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 오전 설교문(실천사항에 관한)
교회의 기쁨과 아픔과 자리에 언제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로마서 12:15~16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내가 여기있나이다」가 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2026년 표어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실천사항 1.예배와 기도의 시간 마다에 언제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교회의 기쁨과 아픔의 순간과 장소에 언제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헌신과 선교의 순간과 장소에 언제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 두 번째 실천사항
「교회의 기쁨과 아픔의 순간과 장소에 언제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을 이루어 가는 성도, 교회!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말 할 때? - 「교회 공동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 이 말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다.(틀린 말이다.)
교회를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사회학적 측면에서 볼 때의 말이다.
- 이 성도, 저 성도, 이 사람 저 사람이 모여
하나의 단체(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이 말을 할 것이다.
/ 학교도 한 공동체이고/ 학교 안의 동아리도 / 국가도 한 공동체이다.
(한 마을도 공동체이고, 지자체도 공동체이다.)
⇨ 한 덩어리가 구성체를 이루고 있으면 그것이 공동체이다.
(재래시장은 공동체가 아니다. Vs 요즘 시장은 상인회가 있어 공동체....)
(재래시장은 각종 장사들이 왔다가 저녁이 되면 각자 해산....)
☞ 그렇다면 교회도 이런 것들과 같이 공동체인가?
교회를 공동체로 보는 순간 사실 교회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
공동체? - 어느 시간이 지나면 해산 되어진다.
나의 이상과, 유익에 맞지 않을 때 그 공동체에서
마음대로 빠질 수 있고, 가입이 가능하다.
?? 어! 교회도 그런데.... 마찬가지인데...? ⇨ 과연 교회도 그런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고 하면 상당히 위험스런 교회고 성도들이다.
(난 여기서 성도들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성경이 교회를 공동체라고 하는가?
성경은 교회를 공동체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고 한다.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골 3:15)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12)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5)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7)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
어떤 목사가, 세상 사람이 말하는 교회는 「교회 공동체」는 아니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고 모여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몸과 공동체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몸이다는 것? - 분리 될 수 없다. 각자가 없다(하나다). 한 생명이다. 유기적 연결이다.
유기적 연결, 한 생명이기 때문에 지체는 서로 지체를 위한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5)
공동체도 공동체를 위해서 힘쓰지만, 노력하지만 - 한계가 있는 힘씀(노력)
Vs 그러나 몸의 지체는 한계 있는 힘씀, 한계 있는 노력 그 이상을 넘어선다.
다른 지체가 아플 때 / 다른 지체가 기능을 잃었을 때/......
다른 지체 모두가 동원되어 그 아픔과 상실을 만회 할려고 한다.
그 만회로 그 지체의 몸이 존재하고, 유지되어진다....
이것을 오늘 말씀의 실천사항으로 가져 오면
「교회의 기쁨과 아픔의 순간과 장소에 언제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가 되는 것.
지체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기쁨에 함께 하여지고 동조 되어진다.
지체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아픔에 함께 하여지고 참여 되어진다.
기쁨에, 아픔에 자동적으로 함께 하여지지 않고
동조, 참여 되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지체가 아니다.
지체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반응이 일어난다.....
(오른 손이 아프면 - 왼 팔 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반응한다.)
(눈이 아프면? 귀, 발, 걸음, 손, 모든 신경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오늘 말씀에서 말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공동체는? - 축의금 주고 끝내고, 조의금 주고 끝내겠지만.....
한 몸을 이루는 지체는 ⇨ 축의금 주고, 끝내고, 조의금 주고 끝나지 않는다.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운다.... ⇨ 별개가 아니고 한 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안타까움의 비유가 있다.(눅 7:32, 마 11:17)
장터에 앉은 아이들?
- 피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아니한다.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짜고 치는 놀이다.....
나는 아빠하면 너는 엄마다. 이 조약돌은 그릇... 이것은 반찬.....
그래서 놀이를 하면 그 역할을 그대로 해 내고 그것이 놀이가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에서 절규한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찌어다」(애1:12)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가 가지는
고통과 아픔, 안타까움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인데....
(모두가 나 몰라라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예레미야에게만 관계가 있는 것인가?
멸망과 성전 훼파의 안타까움이 예레미야만의 아픔이 되어야 하는가?
왕/ 모든 백성/ 모든 레위인들/ 모든 제사장들/ 모든 선지자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듯이 나 몰라라 하고 있다.
⇨ 성전과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이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백성들...
(오히려 어려운 때 예레미야에게 와서 밭을 사라고 하면서
등쳐먹으려고 하는 사촌 「하나멜」; 3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의 친구들은 욥의 풍성함과 즐거움에는 함께 하는 자들이었지만
욥의 어려움과 눈물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욥이 두 배로 축복을 받았을 때?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욥 42:11)
아브라함은 롯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창 14장, 18장)
자기의 좋은 곳을 찾아서 아브라함을 등지고 갔지만 그래도 조카이기에, 혈족이기에....
- 시날왕 등의 침범(4개 왕)으로 포로로 잡혀 갔을 때
개인 군사 318명을 거느리고 다멕섹 부근 호바까지 가서 구해 오는......
- 소돔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50-45-40-30-20-10명..)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골리얏의 협박에 이스라엘 중에서는 그 누구도 나 서지 못한다.
사울 임금도 / 그 용감한 사울 임금의 아들 요나단도/ 사울의 군장 아브넬도...
모든 사람이 골리얏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누구도 나서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무너진다.
사울 임금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무너지고 블레셋의 종이 되어진다.
이 때 짱하고 나타나는 사람이 어린 다윗이다....
다윗은 군인도 아니고, 방백도 아니고, 나이도 아니다.....
그는 나서야 할 의무도 없고, 나서야 이유도 없다.
- 나서지 않아도 아무도 그를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나선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체,
이스라엘의 몸을 이루는 한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
그리스도의 잡힘의 현장에도, 재판의 현장에도, 십자가 고난의 현장에도.
그리고 부활의 현장에도 함께 있는 제자들.... Vs 사도행전에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 한 공동체가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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