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
고린도후서 5:7~10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시간: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선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 「믿음으로 행하는 것」
○예배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만 주를 화나게, 분노케 할 수도 있다.
(예배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일 때....)
/ 아벨도, 가인도 예배를 드리지만..... 믿음이냐? 믿음이 아니냐?
/ 이사야 1장 시대의 사람들 예배를 드리지만
「너희의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나니 ~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사울의 번제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웃시야 임금의 분향.....
○헌금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만 주를 화나게, 분노케 할 수 있다.
(헌금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믿음으로 드릴 때-구원감격, 은혜 감격)
/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 - 구원의 감격이 없는? - 거짓의 헌금,
(이들 앞에 바나바가 구브로에 있는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
/ 신 23:18 「창기가 번 돈,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 바리새인들의 십일조, 얼마나 세밀한지? ⇨ 품목 하나하나 구별해서...
(얼마나 기특하고, 얼마나 세밀하고, 얼마나 정확한지... )
박하에 대한 십일조, 운향에 대한, 모든 채소에 대한 십일조를 드리지만..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눅 11:42) 소리를 듣는다....
○기도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만 주를 화나게 분노케 할 수도 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 - 들어 주실 자는 오직 주님 뿐 이라는 간절함)
/ 성전에 들어와서 기도하는 어느 바리새인의 기도 Vs 세리기도...
○헌신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 것은 맞지만? - 분노케, 화나게...
/ 한 바리새인 율법사는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손 씻을 물,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먹을 음식은 마련해 놓았는데........
(결례를 위한, 물, 가장 기본적인 배려 / )
Vs 그 때 한 여인 (그 초청한 사람이 죄인이라고 여기는 여자)이
들어와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눈물로 발을 씻는다...
그리고 머리털로 딲는다....
원 초정한 사람은 책망을 받지만 이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 향유로 씻었다..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않았지만 - 내 발에 입맞춤을 했다.
결국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은? 육신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육신에 치우치지 않는 이것을?
⇨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이라고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몸으로 있으면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이미 우리 몸은 아담 때부터 사탄의 속성에 빠져 버렸다.
/ 우리의 몸은 죄악의 속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 육신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만 발전....
지금의 사회 이슈의 문제들을 보면?
더욱 육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기쁘게 하고자 하는,
얻고자 하는, 뽐내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근본적 이유를 4:16에서 말씀을 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도다」
낡아지고 후패 해 가는 이것에 집중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 이다.
Vs 그런데 또 그렇다고 이 겉 사람을 마냥 방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이 딜레마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육신의 기쁨, 즐거움, 유익, 뽐냄만을
추구하는 것은 죄와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천하의 믿음의 사람이라도 이것을 벗어 날 수 없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잠깐의 시선, 즐거움을 얻다가 타락한다....
-엘리사의 제자 게하시도 이 육신의 유익, 이익을 얻다가 타락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만 있는 자들이 요단을 건너 들어갔다.
다 자격있는 자들만 들어갔는데 첫 여리고 전투에서 아간은?
언제 입어 볼 것이라고 외투 한 벌에 눈이 돌아가고,
은 200세겔, 50세겔 금덩이에 눈이 돌아가고 만다...
- 히스기야 때 충실한 신하가 있다. 왕궁 국고를 맡은자 「셉나」다.
셉나는 앗수르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항복을 협박할 때
/ 랍사게에게 이스라엘 말로 하지 말고 아람말로 하라고 한자.
/ 이사야, 히스기야와 함께 굵을 베들 두르고 함께 기도한 자!
/ 이렇게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충성스러운 신하로 보였는데, 신하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사22: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국고 맡은 자가 백척간두의 시간에 나라 돈으로 자기 묘지나 마련....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참 의인인 것 같았는데, 참 믿음의 사람인 것, 참 애국자인 것 같았는데...
참시 육신의 것에 취하다 보면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타락의 길에 들어선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것의 가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족」
「그리스도 안에서의 즐거움」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부」를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것을 다 합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여유로움」이다!!!!!!!
(가진 자의 여유로움! 아는 자의 여유로움!, 있는 자의 여유로움!)
믿는 자의 여유로움!................을 가진 성도!!!!!
- 사도행전의 사도들......, 유라굴로 대풍 속에서의 바울.....
이 여유로움이 촐랑거리지 않고, 당항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광야의 백성들?
광야에서의 풍부에 처할 줄을 알아야 했다.
(만나를 먹는 기쁨, 반석의 생수, 메추라기, 불기둥.. )
광야의 배고픔에 처할 줄 알아야 했다.
(물 없음, 고기 먹고 싶음, 둘러가는 힘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교회에 있어도, 세상에 있어도, 광야에 있어도, 집안에 있어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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