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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의 요한복음 설교
                     성령으로 다시 사는 성도
                                                                           요한복음 3:1∼10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고 교회에 가자고 하면 이런 말을 한다.
              ⇨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런 이들의 항변에 대해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뚜렷하게 반론할 만한 무엇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보다
     비 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인가?
             이것을 성경적으로 해석을 하면?
     ⇨이것은 교회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교인?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옛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아야 되는데
        여전히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거듭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을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born again 이라는 말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다」고 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어머니로부터 육신으로 한번 태어 난 사람은 그 육신이 언젠가 한번 죽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 때에
                     또다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성령으로 한번 태어난 사람은
                                                     심판의 죽음은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 날 때에는
           ⇨ 태어나는 아기 보다는 어머니가 뼈를 깎는 아픔을 가진다.
   우리를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도
              이런 모성적인 고난과 괴로움의 아픔이 주님에게 있었다.
     ⇨ 주님의 십자가의 그 엄청난 고난과 아픔이 있으므로 해서
                     우리가 새 생명으로, 구원의 백성으로,
                              천국의 백성으로, 성령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죽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얻게 된 것이다.
            요 16: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또 우리들에게 수많은 아픔과 괴로움이 따른다...
                  ⇨ 이것을 우리는 온유, 사랑, 인내, 절제 등이라 할 수 있다.
      막 사는 사람은 막 살아도 된다.
              ⇨ 그러나 우리는 막 사는 인생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사는 자이고,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자이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자이고, 생명으로 살아야 하는 자이다.
    사도행전 19:1∼2에서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다가
                     에베소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사람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아니라 우리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진정한 「예수의 생명」을 받지 않은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그냥 교회 정도만 다니고 있는 정도였다.
     「성령을 받았느냐?」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방언을 하느냐? 신유 은사를 가졌느냐? 예언 은사를 가졌느냐가 아니다.
               「예수의 호흡을 하면서 사느냐?」 이 말입니다.
               「예수의 생각으로 사느냐?」 이 말입니다.
               「예수의 마음으로 사느냐?」 이 말입니다.
               「예수와 하나 되어 사느냐?」 이 말입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면서 사느냐?」란 말입니다.
                ⇨ 성령 받았다고 하니까? 어떤 능력,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교회를 다니면서 여전히 예수의 호흡을 하지 않고,
             예수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의 마음으로 살지 않고, 예수와 내가
                    하나의 모습으로 있지 않는다면 성령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하듯이 성령님은
                주님과 하나님을 하나, 주님과 제자들을 하나, 성도와 성도가 하나.
       그래서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들 속에 성령이 거하시게 되면 우리들은 성령의 생각,
                      즉; 주의 뜻대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속에 성령이 거주하게 해야 합니다.
             즉 주님이 거주하게 해야 합니다.
       Ex) 마8장, 막5장, 눅8장에 보면 거라사의 광인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군대 귀신이 들려서 수많은 귀신들에 의해 좌우지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었는데....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아 있더라”(눅8:35)고 했다.
          그 사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한 새 사람이 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주관하던 그를 이제는 성령이 온전히 주관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듭난다?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는?
      ⇨유대의 관원, 산헤드린 의원, 부자, 이스라엘 선생, 덕망 높은 자였다.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은 세상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도 거듭남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바로 이 사람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다.
           ⇨ 니고데모의 육신적인 모습이 아무리 좋고, 휼륭해도
                    그 육신적인 좋은 조건들이
           니고데모 자신을 구원시킬 조건이 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육의 소산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 설교 서두에서 말씀드린 어떤 사람이 교회에 안 다녀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착하게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그렇게 산다고 한들
           그들의 그 착함은 여전히 육신의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 영의 것이 되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Ex) 해적선에 마음씨 착한 의사가 있습니다.
                       해적들을 치료해 주고, 해적들을 도와 줍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해적입니다.
                   (그들 세계에서는 의로운 사람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는 내 육신의 것을 가지고 이것이
               ⇨ 신앙의 것이고, 영의 것이다고 착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조금 착한일 한 것 그것 갖고 ⇨ 나도 선하다....
                     조금 세상적으로 부유한 그것 갖고
                                   ⇨ 내세의 부함까지 연결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듭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한 부분을 교체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을 완전히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이고,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지, 정, 의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나 이기는 나 인데 내가 아닌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장구벌레가 잠자리가 되었지만
                        완전히 다른 것처럼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 성도들은
                        지금까지 육체적으로 기울어졌던 모든 것에서
             생각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고, 계획이 다르고,
             호흡이 다른 모습으로 사는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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