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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아래 있는 인생들

                                   
                                                                    로마서 3:9~25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은 우리 사람들에게 좀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생이 죄인」이라는 단정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떤 인생이든지 ꡔ죄인이 아닌 인생ꡕ은 없다고 선언을 하고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성도들은 이 소리에 굉장히 불쾌해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 보는 시각도 이것 때문에 곱지 않은 눈으로 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죄인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들 보고 죄인이라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죄」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죄에는? ⇨ 원죄, 허물과 죄(자범죄) - 두 종류가 있다.

우리 인생들이 「자기의 죄에」 대해서 부정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우리 인생들은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죄에 깔려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죄의 기차를 타고 음부로 달려가고 있다. 이 기차를 타고 있는 한 음부의 역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서 음부의 역에 도착 안할거야.... 아무리 해 보아야......)

  오늘 성경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1.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 하였느니라.

   이 죄에 대해서 남 보다 좀 나은 인생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끼리 볼 때 좀 선한 것 같고, 의로운 것 같고, 착한 것 같을 뿐이지 하나님이 보시면 근원적으로 우리 모든 인생들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 인생들은 자기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로 서로 죄가 없다. 나는 선하다.

           나는 착하다 저는 악하다고 단정을 하고, 정죄를 하지만......

             ⇨ 하나님이 보실 때는 모두가 다 죄인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자기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민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민족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헬라인들이라는 것은 당시로 보아서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세상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죄인 된 인생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①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으로 살아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즐거움으로, 낙으로 삼으면서 살아간다.

     먹고 마시는 것이 마셔도, 마셔도 차지 않는 무덤과 같다....(유대식 무덤은 공동묘..)

       목구멍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이다. 더럽다는 것이다.

②혀로는 속임을 베푼다고 한다.

    ⇨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온작 거짓을 말하고, 속이는 말들을 해 댑니다.

③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선한 것, 온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 저주 서러운 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 상대를 실망시키고 자기를 우쭐하게 하는 교만의 말....

       ??? 사람의 말은 독사의 독 보다도 더 독합니다.

             독사의 독은 해독을 시킬 수 있지만 말의 독을 한번 받으면 그것이 쉽사리 치유되지               를 않는 것입니다.

④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다.

    죄를 짓고, 타락을 하는 대로 빨리 달려가는 발들이다.....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헌신을 하는 데는 발이 얼마나 무겁고, 느린지 알 수가 없다......

⑤그들의 눈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눈을 가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들의 눈은 죄와 악과, 타락의 꺼리들만을 좋아 할 뿐입니다....

   ☞☞ 현대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 갑니다.

조금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이 안아 무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저희 눈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행히도....

사람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법을 잘 지키는 것이 그래도 사람 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법을 지키고, 공자의 법을 지키고, 불경의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래도 인간답게 사는 길이 아닌가 하고 그 법을 지키면서 살아 갈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을 지키면 이 사회가 나아집니다. 좋아집니다. 살아갈만해 집니다.

  그러나 법이 생긴다는 것은  그 이전에 그 법이 생겨야만 하는 이유의 「죄」들이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법」은 항상 「죄」가 들어오고 난 뒤에 따라 생기게 됩니다.

     (그 신종 죄를 못 짓게 하기 위해서 법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노력이지, 법을 100%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무슨 법이든지 100%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국회에서 만들어 놓은 법 조문도 인간 스스로가 100% 지킬 수 없습니다.

      ◇고고하게 살던 선인들이 만들어 놓은 법은 우리 같은 인간들은 더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법은 더더욱 지킬 수 없는 연약한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성경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킨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사울 청년입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난 바리새인 중에서 바리새인이라 할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 스스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난 뒤 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하던 사람이? ⇨⇨ 죄인 중의 괴수로다. 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할지라도 결국 주님 앞에 서면 죄인임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되는 법은 없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본전에 불과 합니다......

          즉; 율법은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역할 정도만 합니다.

              율법은 죄를 짓지 못하게 막는 댐 역할 정도를 하는 것에 불과 합니다.

                   율법 자체가 의를 이루거나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Ex) 이 세상에 법을 잘 지켰다고 상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벌 주는 경우는 있어도...( 법을 잘 지키면 본전입니다.....)

오늘 성경에 이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은 죄인된 인간들이 져야할 모든 죄의 값을 우리 인간들을 대신해서 해결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십자가에 죽으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대신 죽는 것이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오시기 전부터 예언으로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고, 그 대신한 대속을 믿으면 죄 사람을얻을 것이라고 미리 약속하셨는데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생들은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왜?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죄인들에게 참으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25절에서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지금도 인내를 가지고 탕자와 같은 인생들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은 이제 돌아와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생명의 은혜를 받으면서 사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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