⇨ “귀와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 행전2:37에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어왔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고

                  이 날에 믿는자의 수가 3,000이나 되었다고 했다.

      ☞ 요나가 회개를 외쳤던 니느웨성의 사람들을 보라(성의 없는 외침이었는데도............)

      ※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나의 마음이 찔렸을때 2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를 갈거늘”

Ⅲ.스데반의 순교

    ①명설교, 최고의 설교를 들었지만 이들은 그 설교가를 죽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를 낸다.

    ②스데반이 죽음 직전 주님이 하나님의 우편의 서신 것을 보고 말 할 때 그들은 “귀를 막았다”

        성경은 주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눅22:69,막16:19,히

        1:3,10:12, 시편110:1) 스데반이 지금 보는 주님은 서 계신다.

      주님은 지금 스데반이 영광의 자리 순교의 자리에 들어오는 것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③“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완악한 유대인들은 스데반에게 하나도 반증을 펴지 못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인 지식으로도 이를 반증하지를 못했다.

    ④그 현장에 사울이라는 율법적으로 아주 해박한 청년이 있었고,

        그는 증인의 총 책임자가 되었지만 그도 스데반을 율법적으로 반증하지를 못했다.

    ⑤“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과 같다.

    ⑥스데반 순교의 의의?

       더욱 핍박이 심해지고 사도들을 제외한 많은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고 이것이 이방선교

          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핍박자 중에 한 사람 사울이 회심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복음의 전파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 ⇨ 주님은 위대한 한 일군을 데려가시는 동시에 또 섭리 가운데 위대한 다른 한 종을 잉태시키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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