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사마리아와 사마리아
누가복음 9:51~56
오늘 「내가 여기 있나이다」가 되어 예배드리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의 「사마리아와 사마리아」는 비교의 개념으로 제목을 잡았다.
같은 사마리아인데 같은 사마리아와 비교를 한다....
나는 오늘 이 본문의 사마리아 Vs 요한복음 4장에 있는 사마리아와
비교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한다.
-본문의 사마리아는 주님을 배척하여 받아들이지 아니하므로
구원과 멀어지고 주님이 다른 마을로 가시는 장면...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사마리아...
먼저 구원 받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사마리아 중에서 수가성)
시기: 예수님 공생애 첫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갈릴리고 가는 중
과정: 첫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 성전 청결
- 니고데모의 방문 - 거듭남 - 요 3:16의 말씀을 하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시는 길.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계획? -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개인적인 이유도 아니고, 시간적인 이유, 거리적인 이유도 아니다.
/ 사마리아도 구원 시켜야겠다는 이유이다....
/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과, 사람과 상종도 하지 않았다.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 인과 相從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9)
그러나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로 일부러 가셨고
「수가」성 우물에서 여자와의 대화, 그리고 여자의 부끄러움 없는 외침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요 4:39)
그의 허물(5 남편, 현 남편)있는 것을 내게 말한 사람!!!!!!!!!
(요즘 교회 설교는 너의 5 남편, 너의 현 남편 이야기 하면 목사 쫓겨난다...
아니면 교회 옮겨 버린다. 5 남편, 현 남편 모르는 교회로..)
이 외침에 동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 여자를 저렇게 변화시키신 분이 누구인가?
-저 여자의 치부를 드러내고 새 사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결국 동내 사람들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틀 동안 주님과 함께 한다...
-유대인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동내에 주님이 상종하신다.
-유대인들은 상종도 하지 않고 둘러 가는 동내를 주님은
이들을 더 머무시면서 말씀을 주시고 그들은 주님을 영접한다.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이렇게 이 「수가」성을 중심으로 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들?
시기: 주님이 마지막으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때다...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Vs 수가성의 사건은 공생애 첫 유월절....
이 유월절에 예수님은 친히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서 올라가신다.
이제 다시 육신을 입으신 주님은 이곳으로 오시지 않을 것이다.
- 이것을 오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져오면 다시는 주님을 만날
기회가 없다. 은혜 입을 기회, 사랑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
?? 이 마지막길의 여리고? 소경 2 사람이 치유를 받는다.(눅18장)
이들의 외침?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그리고 같은 여리고에서 삭개오가 주님을 영접한다.(눅19장)
주님의 굳게 결심(=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고 굳게 결심하시고)
-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굳은 결심.
-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동내,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굳은 결심이 포함!!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부! -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53절)
-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들어가시지만 그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음의 사마리아 때는?
- 아직 공식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많이 나지 않은 상태...
- 공식적 주님 활동에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기적만...
그러나 지금의 사마리아는?
-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소문이 있고 역사들이 있은 상태......
/ 이것을 지금 여기의 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를리 없다....
Vs 그런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르는 상태이면 모르겠는데....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알고 있으면서...)
그래서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난다....
특히 「우레의 아들」(막3:17)이란 별명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불같은 성질로는 더 용납할 수가 없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의 이 소리를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신다.
누가복음 9장의 사마리아는 안타깝게도
주님을 통한 마지막 은혜의 기회, 생명의 기회를 놓쳤다....
사마리아와 사마리아!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는 주님을 영접하였고, 주님을 이틀 동안이나 머물게 하였다.
누가복음 9장의 사마리아는? 지나가시는 주님 마져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마을로 가시게 만들어 버리는 죄악을 범한다...
영접하는 사마리아 Vs 영접하지 않는 사라마리아
나는 이 말을 가지고 우리게 그대로 해 본다.
다윗과 다윗? ⇨ 믿음의 다윗 안에 또 다른 다윗이 들어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지만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골리얏에게 달려드는 그 엄청난 용기의 다윗?
그런데 그런 다윗에게 또 다른 다윗이 있다.
그 욕망 하나 제어하지 못하는 다윗.....
자기의 범죄를 은폐할려고 시도하는 다윗......
그것이 되지 않으니 충신 우리야를 죽이는 다윗!!!!!!
아브라함과 아브라함?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까지 내려오는 아브라함.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순종하고 자기 아들마져도 마치는 아브라함.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 사명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하는 용기
그 아브라함에게 또 다른 나약하고 비겁한 아브라함이 있다.
자기 살겠다고 아내 사래를 여동생이라고 하고
비굴하게 바울에게 아무 소리 못하고 넘겨주는......
노아와 노아가 있다.?
말씀을 따라 방주를 만드는 믿음의 사람
Vs 홍수 후 술 취함, 그리고 그 후 함(가나안)의 저주.....
(자기의 술 취함의 실수에 대한 자각, 자책, 회개는 없다..)
오직 함에 대한 분노만 있을 뿐이다...
그 분노의 저주와 셈과 야벳에게 한 축복이 오늘에까지 이른다?
이병석 목사와 이병석 목사가 있다.
어떻게든 부르심에 감사하며 말씀으로, 진실로 목회를 할려고 하는..
Vs 반면 육체로, 세상적 판단으로, 세상적 가치관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도 이런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말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그러면?
부산성동교회와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믿음의 처절함을 싸우고 승리를 거둔 성도들.....
믿음 사수를 위해 고향을 버리고, 전토를 버리고 믿음을 지킨,
그리고 지키고 있는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한 편으로 눅 9장의 사마리아와 같은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은혜로운 부산성동교회를 말하는 사람들의 부산성동교회가 있고,
은혜롭지 못한 부산성동교회 말하는 부산성동교회가 있다....
(나의 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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