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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석 목사 설교

믿음에 서 있는가?

고린도후서 13:5∼10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성도」입니다.

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때에 우리의 지금의 실체 그 모습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앞에 서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의 실체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변형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우리 사람들은 모두가 원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우리는 원래?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생기를 주입 받아 하나님의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탄의 꼬임과 속임으로 인하여 우리 인생들은 죄를 짓게 되고 타락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다.

그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려 오신 분이 주님이시다.

그 잃어버린 형상을 원래대로 복원을 해야 되는데 그 복원을 할려고 하니 원래의 형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 원래의 형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원래의 형상이 아니고서는 우리 인생들을 원래의 형상대로 회복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찌그러진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표준으로 삼아서 회복을 할려고 하면 결국은 그 찌그러진 자체로서 회복 아닌 회복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Ex) 톱으로 나무 조각을 자릅니다....

원래 기본이 되는 나무 조각이 있다. 그것을 대어서 다음 나무를 자른다.

똑 같이 자르는데 원래 기본이 되는 그 나무토막을 가지고 대어서 잘라야 자른 나무토막 이 똑 같게 된다.

그렇지 않고 원 기본 나무토막을 대어서 잘라낸 나무토막을 대어서 나무를 자르고 또 잘 라진 나무토막을 대어서 나무를 자르면 나중에 보면 점 점 갈수록 나무의 길이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이 찌그러진 인생들에 기준을 맞추어서 안 됩니다.

우리가 볼 때는 성인이고, 군자이지만 그들도 똑 같은 죄인인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없이 그들의 죄를 해결해 볼려고, 좀 선하게 살고, 좀 착하게 살고, 도를 딱 고 한 것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볼 때 선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려 주심으로 우리의 죄가 씻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피를? 「보혈」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씻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믿음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신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 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가 「믿음에 서 있는가」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계속 계속 「믿음으로 확증」해 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없는가를 어떻게 시험합니까?

⇨ 믿씁니다! 하고 물위를 걸어 보는 것으로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는 것입니까?

믿씁니다! 하고 엘리사와 같이 옷을 벗어서 물을 쳐 보아서 물이 갈라지는가? 안 갈라지는 가를 보고 아! 내가 믿음에 있구나! 없구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아니다! 시험해 보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리스도가 좋아지는가? vs 세상이 좋아지는가?

○예배 시간이 좋은가? vs 예배 시간이 싫은가?(지겨운가?)

○교회가 좋아지고 오래 있고 싶은가? vs 교회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가?

○말씀이 좋아지는가? vs 말씀이 싫고 멀어지는가?

(말씀에 아멘이 생기고, 눈물이 나고, 되새김이 되는가? vs 의심이 생기고, 이런게 어디있노??)

○기도시간이 늘어 나는가? vs 기도 시간이 줄어 드는가?

○주님께 대한 감사가 늘어나고 기뻐지는가? vs 불평이 많아지는가?(교회에, 목사에, 성도에)

☞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이 어디로 향해 있는가를 보면?

⇨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Ex) 나침반은 어디에 갖다 놓아도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킵니다.

⇨⇨⇨ 성도는 어디에 있어도 앞은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등은 세상을 향해야 합니다.

(등이 주님을 향하게 하고, 앞이 세상을 향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늘 믿음에 서 있기 위해서

「자기를 쳐서 복종한다」(고전9:27)고 합니다.

○자기의 무엇을 치는 것입니까?

⇨ 자기의 생각을 치고, 자기의 욕심을 치고, 자기의 육신을 치는 것입니다.

○어디에 복종을 한다는 것입니까? ⇨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내 계획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믿음에 서 있음을 확증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에 있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다시 말하면 증거로 내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①첫째는 주님께 자신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우리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방법의 처음은 무엇보다도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우리는 이 고백을 계속 주님께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으로 자신의 믿음으로 주님께 확증해 보였습니다.

두 번째는 순종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함으로서 믿음이 있음을 주님께 확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무슨 말씀이든지 듣는 것입니다.

갈릴리 가나의 잔치 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2:5)

그래서 그 하인들은 순종함으로서 그들의 믿음을 확증해 보여 주었다.

⇨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순종으로 주님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삭은 제물로 바쳐짐에도 순종함으로서 그 역시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었다.

②교회에 자신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이기를 힘쓰므로, 기도하기를 힘쓰므로, 떡 떼기를 힘쓰므로,

공궤하기를 힘쓰므로 자기들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주일에 내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것이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믿음이 있다고 확증해 보이겠나?)

○이 주일에 내가 교회에서 헌신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것이다.

○말씀하신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해 감으로 내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③세상에 내가 믿음에 있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저 사람은 믿음에 있는 사람이야를 모든 사회 생활 속에서 보여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행 2:47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더라”

행 5:13 “∼∼ 백성이 칭송하더라”

④나 자신에게 나의 믿음을 확증해 보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에 무엇으로 믿음에 확증해 있는가를 보이게 됩니까?

마태복음 7:20에서는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였다.

야고보서 2:18에서는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 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다.

☞ 나 자신이 나 스스로에게 믿음을 확증해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의 경건의 문제이고, 개인의 여성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1대1의 문제입니다.

로마서 8:9에서 말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에 가면 놀랄 일이 3개가 있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오게 되었을까?

왜 그 사람은 천국에 오지 못하였을까?

나 같은 것이 천국에 와 있다는 것에 놀란답니다.

내가 믿음에 바로 서 있습니까?

내가 반석에 바로 서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 위에 바로 서 있습니까?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모래 위에 서 있으면서, 세우면서 반석 위에 세운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확실하게 믿음에 온전히 서 있는 귀중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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