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석 목사의 신약설교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성도
빌립보서 3:7∼16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08년이 올해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의 믿음의 지체인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가정들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영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육적인 하나님의 축복도 넘쳐서 영육 간에 아울러 복을 받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올해에 우리 교회의 표어와 관계된 성경 구절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성도입니다.
그에 따른 실천 사항은?
나의 믿음을 새롭게 발견합시다.
나의 헌신됨을 새롭게 발견합시다.
나의 사명을 새롭게 발견합시다.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서 발견 되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발견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 우리가 예수님안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모습을 보면 크게 두 번 이상 예수 안에서 발견되어집니다.
1.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예수 안에서 발견되는 지는 것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이전 까지만 하여도 그는 그 자신이 거룩한 줄 알았고, 옳은 줄 알았고, 하나님의 일 을 하는 줄 알았고, 천국의 백성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질 때에 그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죄인인가 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안에서 그 자신을 발견합니다.
⇨ 예수 안에서 발견되어진 그도 역시 그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내로 들어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치는 자가 되었다.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 안에서 그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다가 예수 안에서 그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과 같이 우리도 첫 번째 예수 안에서 우리 자신이 발견되어져야 합니다.
☞ 사실상 우리들은 이미 이들과 같이 첫 번째로 예수 안에서 발견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발견되어졌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는 자임을 보면 - 이미 우리는 예수 안에서 발견되어진 자들이다.
☞☞ 우리가 예수 안에서만 우리의 모습을 온전히 발견할 수 있다.
⇨ 사람이 사람들 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발견 할 수 없다.
왜 그런가? ○비교 대상이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비교 대상이 비슷한 것들을 놓고서는 절대로 자기를 온전히 발견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재 발견할려고 하면 주님 앞에 나오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 농촌에 살면서 농촌 사람들만 보고 살면 내 얼굴이 얼마나 검은지 알 수 없다.
깡패들이 깡패들과 맨 날 어울려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악한 자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도 그렇습니다.
맨날 풍성한 곳에만 있다가 보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풍성하게 살고 있
는지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맨날 꽃 밭에만 있다 보니 자기 얼마나 향기 나는 꽃밭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 똥 냄새 나는 곳에 가 보아야 자기가 얼마나 향기 나는 곳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조금 선하고, 조금 착하고, 조금 잘 나고, 조금 못나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비교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우리가 죄인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발견이 있어야만?
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가가 인식이 되어 지고,
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가 알게 되어 지고,
왜 우리가 교회를 다니니 아니하면 안 되는가를 알게 되고,
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 될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1.세상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하던 모든 것을 이제는 해가 된다고 여겨야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7절)
사도 바울은 나름대로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가말리엘 학력이 그렇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을 지켜 가는 것이 그렇고,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이 그렇고.....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 되어질려고 하니 그 모든 것이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설물과 같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은 쉬워도 쉽지 않는 것입니다.
무익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유익」하던 것을 ⇨ 이제는 「해가 된다고 여기」는 것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유익」하던 것을 ⇨ 이제는 「해가 된다고 버리게」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속에 있을려고 하면 그 것들은 여전히 유익이 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통하여서 발견되어지고 주님과 함께 살려고 하면 그것이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고 해가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술 잘 마시는 것이 사교에 유익한 것이었다고 하면?
⇨ 이제는 그것을 해로 여기고 버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거짓과 속임이 장사의 유익한 도구였다고 하면?
⇨ 이제는 그것을 해로 여기고 진실과 투명함으로 해야 합니다.
모세는 그가 출세하는데 왕궁에서 자란 것이 그에게는 엄청난 유익이다.
⇨ 그러나 모세는 그것이 해가 된다고 버렸다.
⇨ 버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권세가 그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베드로는 자기의 고기 잡는 실력이 어부 때에는 유익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후에 베드로는 그 고상한 어부의 실력을 가지고 다시 고기를 잡으로 갔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 고기가 없은 것이 아닙니다. 고기는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 고기 잡는 실력을 버리지 못해서 다시 어부의 생활로 돌아갈려고 한 것입니다.
그 고기 잡는 실력을 완전히 버렸다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 주님 없어도 여전히 나에게는 옛날의 고기 잡는 시력이 있어....
주님 없어도 여전히 나에게는 노 젓는 실력이 있어.......
☞ 주님은 베드로를 고기 잡는 실력, 그 유익하던 것으로 살게 하지 않습니다.....
Ex) 조세형은 그 손 솜씨를 버리지 못해서 다시 그 길로 들어갔다(도둑의 길로)
조양은도 그 깡패 솜씨를 버리지 못해서 다시 그 길로 들어갔다.
2.해로 여길 수 있는 동력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고상한 것을 위하여 세상적인 것들은 다 해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왜 가장 고상합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생명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영생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있다.
진주 장사의 비유다.
⇨ 많은 진주를 가지고 있다가 진짜 큰 진주를 보고 모든 진주을 팔아 버렸다.
보물이 묻힌 밭의 비유가 있다.
⇨ 남의 밭에서 일을 하다가 그 밭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자기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바로 그 큰 진주와 같은 것이다. 밭의 보물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 속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예수님에게 모든 은혜가 다 있습니다.
영적인 천국, 영생, 구원의 은혜뿐만이 아니라
육적인 물질, 건강, 평안, 진로, 권세, 출세가 그 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을 얻고, 요셉은 권세를 얻고, 이삭은 평안을 얻고, 환자들은 건강을 얻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기쁨을 얻고, 나사로는 생명을 얻고, 삭개오는 친구를 얻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이 한 해에 이런 것들을 주님을 통하여서 얻어가기를 축원합니다.
3.그렇게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고 버리고 나면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자기 잘난 것으로 살다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지니까 하는 고백이 무엇입니까?
「죄인 중에 괴수로다」 는 것입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는 것입니다.
「내가 폭행자요 악행자였다」는 것입니다.
⇨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의로운 것이었는데 ⇨ 주님 앞에 서니 폭행이고 악행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참이었는데 ⇨ 주님 앞에 서니 그것이 죄인의 괴수 노릇이었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에는 풍성하고 잘난 사람이었는데 ⇨ 주님 앞에 서니 곤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한다.
그는 진작 알았어야 하는 주님의 「부활의 권능」은 몰랐다.
그는 진각 알았어야 하는 주님의 「고난의 능력」을 몰랐다.
⇨ 이제 그것을 알기 위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본 받는다고 한다...
주님의 살으심을 본 받는 것이 아니라 「죽으심을 본 받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지는 자는 「죽으심을 본 받는 자다」
가정에서도 죽어지고, 교회에서도 죽어지고.....⇨ 죽어지면 살게 되는 것이다....
내 하나 죽어지면 다 살게 되고 결국 나도 살게 될 것인데....
⇨ 내 하나 살자고 살아 볼려고 큰 소리 치다 보니 결국은 나도 죽고 다 죽게 된다...
Ex) 게는 잡으면 집게 다리를 묶어 놓는다....
묶어 놓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집게로 찝어서 다리가 떨어지고 해서 상품성이 없어진다.
⇨ 자기 살자고 하니 모두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그가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 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이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 5: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 해에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영적, 육적 모습을 새롭게 발견해 봅시다.
얼마나 내가 믿음 안에 있는지? 얼마나 내가 헌신 된 삶을 살고 있는지? 얼마나 나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있는지....
주님이라고 하는 거울에 서서 우리의 믿음의 옷 매무세를 다시 추슬러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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