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728x90
이병석 목사 설교 썩지 않을 면류관 고린도전서 9:23~27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섰습니다. 한 해를 숨가프게 달려왔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언제나 마지막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려서 생각해 보면 그 마지막이라는 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 언제나 시작의 지점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은 곧 새롭게 내년의 시작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은 곧 중학교 생활의 시작임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의 마지막은 곧 사회 생활의 시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사는 곳에는 사실상 「마지막」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도 마지막인 것 같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곧 새로운 영의 세계의 시작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자기의 복음증거의 사역의 마음 다짐과 각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어떤 자세로서 복음 증거하고 있는가를 성경의 다른 부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함축하여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그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에 참예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23절) 이 말을 돌려서 생각을 해 보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하는데 복음에 참예하지 못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행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하여 놓고선 진작 자기는 복음에 참예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불행인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2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복음의 일을 해 놓고 그 복음의 결실인 복음, 즉 구원에 참예하지 못하는 불행인 것입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일을 한 사람입니다. 궁극적인 그의 영의 구원을 하나님의 일이지만? 현실에서의 모습을 보면 그는 이스라엘은 구하고 진작 자기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복음에 참예한 사람입니다. 3년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회계의 일을 보면서 수고를 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복음, 즉 구원에 참예하지 못한 불행의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초대교회의 헌신에 참예한 사람입니다. 그의 밭을 팔아서 헌신하는 헌신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초대교회 그 헌신의 성도들 대열에 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명예스런 헌신자의 명단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과 함께 동역한 복음전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 버려서 복음에 참예하지 못한 자가 되었다. ☞ 데마 같은 사람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의 구체적인 복음의 행적을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 때나 데살로니가를 지나갈 때 같이 따라 다닌 적이 있다면??? 그때는 데살로니가의 사람들을 보고 바울과 같이 예수를 믿으라고b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복음의 사람이 아닌, 전도자의 사람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데살로니가에 나타났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그를 보면 어떻겠는가?????? 우리가 복음의 일을 하는 것은? ⇨ “복음에 참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우리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일에 참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직분의 일을 하는 것은 결국? ⇨ 복음에 참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오늘 은퇴 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주일에 서 있는 우리들! 복음에 참예하는 길로 달려 왔습니다. 교회에 참예하는 길로 달려 왔습니다. 계속 복음에 참예되는 자가 되고, 교회에 참예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우리는 상을 얻도록 달려 왔고, 또 달려 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그 상을 “썩지 아니 할 면류관”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 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우리가 얻을 상은 썩지 아니할 상입니다. ⇨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상을 얻을 것입니다. Ex) 유치부 때 피아노 경연대회에 가서 받은 상은 그 때에는 상으로서의 가치가 있지만 조금 있으면 그 상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 받은 상은 중학교 정도 때까지만 자랑거리가 되지 그 이상은 자랑거리가 되 지 않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사장한태서 받은 상은 그 회사에 있을 때 상이지 그 회사를 나오고 나면 그 상의 가치는 없어져 버립니다. ⇨ 우리가 받는 세상의 모든 상들이 대부분 이와 같습니다..... ⇨ 그래서 세상의 상들은 「썩을 면류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 증거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받는 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상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 썩지 않을 상으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썩지 않을 상을 받을 경기를 하는 자들은 「절제를 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 참는 것을 절제라고 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을 절제라고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 고통을 참으시는 것이 절제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베는 것이 절제입니다. 다윗이 사울이 죽고 난 뒤에 곧 바로 이스라엘 전체의 임금이 되지 않고 헤브론에서 7년 반을 기다 리는 것이 절제입니다. 복음의 일을 하는 사람은 절제 합니다. 내 시간을 가지고 싶지만 내 시간을 만들지 않고 주님의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차리고 싶지만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여유를 가지고 싶지만 그 여유를 주님을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내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지만 좀 절제하고 주님의 성전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3.믿음의 사람은 향방 있는 전진을 합니다. 자동차는 운전대를 바고 잡고 있어야 향방이 잡힙니다. ⇨ 운전대를 놓치면 자동차는 자기 맘대로가 아니라 어디로 움직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Ex) 농촌에서 경운기로 일을 하다가 잘 못되면 경운기가 온 논을 돕니다.... 전혀 향방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을 사람은 향방이 있습니다. 그 향방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 무엇을 해도 그 사람 앞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그 앞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회사를 다녀도 그 앞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힘들고 고난 받고, 사글세 방 신세를 하고 있어도 그 앞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출세를 해도 그 앞에는 여전히 십자가가 있습니다. ⇨ 그 십자가가 그 사람의 향방을 지정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그래서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 허공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쓸데 없는데 휘두른다는 것입니다. 쓸데 없는 곳에 휘둘러서 에너지를 소진 하지 않는다. ???? 우리는 어리석어서 지나 온 시간들에 허공을 치는 시간들이 있었고, 허공을 치는 물질들이 있었고, 허공을 치는 봉사, 일들이 있었고, 허공을 치는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마태복음 7장에서)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르노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허공을 치는 삶을 살은 사람들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 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2) 이들은 그들의 말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었다. 「선지자 노릇」도 하는 자였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허공을 치는 주여 주여 였고, 허공을 치는 선지자 노릇이었고, 허공을 치는 권능들이었다. 우리 성도는 헛힘을 쓰는 허공을 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올해는 있었다 할지라도 ⇨ 내년에는 허공을 치는 한 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허공을 치는 자에게는 「썩지 않을 면류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썩을 것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고 믿음으로 몸부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기도하고,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찬송하고,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썩지 않을 것을 얻을 때 우리는 동시에 세상의 것도 얻게 될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썩을 것이라도 얻는 것 같았으나 그것도 잃고 영원한 것도 잃어 버렸습니다. 아간도 썩을 것이라도 얻은 것 같았으나 그것도 잃고 영원한 것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엘리야와 같이, 오늘의 바울과 같이 썩지 않을 것을 얻음으로 세상의 것 까지도 동시에 얻어 누리는 귀중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반응형
'신약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에 서 있는가? (0) | 2025.01.18 |
---|---|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성도 (0) | 2025.01.18 |
성수주일과 예배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 (0) | 2025.01.18 |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보존합시다. (0) | 2025.01.17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0) | 2025.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