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성경지명 강해 고린도
성경지명(71):고린도(1)
사도행전 18:5~11

1.고린도의 개괄
➀위치?
○성경:아가야 지방(=아카이아)(발칸 반도의 끝 지역으로 대표적으로 아덴, 고린도, 델피(델포이)
○지리적: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시작 지역.
○고린도는 겐그레아와 레기움을 끼고 에게해와 아드리아해 사이에 위치한 동서 해상의 중심 도시.
- 펠레폰네소스 반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린도를 통과해야 되는 길목.
○아덴 ~ 고린도 = 약 78km (도보로 약 2~3일의 거리)
➁고린도와 신화
○아크로 고린도(575m)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바위산.
시지프스의 형벌 - 지옥의 신 하데스를 속인 죄 값.
결국 이 형벌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형벌을 즐기는 것 뿐?.....
○「아크로 고린도 아프로디테(아데미=비너스) 신전」에는 1,000명의 신전 매춘부들이 있었다.
「고린도 사람처럼 산다」 = 사치스럽고 방탕하게 산다는 의미로 통용되게 되었다.
- 안타깝게 이 사치와 성적 타락이 나중에 교회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니 자동적으로?.... 수용, 허락, 묵인.... )
○아크로 고린도에 꼭대기에는 2km 성벽이 있고
에게해와 아드리아 해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
➂고린도의 역사와 사회?
○알렉산더가 죽고 로마 제국의 영향력이 커지자 로마에 대한 항거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 Bc 146년 로마의 뭄미우스 장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100녀 년 정도 방치되어 있었다.
- Bc 46년경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재건되어 로마 총독이 거주하는 아가야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고린도는 해상 무역의 중심이 되어서 각 민족 사람들의 집합체를 이루었다.
(로마인, 그리스인, 유다인, 시리아인, 이집트인)
- 이것은 번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타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 무역의 풍성함, 스쳐가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곳,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무질서, 성적 타락..
- 이 번성함? - 고린도에는 노예의 수가 자유민들 보다 많았다.
(자유인 20만 명 - 노예 50만 명으로 추정)
○고린도 박물관의 특징?
- 전시품에 신체의 일부 조각(팔, 다리, 발가락, 손가락), 성기 모양의 조각과 테라코다가 많다.
/ 치유의 신 아스클레오피스에게 신체 아픈 부위를 실물로 만들어 바치며 치유되기를 기도.
/ 아팠다가 나은 환부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신전에 바쳤던 흔적들.
(성기 모양의 조각?: 성병의 유행)
➃고린도 운하
○Bc 7세기, 고린도의 참주 페리안드로스가 운하 건설을 처음으로 시도했지만 실패.
○로마 시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칼리굴라 황제가 운하 건설을 계획했지만 실패.
네로가 유대인 포로들을 이용해 약 700m 구간을 10~30m 깊이로 굴착했지만
네로가 죽은 후 중단.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1881 착공 1893년 완성(에게해 - 이오니아해); 총 길이 6.34km
- 길이는 약 6.34km, 폭은 약 23m, 깊이는 약 8m, 양쪽 절벽 높이 80m.
-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가는 것 보다 약 700km 거리 단축
- 그러나 운하 폭이 좁아 소형 선박만 이용 가능.
○운하가 있기 전
-Bc 6세기 경부터 「디올코스」(Diolkos ;돌 포장 길)을 만들어 마차로 배를 끌어 올려 선박을 이동.
/ 디올코스(Diolkos), 「건네주는 길, 배를 수레로 육지로 끌어 올려주는 길」이란 뜻.
/ 돌 바닥에 홈을 파서 바퀴가 이탈 되지 않게 했다.
(Vs 수에즈 운하 193.3km/ 파나마 운하 82km)
2.사도 바울과 고린도
➀아덴을 별다른 사유 없이 떠나 고린도로 온 사도 바울
○아덴에서는 조롱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핍박도 없었다.
○아덴에서 서쪽으로 가면 「델피」(델포이)가 있다.
-델포이는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그들의 철학의 사유)에는 세상의 중심이고 신적인 도시다.
/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동쪽과 서쪽에서 날렸는데 델포이에서 만났다.
/ 그 지점을 돌맹이로 표시했는데 그 돌을 「옴팔로스」(=배꼽, 중심)라고 하고 신전을 지었다.
/ 이 신전에서의 결정(델포이 신탁)들은 그리스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특히 원정을 갈 때에는 반드시 「델포이 신탁」을 들어야 했다.
- 그런데 바울은 그 유명한 「델포이」로 가지 않고 「고린도」로 향했다.
(아덴에서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17:16) 한 그 격분의 열정이며 「데포이」로 갈 만한데..)
➁고린도에 온 사도 바울?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를 만난다.
- 성경에서는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라고 하는 것 보다 「브리스길라+아굴라」로 더 많이 말한다.
/ 아굴라는 유대인이지만 고향이 「본도」인 디아스포로 유대이다.
/ 이들은 로마에 살고 있었지만 「글라우디오」(41~54)의 명령으로 로마에서 추방되었다.
(글라우디오: 행 11:28에 아가보의 예언대로 흉년 / 행18:2 추방령)
☞ 글라우디오가 왜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을 하게 되었는가?
○로마 황제의 순서
(아우구스투스(BC27~14;가이사 아구스도:예수 탄생 때 인구조사)
- 티베리우스(디베료)(14~37)(눅3:1;세례요한 활동 시작의 때) - 칼리쿨라(37~41)
- 클라우디우스(41~54) - 네로(54~68) - 갈바(가르바)(68~69) - 오토(69~69)
-비텔리우스(69~69) -베스파시아누스(69~79) -티투스(79~81) -도미티아누스(81~96) -네르바
- 유대인 「크레스투스」라는 사람이 로마에서 폭동을 일으켜 추방령을 내림(49~50)
- 이 추방령은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네로 황제 때 철폐.
○「유대인 폭동을 일으킨 「크레스투스」?
- 개인 이름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와(크리스토투스) 관계된 종합적 이름일 수 있다.
/ 당시에 로마에 있던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적 요소들이 많았다....
(유대인과 비유대인과의 갈등이 아닌)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갈등(행13),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의 갈등(행14장)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갈등(행17장)과 같은 이유일 수 있다.....
○베뢰아에 남아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와서 고린도에서 만나게 됨(5절)
- 아덴에 도착한 바울이 그를 데려왔던 사람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빨리 내려오라 했지만
/ 이것으로 보아 바울은 아덴에서 그렇게 오래 있은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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